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없이 맞은 첫 명절
※ 2025년 10월에 쓴 글입니다.
봄에 아내가 하늘나라로 떠난 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
아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주변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그 공허함을 잘 견디고 있다.
이번 명절을 앞두고 아내를 위한 차례상을 차릴까 고민을 했었다. 며칠 전 형수님께서 “차례상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차례 음식을 준비해 드리겠다”라고 연락을 주셨지만, 깊이 생각한 끝에 차례상을 차리지 않기로 했고 형수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 판단의 기준은 단 하나였다.
‘아내가 차례상을 받기를 원할까?’
생각해 보니 답은 명확했다. 첫 명절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의례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움과 사랑을 담은 마음이라 믿었다. 장례 절차 때부터 형식보다는 마음을 우선해 왔으니, 이번 명절도 같은 흐름으로 이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차례의 또 다른 의미는 남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고인을 추모하는 것인데, 나 혼자 차례를 지내는 것은 오히려 마음을 더 외롭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매일 아내를 위해 묵주 기도를 바치고 있다.
그 기도를 통해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고, 동시에 내 마음도 지탱할 힘을 얻는다.
그래서 명절에 굳이 차례상을 차리지 않아도, 매일의 묵주기도가 이미 ‘살아 있는 차례’이며 하나의 '영적 제사'라고 믿는다. 아내도 분명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아버지 댁에서 형네 가족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성당에 가서 분향하고 위령미사에 참여했으며 연도도 올렸다.
어제 오후에는 처제가 정성껏 준비한 추석 음식을 들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 바쁜 와중에도 직접 음식을 만들어준 마음이 참 고마웠다. 함께 아내를 보내준 장소를 찾아가서 처제가 가져온 꽃을 놓고, 가는 길에 들른 스타벅스에서 아내가 즐겨 마시던 디카페인 소이라떼를 사갔다. 그곳에서 한 시간쯤 머물며 아내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애써준 처제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오늘 들은 이야기로는, 어제 나와 처제가 그 자리를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처형과 조카도 그곳을 찾아와 아내를 추모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으니, 아내도 하늘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을 것이다.
명절 일정이 모두 끝난 오후, 넷플릭스를 켰는데 우연히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우리들의 발라드>를 보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생전에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보곤 했다.
〈나는 가수다〉를 시작으로 〈K팝 스타〉, <복면가왕>, <히든 싱어>, 〈미스터/미스 트롯〉, 〈싱어게인〉 등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 보며 음악 이야기를 나눴었다. 여러 장르 중에서도 단연 우리가 가장 사랑한 음악은 ‘발라드’였다.
〈우리들의 발라드〉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건 아내가 정말 좋아했을 프로그램이네.”
주 출연진은 10~20대 젊은 세대이고, 참가자들의 평균 나이가 18.2세라고 한다.
이전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달리 150인의 평가단이 집단 지성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9인의 연예인 평가단을 포함한 총 150명의 평가단에서 100명 이상에게 합격을 받아야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방식이다. 연예인 평가단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크러쉬, 정승환 등의 가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내가 함께 봤다면 분명 즐겁게 시청했을 것이다.
앉은자리에서 1~2회를 연달아 보았다. 정말 노래를 잘하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그중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흔든 참가자는 1회 마지막에 등장한, 제주에서 상경한 여성 참가자였다.
그녀가 선택한 곡은 임재범의 〈너를 위해〉. 남성적인 원곡이라 잘 어울릴까 싶었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녀의 목소리는 깊고 맑았으며, 감정은 진심이었다. 너무 인상 깊어서 뒤로 돌려 다시 보기까지 했다.
심사위원 몇몇이 눈물을 흘렸고,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었다.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젊은 여성이 혼자 제주에서 상경해 노래를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으셨나요?”라고 묻자, 그녀가 답한 부모님의 말씀은 “너 하고 싶은 거 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며칠 전 캐나다에 있는 딸이 밴드에 올린 글이 떠올랐다.
딸은 엄마와의 마지막 두 번째 통화에서,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꽃 말고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너는 네가 좋아하는 걸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꼭 찾고 즐기면서 살아야 해.”
그 후 딸은, 엄마가 더는 말을 할 수도, 카톡에 답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혹시라도 읽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엄마의 카톡에 이렇게 남겼다고 했다.
“엄마... 부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가 애써주신 덕분에,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것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언제나, 정말 감사드려요.”
딸은 엄마가 자신에게 따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통화가 이미 딸을 향한 아내의 유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아내를 다시 만나는 날까지, 딸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이 닿는 데까지 돕고자 한다. 그것이 아내가 나에게 남긴 또 하나의 부탁이자, 바람일 것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 덕분에, 아내 없이 맞은 첫 명절이 조용히, 그러나 따뜻하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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