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하여

어느 '어르신'의 독백-1

by 주호석

수년 전 어깨 수술을 받았다. 회전근개 Rotator cuff 파열로 인한 극심한 통증 때문이었다. 어깨 수술경험 있는 사람들이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수술을 안 받겠다'라고 할 정도로 큰 고통이 수반되는 게 어깨수술이다. 수술 후 6개월 정도 걸리는 재활치료도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그런 수술을 2년에 걸쳐 왼쪽 두 번 오른쪽 한번, 모두 세 번이나 받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수술 후 수년간 별문제 없이 잘 지내왔다. 장기간의 재활치로에도 불구하고 팔놀림이 부자연스럽고 조심스럽긴 하지만 일상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어깨 통증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근육을 강화하겠다고 1년여 짐에 다녔는데 너무 욕심내고 무리했던 것 같다. 수술할 때 느꼈던 통증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아서 참고 견뎌보려 하다가 마음을 바꿔 일단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훼밀리닥터를 만나 진찰을 받고 며칠 뒤 어깨 초음파 검사를 했다. 회전근개가 다시 파열되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상태가 그리 심하지 않아 수술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어차피 의사가 권하더라도 절대로 수술은 받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던 터라 가능하면 통증 치료나 받아볼 생각이었다. 어깨 통증의 경우 수술 아니면 스테로이드 주사 그리고 물리치료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깨 수술로 인해 내가 고생한 과정을 잘 알고 있는 훼밀리닥터가 통증치료 전문의와 어깨 수술전문의 Orthopedic Surgeon 등 양쪽 의사한테 리퍼럴을 해주었다. 수술전문의 진료는 안 받겠다고 했더니 혹시 모르니까 만나 보라고 했다. 수술전문의는 어차피 6개월 이상 기다려야 예약이 가능하기에 상황을 좀 더 지켜볼 겸 의사 권유를 따르기로 했다. 6개월쯤 지난 뒤 어깨 수술 전문의 오피스에서 닥터 진료예약을 해주겠다는 전화가 왔다. 내 어깨 수술을 집도했던 그 의사다. 이미 결심했던 대로 수술의사와의 예약은 거절했다. 수술을 안 받을 바에는 수술전문의를 만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훼밀리닥터가 리퍼럴해준 통증 치료 전문의는 한인 의사였다. 예약된 날 시간에 맞춰 클리닉을 방문했다. 병원이나 클리닉에 갈 때면 늘 그렇듯이 아내가 동행했다. 진료실에 들어서니 가운에 의사 모자를 쓰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외모로 봐서는 나하고 비슷한 연령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물어보고 팔을 움직여 보는 등 간단하게 진찰을 하고 나서 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어르신이 원하시면 통증완화 주사를 놔 드리겠는데 주사를 꼭 맞아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라고 했다. "어깨 통증의 경우 웬만하면 수술을 안 받는 게 좋고 스테로이드 주사도 가능한 안 맞는 게 좋다"는 소견도 내놓았다. 캐나다 의사들이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그날 그 의사의 처방은 너무나 의외의 것이었다. 환자가 수술도 아니고 통증완화를 위한 주사를 맞겠다는데 그걸 안 해주겠다니 말이다. 의사는 "어르신은 예약 없이 오셔도 괜찮으니 통증이 더 심해져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언제든 다시 오십시오"라는 말로 진료를 마쳤다.


그날 의사의 진료과정에서 아내와 내가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마주치며 동시에 웃음을 터트린 순간이 있었다. 통증이 아주 심하지 않으니 주사 맞을 필요가 없다는 진단이 의외였으면서도 어쨌거나 반가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게 웃음을 터트린 이유는 아니었다. 또 어느 의사한테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 즉, "예약 없이 오셔도 된다"라고 하는 친절함에 감동해서 웃음이 터진 것도 물론 아니었다. 아내와 내가 웃음을 터트린 진짜 이유는 처음 들어보는 '어르신'이라는 뜻밖의 호칭 때문이었다. 그 호칭은 일단 나이를 많이 먹은 노인에 대한 존칭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왠지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어색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클리닉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오는 내내 아내는 나를 '어르신'이라고 놀려댔다. 그날뿐만이 아니라 그 후로도 아내는 건듯하면 농담조로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몇 개월 뒤 통증이 어깨에서 팔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됐다. 다시 그 의사를 찾아갔다. 예약 안 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리셉션을 생각해서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전과 마찬가지로 진찰에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는 이번에도 전과 똑같은 진단 결과를 알려주었다. "주사를 꼭 맞고 싶으시면 놔드리겠는데 아직 그럴 필요 없습니다"라는 것이었다. 다소 허탈하기도 했다. 두 번씩이나 주사 맞기를 사실상 '거절'당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소 실망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의사는 "어르신처럼 연세가 들면 누구나 몸이 허약해지고 자꾸 아픈 데가 나타나는 게 정상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사를 놔달라고 강하게 요구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의사의 진단 소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한 배경에는 어깨 수술 전 수 차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도 의사가 사용한 나에 대한 호칭은 역시 '어르신'이었다. 다소 의아했던 것은 같은 호칭이었는데도 처음에 그토록 어색하게 들렸던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한결 자연스럽게 들려왔다는 사실이다. 올해 칠순을 맞이하면서 내 나이가 결코 적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60대 나이와 달리 70세 나이로 봐서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다만 '어르신'이라는 단어에 존칭의 의미가 가미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내가 그 호칭으로 불릴만한 노인인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의사 진료를 받는 동안 잠시 쇼핑센터에 갔던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아내가 대뜸 '벌써 주사 맞았어?"하고 물었다. "안 맞았어. 맞지 말래"하고 대답했다. 예상대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뭐야....?"하고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어이없다는 듯 내뱉는 말투에 허탈감마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아내의 그런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음은 물론이다. 주사를 맞기 위해 두 번씩이나 의사를 찾아왔는데 허탕을 쳤으니 말이다. 그 뒤로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심한 통증은 완화된 상태로 지내고 있다. 의사가 말한 대로 나이 탓으로 돌리면서 약간의 통증은 끌어안고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좀 더 어르신답게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어르신'의 뜻은 나이를 많이 먹었을 뿐 아니라 언행에 있어서 나이값을 하는 노인에게 어울리는 호칭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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