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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르 Sep 27. 2021

그녀(Her)

결국, 프로그램은 사람을 대체할 수 없었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했고, 경험하고 싶은 다양한 감정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등급을 매기곤 한다.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감정부터 오직 한 명과 공유하고 싶은 감정,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감정까지 말이다. 감정의 깊이는 공유하고픈 대상의 범위와 반비례한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감정은 대부분 비슷한 질량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을 모든 사람과 나누다 보면 조금씩만 나눠줄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얕아지게 되는 것이고, 한 사람과 나누면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그 감정이 깊어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감정이 어떤 재질로 구성되어있는가는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그 깊이를 매길 수 없기에 예외로 두도록 하자.



감정이 주 원천인 인간과 그 인간의 감정 프로세스를 학습하여 공식화했다. 인간에게 프로그램이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무엇을 야기할지는 정확하게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떠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된 강아지와 자연적으로 탄생한 강아지를 동일하게 인식하여 후자를 죄책 감 없이 고통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무의식 중에 자리 잡은 이러한 인식은, 강아지들이 고통을 느끼는 모습조차 하나의 프로그래밍된 출력물로 여겨, 최종적으로는 타 개체를 사물화 하여 인식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다른 면에 있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갈 수도 있다. 인간을 통해 이뤄내지 못한 이상적 관계를, OS를 통해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결핍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 개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비칠 테지만, OS의 제작자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저 자신들이 만들어낸 서비스를 소비하는 수요층일 뿐이니.




가끔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이미 다 느낀 것 같아.
그럼 새로운 느낌 없이 덤덤하게 사는 거지.
그냥 이미다 느껴 봐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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