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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송 Sep 20. 2019

스무남은 해 동안 나를 만든 건 칠 할이 눈물이었다

우리가 눈물로 이루어져 있다면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 「팔복(八福)」






청년 윤동주는 참으로 애통했던 것 같다. 슬픔 이외의 말로는 달리 슬픔을 표현할 길이 없었던지 슬픔을 무려 아홉 번이나 반복하고, 심지어 그것을 '복'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영원히 슬픔을 벗어나지 않겠노라 슬프게 말한다.




눈물을 참다가


얼마 전의 어느 날은 너무도 고단했다. 종일 긴장을 한 탓이었을까, 일과를 마치자마자 맥이 탁 풀렸다. 어느덧 짧아진 해가 그려내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터덜터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순간, 목구멍 어딘가가 꿀렁거리며 뭔가를 쏟아내려는 느낌이 들었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그것을 애써 가라앉히려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하는 만원 버스 안에서도 목울대는 저 혼자 울었다. 가슴을 한껏 달구며 솟구쳐 올라온 훈기에 코가 찡하게 매웠다. 순식간에 눈 앞머리까지 뜨거운 눈물이 번져왔다. 울지 않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며 천장만 바라봤다.


집에 돌아와 결국 울었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온전히 내 것인 슬픔을 위하여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눈물의 역할


사람의 몸은 칠 할이 물이다. 대부분은 혈액과 뇌수 등의 체액을 이루겠지만, 그중 일부는 노폐물과 함께 땀과 소변으로 배출되거나 침과 콧물 등 직접적으로 외부와 접촉하는 기관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는 한편 물은 눈물이라는 형태로 다시금 자신이 있던 세상으로 돌아갈 길을 만든다.


나는 눈물이 우리 몸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성인 남성 평균 키인 175cm를 기준으로 70% 지점은 122.5cm이다. 150cm 중반인 내 키에서는 108.5cm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줄자를 들고 재어보니 딱 심장 아랫부분까지 와 닿는 높이다.


내 몸에 물이 심장 높이만큼 차올라 있다고 상상해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쭈글쭈글해진 심장에 찰랑찰랑 자취를 남기는 그 모습을.




눈물에 잠기기 전에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이틀 간격으로 두어 번쯤을 더 울었다.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삼키며 버스에 타고, 눈 바로 아래 광대뼈까지 번져온 뜨거운 눈물을 느끼며 집까지 바쁘게 걸어가서는 현관문을 닫자마자 최대한 서럽게 울었다.


행주를 쥐어짜듯 배에 힘을 주고 악을 쓰며 눈물을 짜냈다.

이 눈물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 나를 수몰시키기 전에, 슬픔에 사로잡히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가 눈물로 이루어져 있다면


눈물은 심장을 박차며 차오르고 솟구쳐 눈가를 적신다. 방류가 여의치 않을 때는 요동치는 파도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터져 나오리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우리는 모두 각자 몫의 눈물을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적정량에 해당하는 가슴 언저리까지, 누군가는 시시때때로 시큰거리는 코끝까지. 그리고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눈물에 점령 당해 더는 슬퍼할 여유도 없이.


가슴께가 저려오는 것은 곧 눈물이 심장 너머로 차오를 것이라는 경고일지 모른다. 울어서 될 게 뭐 있냐지만, 누구나 소리 없이 흐느껴 본 적 있다. 그때 가슴을 적시며 흘러나오는 것 같았던 그 무언가가, 당신의 칠 할을 이루는 눈물이다.






*이 글의 제목은 서정주의 「자화상」에서의 한 구절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에서 영감을 받은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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