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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송 Oct 16. 2019

빨강 아니면 노랑, 그 사이의 주황

무지개는 일곱 빛깔이 아닌데



서산 너머에서 밤새 운 자 누구인가
아침 일찍 무지개가 떴네


슬픔이 저리도 둥글 수 있다면


이홍섭,「무지개」중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 지금이야 무지개가 일곱 빛깔이라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무지개는 '흑백청홍황(黑白靑紅黃)'의 오방색이었다. 그 밖에도 미국에서는 여섯 가지 색으로, 멕시코의 원주민들은 다섯 가지 색으로 무지개를 그려왔다.


지금의 일곱 가지 색으로 무지개를 정의한 사람은 뉴턴이다. 당시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빛이 흰색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사물의 색이 달라지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던 뉴턴은 프리즘을 통한 실험으로 빛이 굴절되어 여러 파장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프리즘으로 구분할 수 있는 빛깔은 일곱 가지보다 훨씬 많은 207가지라고 한다. 다만 당시 숫자 7을 중요하게 여겼던 문화적 관습에 따라 의례적으로 무지개에도 일곱 빛깔을 부여한 것이다.




색깔은 주관적인 뇌의 경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색을 지각할 수 있을까? 나뭇잎은 초록색 빛을 뿜어내서 초록빛인 걸까? 추측은 근사했다. 다만 초록빛으로 보이는 나뭇잎은 초록색에 해당하는 범위의 빛의 파장만을 반사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나뭇잎을 초록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색깔이란 지극히 우리가 주관적으로 경험하고 뇌의 활동을 통해 재구성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체커보드 착시 / 이미지 출처: [1] 


그중 재밌는 것이 '색채 항등성(Color constancy)'인데 이에 해당하는 예시를 하나 가져왔다. '체커보드 착시'라고 불리는 것인데,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B가 A에 비해 밝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같은 색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보인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의 시각피질은 기초적인 시각정보처리를 할 때 '경계 탐지(edge detection)'에 매우 특화되어 있다. 따라서 밝은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A와 어두운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B를 볼 때 상대적으로 대비가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또한 세대를 거듭하며 축적되어온 인간종의 경험으로 기둥의 그림자가 B를 비롯한 영역에 비친다는 것이 의식역하에서 자동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너와 나의 주황


이렇게 개인 내에서의 지각 경험도 눈부시게 다른데, 하물며 개인 간에는 어떨까? 한때 인터넷에 재미 삼아 색채 민감도(color sensitivity) 테스트가 떠돌았었다. 아주 미묘한 채도 또는 명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었는데, 그리 정교한 세팅에서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마다 색채 민감도가 상이했다.



그러니 내가 보는 주황과 당신이 보는 주황은 아마 같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황을 파랑으로 지각하는 일은 아마 없겠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주황은 아주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조금 더 빨강에 가까운 주황을, 당신은 노랑에 가까운 주황을 서로 같은 '주황'이라 믿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게 틀린 건 아니라는 것


무지개 / 이미지 출처: [2]


무지개는 상공의 물방울에 빛이 굴절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니 무지개는 애초에 빨강 따로 주황 따로 각각의 색깔띠마다 성분이 다를 수가 없다. 그저 여러 물방울들이 각도에 따라 제각기의 빛을 반사하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각자가 만들어내는 빛깔은 다를지라도 따로, 또 같이. 그렇게 무지개는 우리에게 잔잔한 희망을 보여준다.


너무도 뻔한 말이어서 이젠 말하는 것도 민망할 정도로 식상하지만, 다른 게 틀린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누군가의 주황은 조금 더 붉은 빛깔일 수도 있음을, 누군가의 주황은 조금 더 노란빛이 감돌 수도 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당신이 아닌 나로서는 도저히 느껴볼 수 없는 마음에 대해 상상을 하고 공감을 하고 이해를 하는 것은 충분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씩은 다르게 만들어졌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당신과 내가 바라보는 주황이 애초에 미묘하게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면 결국 우리가 다른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중요한 건 우리가 결국 하나의 주황을 바라보고 있다는 그 자체가 아닐까.






[1] https://www.divescotty.com/underwater-blog/color-perception-is-your-red-my-red.php

[2] http://www.gmi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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