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古稀 기념 버뮤다 여행-下

어느 '어르신'의 독백-3

by 주호석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버뮤다는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억센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서로 의지하며 억겁의 세월을 견뎌온 덕분일 게다. 그런 평화로운 모습의 버뮤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쌓였던 피로가 스르르 해소되는 듯했다. 드디어 여행 목적지 버뮤다에 발을 딛게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특히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힘든 시간 보냈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공항에서 간단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입국장을 나오니 예약해 놓은 호텔택시 기사가 아내 이름이 적힌 종이팻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 탑승해 호텔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이동하는 동안 택시기사는 버뮤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마치 관광안내원이라도 된 듯이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버뮤다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을 통해 버뮤다에 관한 상식 수준의 정보를 알아보고 갔지만 택시기사의 설명이 좀 더 피부에 와닿는 것 같았다. 형식상 영국 국왕이 통치하는 영국령으로 관광 및 금융산업이 버뮤다 경제를 이끌어가는 양대 산업분야라고 한다. 특히 금융분야의 경우 보험회사가 2백여 개에 이를 정도로 많이 존재한다고 한다. 조세회피 지역으로 페이퍼컴퍼니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인 듯했다. 또 가까운 거리에 있는 미국과 캐나다의 많은 부유층 사람들이 별장을 소유하고 추운 계절이면 버뮤다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버뮤다달러가 있는데도 일상생활에서 주로 미국달러가 사용되는 것도 미국인들의 잦은 방문 때문이라고 한다. 인구는 7만여 명 정도인데 1인당 국민소득(GDP)이 9만 달러가 넘을 정도로 소득 수준이 높다고 한다. 국민소득만으로 보면 전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소득 수준이 매우 높지만 그와 함께 물가가 엄청나게 비싸 물가지수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식료품을 비롯 생활필수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는 버뮤다가 영국 속령에 속해 있는 것과 관련하여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30여 년 전 영국령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기 위해 독립 찬반투표를 실시했는데 반대하는 국민이 많아 부결됐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영국속령에 속해 있는 걸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 이유를 지금의 국제정세와 연결 지어 설명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중국은 타이완을 넘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까지 캐나다를 미국의 주로 편입하겠다고 하는데 만약 미국 코앞에 있는 버뮤다가 영국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면 미국이 언제든 흡수합병을 시도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따라서 버뮤다는 지금의 영국령 국가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게 다행이라는 설명이었다. 강대국들의 영토확장 야욕이 조그만 섬나라 버뮤다 사람들에게까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택시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20여분 달려 우리가 3박 4일간 묵을 호텔에 도착했다. 모래사장을 사이에 두고 탁 트인 바다를 뒤로 하고 있는 호텔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호텔뒤편에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진 호텔 전용 백사장에는 야외 스위밍풀과 함께 비치파라솔과 기다란 벤치들이 바다를 향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예약된 룸으로 갔다. 룸넘버 1번, King Terrace Suite이었다. 호텔 외관뿐 아니라 룸도 매우 훌륭했다. 짐정리를 하고 바닷가를 잠시 둘러본 뒤 저녁식사를 위해 호텔레스토랑 The Pink Beach Club으로 갔다. 호텔건물 뒤편 바닷가로 둥글게 이어낸 구조였다. 바다 쪽 3면은 벽이 없고 햇빛 가림막만 설치되어 있어 마치 바닷속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와인을 곁들인 스테이크가 메인메뉴였다. 멋진 분위기 탓인지 음식맛 또한 훌륭했다. 인도 출신 웨이터가 서빙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인도에 있는 가족과 헤어져 호텔에서 일한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자 계산서(빌)를 가지고 왔다. 예상대로 음식값이 꽤 비쌌다. 모든 물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라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아내가 계산서에 나와있는 음식값에 20%의 팁을 얹어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식사를 마쳤다.


