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자 부담
마지막 편지로부터 한 달하고도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제목도 네 글자에서 다섯 글자로 써야 하는 시간이네요. 그동안 어찌 지냈을지 매우 궁금하셨을 것 같은데요. 난생처음으로 누군가를 생각하고 보고 싶어 하며, 스스로에 대해 계속 생각하던 나날이었습니다.
그게 누구인지 궁금해하시겠지만, 이제서야 마음의 한켠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꽤나 재밌는 두 달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6개월처럼 느껴졌고요. 이제는 얼굴과 목소리 모두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제법 가을 같습니다. 아침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땀을 안 흘려도 되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점심시간이 기대가 됩니다. 이런 소소한 것으로 하루를 연장해 가는 게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저의 좌우명이 무엇인가 물어보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간혹 잠깐 알게 된 이들이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는데, 그것이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 먹고 일어나고, 일상적 행위가 삶을 영위하는 거 아닌가 하는 (뻔한 말)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위의 문단의 글을 읽으시면서 진심이 아닌 아무 말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요즘 재밌는 일이 있으신가요? 아님 미소를 짓게 하는 일이라던가요. 이런 것들도 계속해야 느는 것 같은데, 요 근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 나눴던 주제들의 끝이 늘 같았거든요. 어쩔 수 없고, 다 그렇다는 답들. 그런 냉담과 냉소가 있는 담소는 어쩐지 잠시 미뤄두고 싶습니다. 제 블로그명이 "다 그렇지 않은"이 된 이야기를 해드린 적이 있나요.
다 그렇다는 말에 불만을 쏟는 저에게 "그럼 너는 다 그렇지 않으면 되겠네."라는 말을 듣고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이름대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그렇지 않은 글들만 남기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쓰임에 맞게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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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들 때면
글 숲으로
도망칩니다.
읽지도 않을 책들을
쌓아두고,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듭니다. 글 나무들이
빼곡합니다. 행간과 행간, 맥락과 맥락
사이. 곳곳에 부는 바람을 느끼고, 손에 담아
보겠다며,
주먹을 쥐지만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전달해 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역부족이 아닌 옆 부족을 불러와도 안 되는
일입니다. 숲은 그대로입니다. 변한 건 나무를 보는
나겠죠.
그대로인
숲에서
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글 숲으로
뛰어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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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시는 시각적인 매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껏 썼던 시들을 모아보니, 진짜 그렇더라고요. 저만의 그림들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이번을 기회 삼아 위에 지도를 넣어뒀습니다. 아마, 아실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그곳에서 곧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편지가 영 판인 사람 드림
P.S) 편지글도 퇴고를 하시나요? 저는 사실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전, 미리 써놓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대로 옮겨 적지 못하고, 늘 양은 넘치고, 글자는 작아집니다. 우스갯소리로 편지와 함께 돋보기를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들었었고요. 그렇지만 제 마음을 담기에는 매 순간 편지지가 너무 작습니다. 적절한 편지지를 찾을 때까지 계속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