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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르 Sep 30. 2021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너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엄마에겐 악마, 자신에겐 가혹했던 케빈의 이야기. 한낮 사춘기 반항심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석연치 않았던 행동들이었다. 누구의 잘못이고,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가를 따져보기엔 그 순서가 모호한 전쟁의 연속이었지.


엄마라는 원치 않던 역할에 내던져져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해야만 했던 에바에게, 사회적으로 규정되었던 임신과 출산의 숭고한 모습은 가식적으로 다가왔으리라. 결국 모성애라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었다. 무책임하게 던져진 삶을 견뎌내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었을걸, 케빈을 낳은 에바처럼. 


하얀 집 바깥에 칠해져 있던 빨간색 페인트를 지우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케빈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아니면 등 떠밀리듯 했던 선택에 대한 후회였을까. 여전히 그 모호한 감정은 어느 날 누군가를 삶에 들일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너무나 닮았기에,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았던걸 지도 모른다. 케빈은 에바가 자신의 탄생을 원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어릴 때부터 이어졌던 엄마를 향한 분노는 겹겹이 쌓여 결국 동생인 실리아에게 그 화살의 끝이 향했다. 자신과 달리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실리아의 삶과 자신의 어린 시절이 비교돼 그 억울함이 더해졌으리라. 그는 자신의 엄마였던 에바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쥐어주기 위해 활을 들었다. 


어쩌면 관성의 법칙, 물체가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처럼 케빈은 자신의 분노를 유지하기 위해 활을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덮이고 덮인 분노들은 그대로 굳어 그 분노의 시작을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왜 그들을 죽였는가라는 사실보다, 왜 그녀를 죽이지 않았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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