호텔 룸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몸이 피곤한 데다 술기운까지 더한 탓이었다. 자다 깨어나 잠시 잠을 설치다가 다시 죽은 듯이 깊은 잠에 취해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단잠을 잤다. 불면증이 있는 아내도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고 했다. 커튼을 열었더니 잔뜩 흐린 날씨에 비가 간간이 내리고 있었다. 바닷물도 하늘도 우중충했다. 딸이 여행 스케줄을 짤 때 스노클링 크루즈 같은 액티비티나 이벤트 예약을 하겠다고 하는 걸 그럴 필요 없다고 거절한 바 있다. 구경거리를 찾아 많은 곳을 돌아다니거나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느긋하고 편안한 휴식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날씨도 좋지 않아 호텔 주변을 둘러보고 바닷가 산책을 하면서 낮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좀 이른 저녁 전날 식사했던 호텔 레스토랑으로 갔다. 전날 서빙을 했던 인도출신 웨이터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우리가 자리에 앉자 어제와 다른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 훤칠하게 생긴 백인남자였다. 레스토랑 서비스매니저 가브리엘이라고 인사를 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었더니 루마니아 출신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내가 90년대 초 루마니아 공산정권이 무너진 직후 취재차 루마니아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반갑다는 듯이 한참 동안 자기 나라 얘기를 해댔다.


그런데 웨이터들의 서빙이 전날과 달라졌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전날은 웨이터 한 사람이 서빙을 했는데 그날은 매니저 가브리엘과 인도출신 웨이터까지 가세하여 정성껏 서빙을 하는 것이었다. 또 전날은 와인을 주문한 것만 달랑 준비해 주었는데 그날은 잔을 비우는 대로 무료라면서 계속해서 와인을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적지 않은 양의 공짜 와인을 거나하게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와인을 즐기느라 다른 손님들보다 다소 늦게 식사를 마쳤다. 가브리엘이 계산서를 가져와 테이블에 놓고 갔다. 아내가 계산서를 훑어보더니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전날 팁계산이 잘못됐었다는 것이다. 팁을 지불할 때 식사대금 전체를 기준으로 고객이 원하는 만큼의 팁 몇%를 별도로 계산하여 지불하는 캐나다의 팁문화와 달리 그 레스토랑에서는 서비스차지(팁)로 음식값의 17%를 아예 포함하여 계산서를 작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전날 우리는 별도의 팁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는데 음식값에 17%의 팁을 합친 전체금액에 대해 추가로 20%의 팁을 지불했던 것이다. 결국 37%가 넘는 팁을 지불한 셈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그날 두 명의 웨이터가 무료 와인까지 서비스하는 등 유난히 친절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그 사람들이 전날 팁을 받고 나서 우리 부부가 팁에 무척 너그러운 손님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거기다 음식값이든 팁이든 모두 신용카드가 아닌 현찰로 지불하니까 돈을 펑펑 잘 쓰는 여행객이려니 여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팁계산에 착오가 있긴 했지만 맛있는 음식 기분 좋게 먹고 즐거운 시간 보냈으니 전혀 기분 상할 일은 아니었다. 음식이나 서비스가 엉망인 레스토랑이었다면 바가지 쓴 것처럼 기분 나쁠 수도 있었겠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좋은 서비스를 받았으니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평소 후하게 팁을 지불하는 아내는 그날 팁으로 빚어진 해프닝을 즐기는 듯했다. 원래 기분 좋게 쓰는 돈은 그 가치가 액면가보다 훨씬 크기 마련이니까.


