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古稀 기념 버뮤다 여행-上

어느 '어르신'의 독백-2

by 주호석

'3월에 아빠 칠순기념으로 버뮤다 여행 보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셔?' 지난해 11월 말쯤 미국 뉴욕과 인접해 있는 코네티컷 그리니치Connecticut Greenwich에 살고 있는 딸이 보내온 짤막한 메시지였다. 딸의 대학 동창 중 결혼해서 버뮤다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얼마전 사위하고 그곳 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며 추천한 것이다. 딸의 여행제의가 기특하고 반갑기는 했지만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않았다. 우선 버뮤다는 나에게 너무 멀게 느껴지는 생소한 곳이다. 버뮤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 섬 인근에서 비행기나 선박들이 이유없이 실종되는 의문의 사고가 가끔 발생한다는 '버뮤다 삼각지대' 이야기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 과로한 탓에 기력이 쇠약해진 상태여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게 무리 아닐까 하는 우려도 버뮤다 여행결심을 망설이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한동안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연락을 하지않고 있었는데 딸한테서 '버뮤다 여행 생각해보셨어?' 하고 두번째 메시지가 왔다. 항공권 그리고 호텔 예약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빨리 가부 결정을 해달라는 독촉 메시지였었다. 한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망설임없이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터여서 곧바로 아내하고 상의한 다음 답을 보냈다. 3월 중순쯤으로 스케쥴을 잡아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저런 일로 심신이 많이 지쳐있으니 번잡한 관광도시보다 오히려 버뮤다처럼 한적한 섬나라에서 여유를 즐기며 푹 쉬고 오는게 좋을 것 같다는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3월 중순으로 일정을 정한 것은 버뮤다의 날씨, 항공권이나 호텔 예약가능 여부 그리고 내 생일날짜 등을 감안하여 결정한 것이다.


메시지를 보내자 곧바로 딸이 대강의 여행 스케쥴을 짜서 보내왔다. <3월9일 밤 밴쿠버를 출발하여 6시간 후 미국 죠지아주 아틀란타 공항 도착, 3시간 기다린 후 버뮤다행 비행기 탑승, 10일 오후 2시 버뮤다 도착, 예약된 호텔셔틀택시로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 3박4일 묵는 호텔은 5성급 The Loren at pink Beach Hotel, 13일 오후 4시 버뮤다 출발, 오후5시 코네티컷 그리니치 도착, 16일 오후 6시 코네티컷 출발, 밤9시 밴쿠버 도착>. 3박4일 버뮤다 여행을 하고 딸이 살고 있는 코넷티컷에서 3박4일 머물다가 돌아오는 6박7일간의 여행일정이다. 네차례 탑승하게 되는 비행기 항공권과 호텔숙박비 그리고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세차례 저녁식사 그리고 공항픽업 및 라이드 등 모두 딸이 예약을 했다.


버뮤다 여행이 시작되는 3월 9일 오후 늦은 시각 우버를 타고 밴쿠버 공항으로 향했다. 지난해 10월 이사와 살고 있는 랭리Langley는 전에 살던 버나비Burnaby에 비해 밴쿠버공항까지의 거리가 두배 이상 먼 곳이다. 차로 30분이면 충분하던 거리가 1시간 이상 걸리게 됐다. 집에서 공항까지의 거리가 멀어진만큼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이동시간을 좀더 길게 잡아야 했다.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공항출국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체크인을 하고 검색대를 거쳐 출국수속을 마쳤다. 탑승 대기실에서 두시간 정도를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퍽 지루하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전에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지루하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부쩍 더 그랬다. 오랜만에 떠나는 장거리 여행이기도 하지만 지난 몇년사이 몸이 많이 노쇠해진 탓인듯 했다.


아내와 내가 탑승한 비행기는 예정대로 밴쿠버공항을 이륙하여 미국 아틀란타공항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비행기타고 여행을 할 때면 탑승한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이륙하는 잠시동안 묘한 설레임과 약간의 불안감이 교차하고는 한다. 설레임은 일상에서 벗어나 어딘가 낯설고 익숙치않은 미지의 세상으로 훌쩍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기대감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불안감은 비행기의 이.착륙과정에서 느끼는 안전에 대한 일말의 우려에서 비롯된다. 오래전 취재차 방문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이동하던 때 이륙한 비행기가 극심한 난기류를 만나 30여분간 공포에 떨었던 기억때문이기도하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의 파랗게 질린 얼굴 모습이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다행히 지금까지 다녀온 대부분의 여행에서는 늘 불안감보다는 기대감이 훨씬 크기에 여행은 늘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특히 이번여행은 딸이 특별히 마련해준 여행인데다 칠순의 '어르신'이 되어 떠나는 여행이어서 어느 때보다 마음이 흐믓하고 기대감도 큰 여행이었다. 그런 기대를 갖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밴쿠버를 출발하여 버뮤다에 도착하기까지의 약 14시간은 과거 어느 여행에서도 겪어보지못한 힘들고 고생스런 시간이었다. 우선 비행기가 밴쿠버 공항을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예기치않은 심리적 불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내 공간이 너무 협소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폐쇄공포증이란게 이런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타고 처음 느껴보는 증상이었다. 아틀란타공항까지 6시간동안 참고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기내의 좁은 공간에서 증상완화를 위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생각끝에 복식호흡을 시도해보았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5분 정도 지나 정상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정된 시각에 아틀란타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틀란타 공항에 내려 버뮤다행 비행기로 환승하기위해 3시간을 기다리도록 예정돼 있었다. 결코 짧지않은 시간이었다. 아내하고 공항내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승객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두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면 목적지 버뮤다에 도착하게 된다. 6시간 비행기를 타고와서 3시간이나 기다린 것을 생각하면 두시간 비행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비행기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기장의 기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기체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해 다른 비행기로 교체해야하니 승객모두 내려달라'는 방송이었다. 비행기를 교체하는데 3시간이 걸릴 예정이라는 멘트도 이어졌다.


아니 이럴수가. 은근히 짜증이 나고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랴. 내가 짜증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않나. 기내 방송이 끝나자 2백여명의 승객들이 아무런 불평없이 질서있게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미 기다린 3시간의 레이오버 시간에다 예기치못한 3시간의 추가 대기시간까지 모두 6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했다.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하고 지치는듯 했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으며 여행의 추억은 더 풍성해진다는 경험칙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독였다. 예상치못한 난관에 맞닥뜨리는게 어디 여행에서 뿐이랴. 인생자체가 예측불가능한 수많은 험난한 일들과 마주치고 그걸 헤쳐나가는 과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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