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아들이여, 귀를 열어라

by 서마데

아들 낳은 엄마들 수명 짧아질수도 [출처: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0835693

아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엄마들에게 (저자: 최민준)

딸-둘은 금메달, 딸-아들은 은메달, 아들-딸은 동메달, 아들-둘은 목메달




대체 아들이 어떻길래 제목이 이토록 무시무시한가.

수명이 단축되고 미쳐버린다니?

목메달은 또 무슨 새로운 메달인가? 일단 나는 목메달을 획득했다.



"아이가 있어요?"

"네, 아들 둘이에요."

"아.."

'아니 그 여운은 무슨 의미인가요? 저 괜찮아요. 그런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이건 흔하게 겪는 대화이다. 아들 둘을 키운다고 하면 대체로 안쓰러운 눈빛 발사 또는 위로의 눈빛을 발사한다.

가끔 "저도 아들 둘이에요." 라며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의 동지애를 표현하는 분들도 있다. 괜히 반가운 건 어쩔 수 없다.

목메달은 아들 키우는 분이라면 많이 들어봤을 농담이다. 아들 둘을 키우기 힘듦에 대한 과격한 표현으로 '아들 키워놔 봐야 소용없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육아란 것이 어디 아들만 힘들겠는가.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가사의 노래가 있다. 초등학교 때 들어본 이 노래는 김국환 님의 '타타타'이다. 어린 시절에 들었을 땐 말장난 같은 가사가 재밌다고 생각했다. 저 한 문장에 철학과 자아성찰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김국환 님이 왜 진지한 표정으로 이 노래를 부르셨던 것인지 이제야 조금 알겠다.

나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인간이며 마흔이 넘은 이제야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와 제일 가까운 자신조차도 통제가 어려운데 한창 자라고 있는 아이를 내가 통제하여 키운다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 일이기나 한 걸까. 육아는 성별을 나눌 일이 아니다.



'아들은 키우기 힘들다'의 대표성을 띄는 것은 아마 이 두 가지일 것이다. 체력과 의사소통.

아들육아라고 해서 무조건 양육자의 체력소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의 경우 강아지에 비유하면 비글이라 할 수 있다.

놀이를 할 때 겁이 없고 아무리 위험하다고 주의를 줘도 몸으로 직접 체득해야 하는 타입이다. 심지어 깁스한 팔을 사용하여 높은 곳에 올라가기도 하니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의 보험료가 비싼 이유를!


아들육아를 하며 자주 본 동영상은 최민준 소장의 아들연구소였다. 남자아이와는 어떻게 대화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아들과의 대화법이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아이를 한 번에 불러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때 아이는 손 안 대고 귀를 막는 초능력을 보여준다. 엄마 목소리만 선택적으로 막는 것인지 모르겠지만(그렇다면 더욱 놀라운 초능력이다!) 대체로 불렀을 때 대답을 하지 않는다.

최민준 소장은 아들에게 말을 할 때에는 다가가서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을 마주친 다음 말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한번 부르는데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하는 건가.

그래도 효과적이라고 하니 해보았다. 몇 번은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매번 이렇게 대화할 수는 없다.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서준아, 아들과 대화할 때 얼굴을 감싸고 눈을 마주치는 것이 효과적이래. 네 생각은 어때?"

"엄마 저는 이렇게 하면 혼나는 것 같아서 무서울 것 같아요."

"집중할 때 엄마 목소리가 진짜 안 들리는 거야?"

"들리기는 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대답하기가 힘들어요."

"그럼 그런 순간엔 엄마가 어떻게 불러야 서준이가 잘 알아들을까?"

"엄마가 제가 있는 곳에 와서 말을 하고 같이 손잡고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이래나 저래나 한번 불러오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사실 집중하고 있을 때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에 공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런 방법을 보았다.

아들에게 할 말이 있을 때는 반대로 말하면 된다고 한다.

"ㅇㅇ아 여기 절대 오지 마! 절대 오면 안 돼!!"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다다다다 뛰어 온다는 것이다.

동영상 안의 아이 엄마는 테스트를 했고 아들은 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1초 만에 뛰어왔다. 게다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웃으면서 말이다.


"서준아 이런 방법은 어때? 효과적인 것 같아?"

"무언가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서 오게 될 것 같아요."

결국 호기심과 재미이다.

집중하고 있는 아이를 부를 때는 그것을 뛰어넘는 요소가 등장해야 아이가 반응을 한다.


"와 대박!!!! 진짜 신기하다!"

다다다다~ 뛰어온다.

"엄마 뭐가 대박이에요?"

"너 안 불렀는데 왜 왔어?"

부르지 않아도 궁금해서 달려 나온다.

양육자의 실감 나는 연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험이 반복되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럼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한다.



아들이든 딸이든 제 흐름에 맞는 성장을 한다.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부모도 진화를 해야 할 것이다.

육아에 편하게 가는 지름길은 없다. 공 들이고 인내하는 길만 있을 뿐.

곧 첫째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된다.

나도 한 단계 진화할 준비를 해야지.

너의 사춘기가 지나면 나의 갱년기가 온다.

그때 우리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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