버뮤다에서의 셋째 날 아침이 밝아왔다. 호텔 발코니 문밖에 드넓게 펼쳐진 푸른빛의 바다 위에 햇살이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키 작은 야자수들과 어우러져 호텔 주변 경관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열대기후대에 속하는 버뮤다의 전형적인 봄 풍경이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뮤다 수도인 해밀턴 Hamilton을 둘러보기로 했다. 해밀턴은 인구 1천여 명이 거주하는 항구도시로 전 세계 수도 중 가장 작은 규모라고 한다.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30여분 걸려 해밀턴에 도착했다. 택시 타고 가는 길에 매우 특이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집들의 지붕모양이었다. 모든 집들이 하얀색의 계단식 시멘트 지붕으로 덮여있었다. 지하수가 부족해 겨울철 우기에 빗물을 받아서 식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든 가정에 빗물을 받아두기 위한 저수조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라는 것.


택시가 도착한 곳은 해밀턴항구였다. 훼리 선착장 매표소 직원이 Dockyard 관광을 추천했다. 주로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인데 쇼핑하기 좋고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다고 했다. 가볼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쇼핑이나 음식점은 나와 아내의 큰 관심사가 아닌 데다 관광객들 북적이는 곳보다는 해밀턴 시내를 천천히 돌아보며 여유를 부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공원들과 박물관 등 버뮤다 특유의 모습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또 카페에 들러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몸과 마음을 쉬게 했다. 버뮤다 여행을 떠날 때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걸 첫째 목표로 삼았기에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나쁘지 않았다.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거나 많은 눈요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대서양의 낯선 작은 섬나라 버뮤다에서 그렇게 보낸 시간들은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다음날 오후 버뮤다를 떠나 딸이 살고 있는 미국 코네티컷 그리니치 Connecticut Greenwich로 향했다. 그리니치는 미국 뉴욕주와 인접해 있는 바닷가 도시로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부유층 사람들이 대를 이어가며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공항은 인근 뉴욕주에 있는 Westchester County Airport를 이용한다. 딸은 뉴욕 맨해튼에서 살다가 직장 때문에 덴버로 가서 1년 남짓 살고 코네티컷으로 이사와 살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을 빠져나와 잠시 기다리니 딸이 퇴근길에 픽업을 왔다. 공항을 떠나 십오 분 정도 달려 딸네 집에 도착했다. 딸이 덴버에서 살 때 우리 부부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입양한 골든 레트리버 강아지 '키위'가 어느새 성견이 되어 사위와 함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기 강아지였을 때 만나고 처음인데 우리를 기억하는 듯했다.


그리니치에서의 둘째 날은 일 때문에 바쁜 사위를 빼고 딸과 셋이서 키위를 데리고 집 가까이에 있는 Tod'd Point라고 하는 동네 산책을 했다. 바닷가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와 큰 호수처럼 보이는 Inlet마을이다. 바닷가 여기저기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는 대저택들은 프라이빗 비치를 소유하고 있었고 대형 요트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주변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고 한없이 평화로웠다. 저녁에는 딸이 미리 예약한 그리니치 시내에 있는 오리엔타 Orienta라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겉보기엔 허름한 건물처럼 보였는데 아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한 레스토랑이란다. 삼사십 명 정도의 손님들이 흥겹고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자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금요일 밤이어서 더 흥겨운 분위기였는지도 모른다. 네그로니 Negroni 칵테일을 곁들여 식사를 했는데 그리니치에서 손꼽히는 유명 음식점답게 음식맛이 일품이었다.


우리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갑자기 매니저처럼 보이는 사람이 'Happy birthday to you~' 하며 노래를 선창 하자 식당을 가득 메운 손님들이 식당이 떠나갈 듯 모두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웨이터가 촛불이 꽂혀있는 자그마한 케이크를 들고 와서 우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합창이 끝나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으로 불어서 촛불을 껐다.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Oh, my God!!! 사랑하는 아내와 딸 그리고 사위한테서 받은 생일 축하만으로도 충분했는데 멋진 레스토랑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다니.... 알고 보니 딸이 저녁식사 예약을 하면서 레스토랑에 미리 부탁해서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 70세 고희기념 여행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딸의 속 깊은 배려가 고맙고 갸륵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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