brunch

매거진 책을 읽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nie Yang Feb 12. 2019

천명관 작가의 고령화가족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가족愛을 닮고 있는 삶에 대한 소설  


개인 평점   3.5   ★★★☆ 



 천명관 작가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나는 소설을 잘 읽는 편이 아니다. 이때까지 모두 읽은 소설책을 양손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작년부터 새롭게 시작한 독서모임이 아니라면 여전히 한쪽으로 편중된 책들 속에 파묻혀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소개할 고령화가족은 2018년 독서모임 연말 행사를 통해서 지인에게 선물 받았다. 책상 위에 며칠을 묵혀두고 짬이 생겨 살짝 들춰보았다. 그런데, 이 책을 손에 들고는 내려놓지를 못했다. 마치 중독성 강한 연속극을 보는 것처럼, 뒷장이 너무나 궁금해서 그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아~ 이런 맛에 소설책을 읽는구나... 그 느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인이 이 책을 선물해 주면서 천명관 작가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소개해줘서 그 몰입도가 더욱 높아진 듯하다. 동일한 제목으로 영화도 만들었고, 등장인물 속에서 작가의 모습도 어렴뿟이 볼 수 있었다. 영화 고령화가족에는 박해일이 작가의 일부가 투영되어 있는 주인공 인모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윤제문, 공효진, 윤여정 등 굵직한 연기에 잔뼈가 굵은 분들이 함께했다. 최근 EBS에서 방영해서 민경 역을 맡은 진지희라는 배우가 네이버 핫이슈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등장하는 인모는 일반적인 삶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 인물이다. 특별난 것이 없이 일에서는 실패(?)했지만, 가족과는 실패하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인모의 삶은 천명관 작가의 일반적이지 않은 소설가의 삶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물론, 개인적인 가족사에 대해서는 모르므로 제외한다.) 일반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여기저기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비하는 정상(?)적인 작가의 길이 아니라 문단의 이단아라고 불리며 지금도 여전히 충무로를 기웃거리는 변방으로의 그의 삶 말이다.


 엄마는 단호했다. 하긴 그녀에겐 일평생이 전쟁을 치르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고, 남편을 수발하고, 홀몸이 되어 큰아들 옥바라지로 한 세월을 보내는 과정이 전쟁보다 하등 나을 것도 없었을 터, 전쟁통에 학도병으로 끌려가서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던 아버지가 승용차에 치여 죽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 고령화가족 Page 41 )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단연 인모의 엄마이다. 그녀는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 어떤 힘든 상황이 생겨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큰 아들이 사고를 처서 빵에 들어가도, 딸내미가 두 번째 이혼을 해도, “이 또한 지나가리”, “그냥 그런 거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연륜이 묻어나는 대응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모든 일에 해탈한 듯이. 사실, 그녀의 과거 또한 일반적(?)인 삶을 살지는 않은 듯하다. 젊어서 자신의 아이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연을 두기도 하고, 배다른 아이를 키우며, 그리고 노년에는 과거의 그를 찾아가는 그녀의 삶에서 “그냥 그런 거지”의 삶의 해탈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엄마의 예사롭지 않은 외침에 돌아보니 엄마는 뭔가 결연한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팬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윽고 입을 떼었다. "그 빤스, 민경이 빤쓰 아니다." "뭐? 이게 민경이 빤쓰가 아니라고?" 미연이 물었다. "그래. 이 집 빤쓰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안다." 하긴 그거야 엄마가 제일 잘 알겠지만.... "그럼... 누구 빤쓰야?"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빤쓰..... 내 빤쓰다."

( 고령화가족 Page 111 ) 


 인모가 가족들 속에 큰 위기(?)에 닥쳤을 때 엄마의 도움으로 간신히 넘긴 에피소드의 한 부분이다. 고령화가족 속에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클라이맥스 부분이 아닐까 한다. 이런 특이하고 곤란한 에피소드를 생각해낸 천명관 작가의 머릿속이 참으로 궁금하다. 평범하지 않은 그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상상의 에피소드가 인모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우리 식구들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형제간의 따뜻한 우애와 건강하고 깨끗한 아이들, 서로에 대한 걱정과 배려, 유순하고 성실한 가족 구성원들,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저녁식사...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 고령화가족 Page 141 ) 


 우리 사는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삶 속에 위선은 얼마나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중에 하나였다. 고령화가족에 등장하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삶이 오히려 위선 없는 일반적인 삶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어릴 적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지 않아도 되는, 몰라도 되는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며, 보게 되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삶이 고령화가족의 삶과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문구와 애피소드들이 나에게 처음으로 소설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다음에는 천명관 작가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고래'를 읽고 또 다른 재미속에 빠져봐야겠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