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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women Nov 12. 2017

교토발 김포행 비행기

오지은, <익숙한 새벽 세 시>를 읽다.

짧은 비행이라고 얕잡아 보았다. 기내에서 시간을 때울만한 거리를 미리 준비하지 않은 탓에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말 그대로 '멍'을 때려야 했다. 아무 생각하지 않기가 주특기인 이들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나는 그 시간이 견딜 수 없이 무료했다. 입국 서류를 쓰는 것이 그나마 뭐라도 할일이 주어진 것마냥 안심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2박3일의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교토발 김포행 비행기. 이륙 직전이 되어서야 며칠 전의 무료함이 떠오른 나는 급히 리디북스 앱을 켜고 구매목록에 있는 몇 권의 책들 중 한 권을 내려 받았다. 비행기는 본격적으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좋지않은 네트워크 환경에 어떤 책인지 표지 사진조차 확인할 수 없었기에, 말 그대로 랜덤 뽑기 수준이었다. 가까스로 다운로드에 성공한 책은 뮤지션 오지은이 쓴 <익숙한 새벽 세 시>. 어떤 내용이었더라. 제목만 보고는 단번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 '소오름'이란 표현을 써야 하는 걸까. 이 책은 인생이 막다른 길에 몰린 것 같았던 시기의 오지은이 교토에서 한 달간 생활하며 사유했던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8년 남짓 다닌 회사를 박차고 나와, 딸과 단둘이 해외 여행 한 번 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엄마를 모시고 교토를 다녀오던 참이었고. 다만 그 글을 쓰던 시기의 그녀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지난 8년 내내 막다른 길 앞에서 좌절을 되풀이하다가 이제서야 담벼락을 기어올라 세상 밖을 내다보려고 하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나는 어리석어서 계속 헛된 것을 욕망할진 몰라도

거기에 맞아 쓰러지고 싶지는 않은데.

저는 이 싸움 포기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저는 갑니다,

하고 도망치는 법을 배워야 할 텐데. (68-69/364)


부자연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너무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아는 무언가를 놓치고 넘어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외발이기 때문에, 외발이임을 들키지 않고 남들처럼 서 있으려면 위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과장된 농담을 하고 크게 웃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런 자신을 혐오했다. (159/364)


모르는 사람 눈에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욕심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인터뷰어의 질문. 성격까지 좋아 보이려고 한다는 말에 당시의 난 펄쩍 뛰었던 것 같다. 아니 싹싹하게 해도 난리야. 혼자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화가는 말했다. 그렇게 안 하셔도 될 텐데, 왜 무리하세요. 그대로 드러내면 되잖아요.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단 말입니다. (160/364)


나는 기원한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 스스로의 아픔에 오히려 허용하고 있던 어리광, 이해받고 싶어서 오히려 세우고 있는 가시, 그런 것들을 조금씩 털어내고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부디, 있는 그대로 당신을 바라봐주고, 가끔 당신이 항상 빠지는 구멍에 또 빠져서 허우적댈 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구원은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165/364)




그랬다. 나에게도 부자연스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너는 그런 애잖아'라고 정의 내려버리는 사람들 앞에서 일일이 대꾸하진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하고 일일이 대꾸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그때를 돌아보면, 내가 생각해도 나답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 탓도 남 탓도 아니다. 상황이 그러했을 뿐이다. 너무나 꿈을 이루고 싶었고, 잘 해내고 싶었다. 수고하세요 저는 갑니다, 하고 나왔으니, 지금부터는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그곳이 아니어도 구원은 있다고, 나 역시 그렇게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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