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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영 Mar 10. 2022

퓨전 사극의 두 얼굴

[장르 한 스푼_#1] 아찔한 외줄타기, 역사적 재해석과 역사 왜곡

주색으로 유명한 왕의 실체가…조선왕조실록 한낱 찌라시네.괜히 쫄았어



경자년 말과 신축년 초까지 우리들의 주말을 책임진 드라마가 있다. 바로 신혜선, 김정현, 배종옥, 김태우, 설인아, 나인우 주연의 TvN 토일 드라마 철인왕후다. 지상파와 달리, 케이블 방송은 시청률이 5% 이상을 넘기면 성공이라고 본다. 12월 12일 첫 방송 시청률 8.030%을 달성하고 2월 14일 시청률 17.371%으로 종영한 철인왕후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앞서 판타지 로맨스 장르 드라마 「구미호 뎐」이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종영한 만큼, 다시 판타지라는 장르에 도전하고 거둔 대박이라 연출진들에게는 더욱 의미 깊고 특별한, 혹은 아찔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림1. 철인왕후


퓨전사극이 정확히 어떤 장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퓨전(fusion)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상의 것을 섞어서 새롭게 만든 것’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다. 즉, 퓨전사극이란 역사적 사실을 극화하는 ‘사극’이란 장르에 사실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거나 현대극의 요소들을 더함으로써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새로운 드라마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http://www.dynews.co.kr)



사극은 엄격한 고증을 요구하지만, 퓨전 사극은 사극이 가진 틀을 빌려와 그 안에 작가의 상상력과 현대적 요소들을 채운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적 지식과 현대적 감성이 공존하게 된다. 비빔밥의 성패는 고추장과 참기름, 밥과 채소의 적절한 배율에 달려 있다. 방문한 식객들의 입맛을 성공적으로 사로잡은 철인왕후는 역사와 현대적 요소를 맛있게 비빈 셈이다.


특히 ‘판타지’라는 조미료가 더 추가되면서 퓨전사극은 더욱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2010년 박유천, 박민영 주연의 「성균관 스캔들」은 조선시대 금녀의 공간이었던 성균관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멜로 상황을 연출해 내어 평균 시청률 10%를, 2016년 박보검, 김유정 주연의 「구르미 그린 달빛」은 평균 시청률 16.9%를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2018년, 필자의 군생활 시기에 방영한 「미스터 션샤인」은 최고 시청률 21.828%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앞서 제시된 드라마들의 시청률만 보면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는 성공 보증수표가 된 듯 싶지만, 독이 든 성배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된 「조선구마사」와 「철인 왕후」를 보면 퓨전 사극도 고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퓨전/판타지’라는 요소에 의존하며 상상력을 펼치던 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린 셈이다.


그림2. 조선왕조실록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지상파 유일 엑소시즘 사극 드라마를 표방하며 방영했지만 많은 역사 왜곡 문제에 시달리다 결국 2화만에 폐지되었다. 특히 태종이 환상에 시달리며 양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뜨거운 감자가 되어 역사 왜곡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철인왕후」 역시 극중 김소용(역 신혜선)이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찌라시라고 말하는 등 뒤늦게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극중 대사만으로 조선왕조실록의 가치가 훼손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난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선시대로 영혼이 옮겨간 현대인이 말할 법한 일이라는 것이다. 드라마의 개연성 측면에서 조금 더 유하게 바라봐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인왕후가 중국 웹드라마 <태자비승긱기>의 리메이크 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리송해진다. 중국의 노골적인 문화공정이 논란이 되는 오늘날, 드라마적 상상력으로 유하게 넘겨야 하는지 작가의 상상력에 어느정도 제동이 필요한지 토의가 필요하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판타지’라는 장르는 작가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다. 하지만 태양을 향해 비상하던 이카루스의 최후를 우리는 알고 있다. ‘재미’라는 원초적 욕망을 드라마에 담아내기 전에, 나의 상상력이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재미와 고증이라는 아찔한 줄다리기 사이에 낀 작품은 울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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