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십오일

수신자 부담

by 잔르

마지막 편지로부터 한 달하고도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제목도 네 글자에서 다섯 글자로 써야 하는 시간이네요. 그동안 어찌 지냈을지 매우 궁금하셨을 것 같은데요. 난생처음으로 누군가를 생각하고 보고 싶어 하며, 스스로에 대해 계속 생각하던 나날이었습니다.

그게 누구인지 궁금해하시겠지만, 이제서야 마음의 한켠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꽤나 재밌는 두 달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6개월처럼 느껴졌고요. 이제는 얼굴과 목소리 모두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제법 가을 같습니다. 아침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땀을 안 흘려도 되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점심시간이 기대가 됩니다. 이런 소소한 것으로 하루를 연장해 가는 게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저의 좌우명이 무엇인가 물어보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간혹 잠깐 알게 된 이들이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는데, 그것이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 먹고 일어나고, 일상적 행위가 삶을 영위하는 거 아닌가 하는 (뻔한 말)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위의 문단의 글을 읽으시면서 진심이 아닌 아무 말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요즘 재밌는 일이 있으신가요? 아님 미소를 짓게 하는 일이라던가요. 이런 것들도 계속해야 느는 것 같은데, 요 근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 나눴던 주제들의 끝이 늘 같았거든요. 어쩔 수 없고, 다 그렇다는 답들. 그런 냉담과 냉소가 있는 담소는 어쩐지 잠시 미뤄두고 싶습니다. 제 블로그명이 "다 그렇지 않은"이 된 이야기를 해드린 적이 있나요.

다 그렇다는 말에 불만을 쏟는 저에게 "그럼 너는 다 그렇지 않으면 되겠네."라는 말을 듣고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이름대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그렇지 않은 글들만 남기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쓰임에 맞게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ㅡ
힘이
들 때면
글 숲으로
도망칩니다.
읽지도 않을 책들을
쌓아두고,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듭니다. 글 나무들이
빼곡합니다. 행간과 행간, 맥락과 맥락
사이. 곳곳에 부는 바람을 느끼고, 손에 담아
보겠다며,
주먹을 쥐지만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전달해 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역부족이 아닌 옆 부족을 불러와도 안 되는
일입니다. 숲은 그대로입니다. 변한 건 나무를 보는
나겠죠.
그대로인
숲에서
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글 숲으로
뛰어들어 갑니다.


근래 시는 시각적인 매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껏 썼던 시들을 모아보니, 진짜 그렇더라고요. 저만의 그림들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이번을 기회 삼아 위에 지도를 넣어뒀습니다. 아마, 아실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그곳에서 곧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편지가 영 판인 사람 드림



P.S) 편지글도 퇴고를 하시나요? 저는 사실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전, 미리 써놓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대로 옮겨 적지 못하고, 늘 양은 넘치고, 글자는 작아집니다. 우스갯소리로 편지와 함께 돋보기를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들었었고요. 그렇지만 제 마음을 담기에는 매 순간 편지지가 너무 작습니다. 적절한 편지지를 찾을 때까지 계속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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