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실에서 실외기 뒤로
그날 저녁 저녁 10시가 넘은 시각,
지니는 아파트 화단 앞에 앉아 있었다.
낮에 창고에서 구조된 후,
세 마리만 남은 새끼들을 데리고 박스 안에 조용히 안겨 있었던 지니.
그날 밤, 마치 또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듯 나를 데리고 걷기 시작했다.
지니가 안내한 곳은 아파트 옆 마트의 세탁실 입구.
입구 테이블 아래엔 빈 락스 통들이 잔뜩 있었고, 그 틈 사이 뒤편 박스 속으로 지니가 쏙 들어갔다.
‘이번엔 여기에 둔 건가…’
그날은 새끼들을 억지로 옮기진 않고, 일단 있는 걸 확인한 뒤 돌아왔다.
하지만 이때부터 알 수 있었다.
지니는 자신이 한 번 위험하다고 느낀 장소엔 다시 가지 않았다. 그게 아무리 편한 곳이더라도, 한 번 노출된 곳은 다시 선택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함께 돌보던 아주머니께 연락을 드리고 다시 세탁실로 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시라도 박스를 거기에 그냥 둬도 될지 여쭤봤지만 그곳 사장님이 고양이를 많이 싫어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둘 수는 없어, 박스를 들고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
지니까지 박스에 들어가니 무게는 제법 묵직했다.
그런데도 지니는 고개만 빼꼼 내밀며 얌전히 박스 안에 있었다. 우리 동 앞까지 와서도 딱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계속 고민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하지만 이때도 또 한 마리 새끼가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홈멘트가 들어있던 박스라 그 위에 놓였던 새끼가 체온이 떨어진 게 아니었을까 싶다.
동네의 한쪽 구석, 냥이들이 지내던 다른 공간들도 가봤지만, 결국은 지니가 살던 동으로 돌아갔다.
지니의 본래 영역이자, 사람들이 그나마 자주 오가지 않는 아파트 실외기 뒤.
그곳에 박스를 놓고, 지니와 아이들을 안착시켰다.
오후가 돼서 왔을 땐 박스 앞에 나와있었는데 자꾸만 박스를 쳐다봤다. 아주머니 딸이 와서 들여다보니 시름시름 앓던 새끼가 결국 차갑게 식어있었다.
잠시 후, 지니는 박스에서 나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세탁실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또 옮기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제발 여기 정착해 줘…’
그날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
지니는 박스 앞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런가 보니 실외기 앞 화단에 누가 지니랑 새끼들을 봤는지 먹을걸 갖다뒀다. 또 위험성을 느낀건가?
그리고, 역시 박스 안엔 새끼들이 없었다. 또 다시 아이들을 옮긴 것이다.
나는 다시 세탁실로 달려갔다. 쫓아온 지니는 날 힐끔 쳐다보더니 이번에는 더 안쪽으로 기어들어갔다 나와서 내 옆에 섰다.
제발.. 안쪽을 살펴보니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새끼들이 놓여 있었다.
배 포장지 위에 덜덜 떨며 누워 있는 작은 몸들.
특히 맨 아래 깔린 갈색 아기 고양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날씨는 추웠고, 바닥은 차가웠다.
집에 달려가 핫팩을 가지고 나왔고, 나는 결국 새벽시간 무작정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