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사랑하고 또 싸운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안부차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요즘 너무 덥지. 7월인데 벌써 30도가 넘어서 한여름에 어떻게 지내지?"
"그러게 말이다. 더우니까 입맛도 없어서 대충 먹는다."
"혼자 있다고 참지 말고 에어컨도 켜! 절전형이라 전기세 많이 안 나오니까 걱정하지 말고 틀어.
껐다 켰다 하는 게 오히려 전기세 더 나온대."
"혼자 있는데 뭘 틀어.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 너나 애들 있는데 참지 말고 시원하게 틀어놔. 여름 잠깐 트는 건데."
"잠깐이라면서 왜 엄마는 안 틀어. 맨날 아프다고 하면서 밥도 대충 먹으면 어떡해."
'여름 잠깐'이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 잠깐의 너그러움이 왜 엄마에겐 없는 걸까.
엄마 머릿속에는 '에어컨=전기세 폭탄'이라는 공식이 깊이 박혀있다. 세계 최고의 척척박사님이 와서 아니라도 해도 믿지 않을 만큼 그 공식은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이번엔 화내지 말고 상냥하게 대화해야지.' 나의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 다니면서 아들 둘도 야무지게 키우고 너는 엄마한테 쌀쌀맞은 것만 고치면 100점이야."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뒤에 온다고 했던가. 칭찬에 녹여낸 꾸지람이다.
엄마의 공격이 이어서 날아온다.
"엄마 친구 딸은 엄마한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한다는데 너는 말도 안 하면서 엄마한테 성질만 내냐."
엄친딸 공격은 반칙이지! 반칙에 심술이 나서 꼬인 마음이 입 밖으로 더 나왔다.
친구를 만나고 오거나 일상 이야기를 어쩌다 하면 엄마의 질문은 한 종류로 귀결된다.
"그 친구는 결혼했니?" ("애는 있니?")
"왜 안 했니?" ("왜 안 낳니?")
이것이 나에게는 눌러서는 안 되는 버튼이다. 화를 내게 만드는 버튼. Fire!!!!!
"엄마는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한 건데! 맨날 같은 질문만 하는 거야?"
"엄마가 딸한테 그것도 못 물어보냐?"
"결혼하고 아이가 있으면 무조건 다 행복한 거야?"
"너는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각자의 사정이 있고 지향하는 바가 있을 텐데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고, 그 보통의 삶이 맞다는 식의 대화가 불편하다. 이것이 엄마와 나의 세대차이인가 싶기도 하다.
결혼과 출산이 당연한 세대와 선택이 된 세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같은 질문이 돌아오다 보니 시시콜콜한 말을 안 하게 되었다.
이렇듯 엄마와 대화의 마지막은 항상 같은 풍경을 그린다. 부드러운 밑그림을 덮어버리는 날 선 터치로.
왜 엄마에게 화를 내게 될까?
가족 중 유독 엄마에게 화를 내게 되는 것일까? TV에서 뇌과학자가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뇌에는 내측 전전두피질이라는 나를 인지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 엄마도 인지를 해서 나와 엄마를 동일시한다고 한다. 나라고 인지할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너무 사랑해서 통제가 안되면 불같이 화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내 의도대로 되지 않아서, 통제하고 싶은 상황이 충분히 통제되지 않아서, 위협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여서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화를 낸다.
맞다. 난 엄마를 사랑한다. 그래서 몸도 약하고 아픈 엄마가 대충 끼니를 때우고 더위를 참으며 고생하는 것이 싫다. 절약하는 것도 좋지만 희생하며 힘을 잃는 엄마가 걱정이 된다.
엄마는 편하게 지내지 못하면서 너는 그렇게 하라고 하면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강하게 말하면 내 말을 조금은 들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대화는 끝이 났다.
가깝고 편한 사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너무 가까운 거리가 모녀사이를 방해하는 것 같다. 한발 떨어져서 가까운 어른을 대하듯 예의를 차려보면 나을까? 약간의 거리감이 오히려 방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노 버튼 전원을 끄고 다시 엄마에게 다가간다. 원하는 대화의 방향이 아닐지라도 흘러가게 두는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엄마는 걱정해 주는 딸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딸을 원했을 것이다.
좁아지면 안 된다. 거리감 유지.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