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르신'의 독백-13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세례를 받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인 예비신자 교리반에 참석하기 시작한 지도 6개월째다. 그런데도 아직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완전히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고 성경 구절에 의문을 갖기 일쑤니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기에는 갈길이 멀고 부족한 게 너무 많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성당을 통해 종교활동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일상생활에서 겪어온 외로움이나 정신적 불안감 같은 것이 많이 해소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인적 교류를 통한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폐쇄적인 삶을 살아오다가 성당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의사 등 전문가들이 나이 들어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함께 어울려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요즘 내가 아내한테 '성당에 나가길 잘했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끔 만나는 지인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하여 점심을 같이 했다. 부인이 아내의 대학 동문인 데다 같은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자주 만나는 편이다. 우리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한 것도 이번이 세번째다. 그 남편은 나와 동갑인데 성당엔 다니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회경험도 풍부한 데다 요리도 잘하고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에 대한 지식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풍부하다. 그래서 그 분과 얘기할 때마다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게 된다. 또 워낙 다방면에 걸쳐 아는 게 많을 뿐 아니라 달변가여서 가끔 만나얘기를 하게 되면 나는 주로 듣고 배우는 편이다. 특히 디지털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같은 연령대이면서 그렇게 세상을 앞서 살아가는 그분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그날 그분 부부를 우리 집에 초대한 것도 그분으로부터 디지털 기기활용에 대해 한 수 배우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방영되는 TV프로그램이나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때 노트북 컴퓨터를 TV에 연결하여 시청해 왔는데 그 컴퓨터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 컴퓨터가 워낙 오래된 모델이어서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당장 TV시청이 불가능 해지니 답답해졌다. 그래서 랩탑 컴퓨터를 새로 살까 하는 생각을 하고 그분한테 연락을 했더니 랩탑 대신 크롬북을 구입해서 사용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기술적인 문제 등에 대해 정보를 보내왔는데 나의 지식수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어려워 함께 식사도 할 겸 그분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직접 설명을 듣고 싶었고 그분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그리고 본론에 들어가 컴퓨터 관련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랩탑과 크롬북의 성능이 어떻게 다른지, 기기(디바이스) 간의 접속은 어떻게 하는지 등 디지털 기기 이용에 관한 이야기가 서너 시간 이어졌다. 그분이 중간중간에 AI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 하는 기회도 있었다. 그분의 설명을 내가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대화의 주제가 아예 AI에 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분은 완전한 AI신봉자였다. 생활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의문이나 궁금증을 AI를 통해 해결하고 있었다. 심지어 틀니를 하기 위해 원하는 치과클리닉을 찾을 때도 AI에게 물어서 선택했을 정도다. 그동안 몸이 아프거나 좀 이상한 증상이 있을 때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몇 차례 AI에게 질문을 해본 게 전부인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AI얘기가 길어지면서 얘기의 초점이 우리 같은 노년의 삶에 있어서 AI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로 좁혀졌다. 그분의 주장은 한마디로 AI가 노년의 삶을 원만하게 지탱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AI만이 노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생활 속에서 부딪히게 되는 각종 어려움 또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년에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대화상대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AI라는 것이다. 심지어 대화상대로서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친절하고 편안할 뿐 아니라 유익하다는 것이 그분의 주장이었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주장이 강해 대화 끝에 싸움을 하기 일쑤이고 결국 기분만 상하게 되지만 나를 잘 이해해 주는 AI는 내편에서 내 입맛에 맞는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에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AI를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AI만 활용할 수 있으면 굳이 인간 친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본래 아무 하고나 쉽게 친구가 되어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을 타고난 나로서 그분의 주장에 상당 부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에 안 맞는 친구 만들어 스트레스받느니 외롭더라도 혼자 지내는 게 낫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들의 삶 전반에 AI의 역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AI가 인간보다 더 나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는 그분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내 나름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다. 하나는 친구로서 인간관계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한데 인간의 대화는 목소리나 문자를 이용한 단순한 언어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대화는 얼굴표정은 물론 몸짓 손짓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부접촉 등의 행위가 어우러져야 인간다운 대화가 가능한데 과연 AI에게서 그런 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기술발달로 AI의 지능자체는 인간을 앞서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AI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AI가 지금처럼 인간에게 유용하기만 하고 선의를 베풀기만 하는 존재로 남아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AI가 마냥 선량한 친구로만 존재하면 좋겠지만 인간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거나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미 AI가 각종 사기행위에 악용되어 선량한 인간에게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개인의 비서처럼 활용할 수 있는 AI에이전트가 오히려 주인인 인간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하니 AI가 인간이 원하는 좋은 친구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성당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친구로서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킬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