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극혐하는 너와 나, 그리고 당신
대청소하는 날 외엔 쓰지 않던 니트릴 장갑을 꼈다. 식탁에 은행잎과 그물주머니를 펼쳐놓고 엄숙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집에서 은행잎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궁금해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지나간 남편에게 물어봤다.
“이거 뭐 하는 건 줄 알아?”
“하수구”
“아 알고 있네?”
그는 알고 있었다. 문장으로 대답할 필요도 없을 만큼 대수롭지 않았던 것인가. 단 세 글자로 대답을 끝내버렸다.
‘(벌레 올라오지 못하게) 하수구 (에 두려는 거잖아)’
결혼 15년 차, 벌레극혐자의 행보가 놀랍지 않을 만하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도 했던 것이기에.
그때는 계절상 나뭇잎이 떨어질 시기여서 길가에 수북이 쌓여있는 은행잎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한아름 주워와 먼지를 털어내고 말려서 그물주머니에 담으면 벌레퇴치망이 완성된다. 베란다, 현관, 하수구 옆 구석구석에 놓아두고 잊고 지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집에 사는 동안 신기하게도 바선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구축 아파트라 나올 법한데도 말이다.
이로운 은행잎, 고마운 은행나무의 효능을 살펴보자.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는데, 이는 은행나무가 각종 공해물질을 정화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은행나무에는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은행나무에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살균, 살충 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은행잎은 공기를 맑게 하고 바선생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은행잎을 방향제처럼 만들어 집안 곳곳에 두면 바선생 등 각종 해충 방지에 도움이 된다.
출처: https://rtreasury1.tistory.com/entry/은행잎-효능 [지혜와 지식 나눔하기:티스토리]
7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습해지니 어김없이 벌레가 출몰하기 시작한다. 아파트 입주민 단톡방에는 주차장에서 바선생을 봤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 말은 우리 집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지금은 떨어져 있는 은행잎을 구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잎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가 나타나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몇 달 전, 독립을 한 친구 이진은 나처럼 벌레극혐러이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던가. 바선생 때문에 독립을 고민했을 정도였는데 그 두려운 마음이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혼자 있을 때 그 선생과 마주쳤다고 생각해 보라. 선뜻 잡기엔 너무 무섭고, 안 잡으면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건 더 무섭다. 이 글을 쓰면서도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인상이 써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쿠팡에 검색을 했다. 은행잎.
와! 진짜 쿠팡에 없는 게 없네. 은행잎을 판다!
후기를 보니 잎을 우려내어 차로 마시는 분도 있고 에탄올과 섞어 벌레 퇴치제로 사용하는 분도 있다.
도착한 은행잎을 식탁에 올려놓고 그물주머니에 나눠 담기 시작했다. 이 은행잎이 나와 친구를 바선생으로부터 지켜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꾹꾹 눌러 넣었다.
이런 내가 신기한 듯 첫째 아이가 다가와서 묻는다.
“엄마 벌레가 그렇게 무서워요?”
“응. 너도 곤충 말고 다른 벌레는 무서워하잖아.”
“그래도 이런 건 안 해요."
“그러네? 엄마는 초겁쟁이라 너무 무서워."
모기 한 마리만 스쳐도 움찔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늘 어이없어했다.
“덩치도 큰 애가 조그만 벌레 보고 놀라냐. 지금은 그래도 나중에 결혼하고 애 낳으면 맨손으로 퍽퍽 잡을 걸?”
나도 나중엔 엄마 말처럼 될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되길 바랐다.
'엄마 이건 덩치 문제, 출산 문제가 아닌가 봐요. 애 둘을 낳았는데도 똑같아요. 도저히 극복이 안 돼요.
누구든 극복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
육아하면서 성질은 더러워졌는데 여전히 나는 벌레에게 지고 있다. 감히 이기고 싶은 마음조차도 없다. 등치값 못한다는 소리를 오래도록 듣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난 왜 이렇게 벌레에게 꼼짝을 못 하는가?
나와 벌레, 크기로 보나 무게로 보나 작다 못해 하찮기까지 한 그것에 왜 기겁을 하는 걸까.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여름방학 숙제에 곤충채집이 있었다. 이것은 당연히 거를 생각이었는데 딸의 숙제를 알게 된 아빠는 순식간에 파브르가 되었다. 언제 채집했는지 모를 곤충들이 넓은 스티로폼에 핀으로 얌전히 고정된 채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표본이 되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들고 가지? 방학기간 동안 베란다에 두었던 그것을 학교로 옮겨야 한다. 가방에는 절대 넣을 수 없다. 최대한 떨어져 들고 갈 수 있도록 비닐봉지에 한 겹, 쇼핑백에 두 겹으로 담아 개학하자마자 제출했다. 다른 아이들이 채집해 온 것과 함께 복도에 책상을 이어 붙여 전시까지 했었다.
더 강렬하다 못해 기겁을 했던 생생한 기억은 중학교 때다. 아마 이게 결정타가 됐던 것 같다.
학교 뒤가 작은 산이었고 우리 반인 1-1반 교실은 1층에 있었다. 제일 안쪽 구석에 산과 가까운 곳.
산이 있다는 것은 벌레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여름이 되면 메뚜기인지 여치인지 모를(아니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았는데 문제는 남녀합반이라는 사실이다.
남자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곤충을 잡아와서 내 필통에 넣어뒀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필통을 연 순간 무언가가 튀어 올랐고 내 심장은 그보다 더 높게 튀어 올랐다.
“야 손바닥 펴봐. 내가 뭐 줄게. ”
주먹을 쥔 손을 내밀며 한 녀석이 내게 말했다.
아무 생각 없이 손바닥을 펼친 나는 기절초풍을 했다.
“아아아아아악!!!!!!”
내 손바닥에 있는 것은 곤충이었다. 메뚜기 또는 여치인지 모를 아무튼 그거.
이제는 아무리 벌레가 아니라고 주먹을 내밀어도 난 믿을 수 없다. 내 손바닥에 주려고 하지 말고 너의 손바닥을 먼저 개봉하여라.
아마 그 시절의 반복된 기절초풍 경험이 내 심장을 이토록 쪼그라들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지금도 누군가 주먹을 쥔 채 손바닥 내어보라고 하면 무서워서 못한다.
우리 아이들은 곤충을 좋아한다.
공룡홀릭 다음 단계가 곤충홀릭이었는데, 나는 초겁쟁이의 삶을 살아도 아이들에게 곤충이 무섭다는 편견을 심어주고 싶진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알게 된 것이 우리나라에 곤충(공룡 포함) 박물관이 많다는 것이다. 박물관이 아니어도 체험이 가능한 곳도 많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곤충들에게서 가장 떨어져 있는 자리는 중앙이다. 그곳에 서서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누에까지 맨손으로 만지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크면 나 대신 벌레를 잡아줄 수 있겠구나. 후훗’
은행나무 열매는 밟으면 불쾌한 냄새가 나지만 나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나에게 이렇게나 이로운 은행잎인데 그 냄새가 대수랴. 나는 후각보다 시각과 촉각이 예민한 사람인가 보다. 나의 지푸라기는 은행잎 일지어다.
효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마음 안정에 최고인 은행잎.
벌레극혐러들이여, 은행잎을 들이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