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묘지 Open House

어느 '어르신'의 독백-4. 천년동안 잠들어 있을 곳

by 주호석

얼마 전 성당 미사에 참석해 주보를 훑어보던 중 특별한 소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공원묘지 오픈하우스'라는 제목의 소식이었다. 성당에 나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모든 소식들이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었지만 그 소식은 제목부터가 눈에 확 띄었다. 무엇보다 공원묘지에서 오픈 하우스를 한다는 사실이 생소할 뿐 아니라 놀랍기도 했다. 오픈 하우스는 집을 팔 때 집주인이 정해진 일시에 구매자들에게 해당 집을 개방하여 직접 둘러볼 수 있게 하고 집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걸 말하는데 집이 아닌 묘지가 그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제부턴가 나 자신의 사후문제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해오던 터여서 공원묘지 오픈하우스 소식에 특별히 눈이 갔던 것 같다. 아내 역시 관심을 갖고 있어서 함께 오픈하우스에 가보기로 했다.


화창한 토요일 어느 날 오픈하우스 행사가 있는 공원묘지로 갔다. 밴쿠버 써리 Surrey에 위치해 있는 Garden of Gethsemani Catholic Cemetery라고 하는 공원묘지다. 이름 그대로 주로 카톨릭 신자들이 묻히는 묘지다. 육중한 게이트를 지나 묘지 안으로 들어서자 안내원이 주차안내를 해주었다. 차에서 내려 오피스로 향했다. 오피스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눈에 들어오는 묘지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시내 한복판 대로변에 공원묘지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는데 그보다 더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묘지의 규모였다. 초입에서 얼핏 보이는 묘지의 규모가 내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대규모이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직접 방문하기 전에 내가 상상한 겟세마니 카톨릭 묘지는 변두리 산기슭에 위치하여 한눈에 들어오는 크지 않은 규모의 공원묘지였던 것이다.


오피스 건물밖에서 방문객 안내를 맡은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사무실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아일랜드 출신의 죠단 Jordan 이 우리 부부를 맞이해 주었다. Gethsemani 묘지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묘지 구매는 어떤 절차에 의해 이뤄지는지, 묘지와 장례 서비스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각각의 가격 및 비용은 얼마인지 등 묘지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묘지는 주로 카톨릭 신자들이 묻히는 곳이지만 일반인들도 원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카톨릭 신자의 경우 20% 할인된 가격에 묘지를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묘지 가격은 화장을 하는지의 여부 그리고 부부가 합장이냐 아니냐 또 비석을 세우는지 여부 등 여러 가지 세부 요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또 장례식 과정에서 이런저런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역시 어떤 서비스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고 한다. 묘지를 미리 구입할 경우 현재 시가로 최저 2만 달러 선에서 가능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죠단에게 물었다. "이 묘지에 한번 묻히면 몇 년 동안 계속 묻혀있을 수 있느냐"라고. 죠단이 "천년동안 계속 묻혀있을 수 있고 그때까지 관리비를 받지 않고 계속 관리해 준다'라고 대답했다. 백 년도 아니고 천년이라.... 그럼 죽은 뒤 사실상 영원히 이곳에서 안식할 수 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오피스에서의 브리핑이 끝나자 미니버스를 타고 묘지를 한 바퀴 둘러보는 묘지 버스투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잠시 후 나이 지긋한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우리 부부 외에 다른 두 커플이 함께 했다. 버스기사를 비롯해 가이드 그리고 투어참가자 대부분이 머리는 하얗게 희고 얼굴엔 주름이 많은 노인들이었다. 젊은 사람들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행사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오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차를 타고 투어를 시작하면서 묘지의 규모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시림 같은 숲이 우거진 곳도 있고 커다란 호수도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공원묘지 안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묘지는 시신을 땅에 묻는 구역이 대부분이고 여기저기 몇 군데에 각기 다른 모양의 납골당 건물들도 있었다. 아주 고급스럽게 지어진 어느 납골당에는 별도의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 일행한테 친절하게 브리핑을 해주었다.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는 그곳은 다른 묘지에 비해 훨씬 비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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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구역으로 나눠진 묘역 곳곳에는 카톨릭 성인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뒤편에 일반 주택들이 늘어서 있고 위치가 아주 좋아 보이는 구역에 김대건 신부(St. Andrew Kim)의 동상이 서 있었다. 내가 다니기 시작한 성당이 밴쿠버의 성 김대건 성당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인 성인을 기리는 묘역이 조성돼 있다는 사실 때문에 무척 반가웠다. 아내하고 나중에 묘지를 구입할 때 이곳에 자리를 잡기로 약속했다. 나와 아내가 그곳에 천년 간 묻혀있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묘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버스가 거기서 멀어지는 내내 눈길이 자꾸만 그곳으로 향하곤 했다. 약 두 시간 정도 걸린 공원묘지 오픈하우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왠지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듯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언젠가 세상과 작별한 뒤 어디에 어떻게 머물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까지 나는 인간은 죽음과 함께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아니,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다. 심장이 멎어 숨을 거두는 순간 인간의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도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결국 무 無로 돌아간다는 믿음이다. 개신교 교회도 다녔고 최근엔 카톨릭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생물학자'로 손꼽히는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가 저술한 'Outgrowing God' 그리고 'The God Delusion'이라는 책을 읽고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저서를 통해 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한다. 또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기는커녕 인류에 엄청난 해악을 끼쳐왔다는 사실을 저술을 통해 파헤친 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주장에 동감을 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나한테 사이비 신자라고 욕해도 할 말이 없다.


지난해 10월 영국 옥스포드에 살고 있는 아들이 며칠간 밴쿠버에 다녀갔다. 포뮬러-원 Formula-one 메르세데스 Mercedes 팀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데 이삿일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밤늦게까지 함께 이삿짐을 싸면서 아들에게 내 사후 처리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해주었다. 얘기의 골자는 내가 세상을 떠나면 묘지를 만들지 말고 화장해서 산이든 바다든 어딘가에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욕심을 낸다면 이민 와서 22년 넘게 살아온 동네인 아름다운 호수 DeerLake 물속이나 그 호수 주변에 유골을 뿌려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집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디어레이크는 이민생활 중에 내가 겪은 모든 희로애락과 추억들이 간직돼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호숫가 산책을 했을 뿐 아니라 기쁘면 기쁜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찾아갔던 곳이 바로 집 앞의 디어레이크였던 것이다. 물론 유골을 호수에 뿌리는 건 불법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내가 이렇게 무신론자의 저서에 동감을 하고 또 아들에게 묘지를 만들지 말라고 부탁하게 된 것은 아직도 사후 세계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는 공원묘지 오픈 하우스 행사에 다녀오고 김대건 신부 동상이 있는 구역에 묫자리까지 봐두고 온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을 위해서다. 아들은 영국, 딸은 미국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내 사후에 어쩌다 자식들이 밴쿠버를 방문하거나 아예 밴쿠버로 돌아와 살게 될 경우 세상을 떠난 부모를 추억하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시각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어딘가에 있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게 1년에 한 번이든 10년에 한 번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나도 이민초기 한국에 몇 번 다녀올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이 안장돼 있는 선산의 산소를 찾아가 두 분 살아생전의 모습들을 떠올리곤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것도 찾아뵐 부모님의 산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내 자식들 역시 그런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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