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네로

어느 '어르신'의 독백-6

by 주호석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은 이웃사람들을 한 번도 못 본 체 지나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호숫가에 20 가구로 형성된 스트라타 Strata 동네로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데다 각 가구마다 대지가 널찍널찍하여 집들이 멀리 떨어져 있고 각종 나무가 우거져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동네 특성상 그 집은 외부로부터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호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집안은 물론 정원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반면에 자주 적막감을 느껴야 했고 가끔은 사람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주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우선 대지가 좁은 집들이 가까이 붙어있다. 좁은 백 야드는 키높이 정도의 목조 울타리로 경계가 구분되어 있다. 따라서 백 야드에 나가면 좌. 우 옆집 그리고 뒷집 등 세 집이 곧바로 시야에 들어온다. 그중 양옆 두 집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담너머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왼쪽 집에는 중국출신 젊은 부부 로이와 스텔라가 초등학생 아들과 살고 있고 오른쪽 집에는 폴란드출신의 토마스와 아그네스가 어린 두 딸과 아들, 그리고 나이 많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모두 친절한 이웃들이다.


그런데 뒷집의 경우는 옆집들과 상황이 좀 다르다. 백 야드 경계에 목제 울타리에 더해서 키가 큰 시다 Cedar 나무를 심어놓아 그 집주인들과는 얼굴 마주할 기회가 없다. 그로 인해 지척에 살면서도 먼 나라 사람들처럼 아무런 교류 없이 지내고 있다. 그렇게 지내길 몇 개월. 어느 날 귀엽고 날씬하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울타리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뒷집 사람들 대신 그 집 고양이가 우리와 가까운 이웃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 녀석을 '네로'라고 부른다. 이태리어로 검은색을 뜻하는 '네로'는 그 녀석 털이 검은색이라서 아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물론 그 녀석도 주인이 부르는 원래의 이름이 있을게다. 네로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처음 몇 주간은 우리와 눈을 마주치면 울타리꼭대기에서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돌아가고는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울타리에서 우리 백 야드로 뛰어내려와 여기저기 둘러보는가 하면 가까이에 와서 내 다리에 몸을 비벼대기도 했다. 심지어 내 앞에서 정원 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기까지 했다. 네로가 이제 나하고 격의 없는 친구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네로-10.jpg


지난겨울 눈이 내린 날 울타리를 넘어온 네로가 우리 정원에 넘어와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출입문을 열고 '네로'하고 불렀더니 문밖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집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처음 실내에 들어와서 그런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집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날을 시작으로 네로의 우리 집 출입은 점점 더 잦아졌다. 지금은 우리 집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 하고 아래층 거실은 물론 위층 침실까지 휘젓고 다니는 게 일상화되었다. 가끔은 문밖에 나타나서 빨리 문을 열어달라는 듯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 아래층에 내려오면 버릇처럼 우선 출입문을 열어본다. 혹시 네로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럴 때마다 녀석이 와있으면 반갑고 모습이 안 보이면 아쉬움이 느껴진다. 또 낮에도 마찬가지다. 별일 없어도 정원에 자주 나가는데 그때마다 은근히 녀석이 와있기를 기대하면서 문을 열고 나간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오른쪽 이웃집 백 야드 잔디밭에 사지를 쭈욱 편채 누워있는 네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그네스 어머니가 햇빛을 쬐며 벤치에 홀로 앉아있고 네로가 그 옆 잔디밭에 세상 편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마치 그 할머니가 네로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겨웠다. 그 뒤로 네로와 할머니의 그런 정겨운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네로는 나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그 외로운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왔던 것 같다. 그 할머니 가족은 이미 7-8년 전부터 그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거동이 약간 불편한 아그네스 어머니는 80세도 더 되어 보이는 노인이다. 나보다 더 외로워 보이는 그 할머니는 외출은 거의 하지 않고 정원에 각종 꽃을 심어놓고 가꾸면서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가 영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해 직접 얘기를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오래된 이웃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주고받는다.


네로11.jpg


이렇게 네로와 할머니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친한 이웃으로 지낸다. 아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셋이 서로에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없어 각자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으니 말이다. 네로가 내뱉는 소리를 나와 할머니가 이해할 수 없고 내가 하는 한국말이나 영어를 할머니와 네로가 알아듣지 못하고 할머니가 구사하는 폴란드어를 네로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언어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셋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나의 경우 극히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아내가 자주 외출을 해서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필라테스니 라인댄스니 이것저것 배우는 게 많고 새로 사귀는 친구가 많아 외로움 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할머니는 딸과 사위가 일을 하기 때문에 낮시간엔 거의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더구나 딸 아그네스는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할머니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네로 역시 친구고양이가 없는 게 확실하다. 가끔 덩치 큰 누런색 고양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함께 노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고양이는 원래 독립심이 강한 동물이어서 혼자 지내는데 익숙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치는 네로의 모습은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이렇게 외로운 존재인 우리 셋은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못해도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혼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원묘지 Open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