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 이야기 #1

지뢰밭에서 살아남기

by Geoff Jung

여행의 즐거움은 꼭 여행지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낯선 도시의 공기를 마시고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기쁨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설레는 순간은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 속에 있다. 항공권을 검색하고, 지도를 들여다보고, 숙소를 고르며 일정을 그려보는 과정 속에서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물론 아무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이 주는 긴장감과 우연의 재미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준비의 밀도가 여행의 만족도를 결정한다는 생각을 나는 점점 더 하게 된다.


요즘 나는 두 번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1)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5월이면 아내의 1주기가 돌아온다.
아내와 이별하고 혼자 거의 일 년을 살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얼마 전 일 같은데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 시기를 이 땅에서 그대로 감당할 자신이 없다. 전통적인 제례를 따를 생각도 없었기에, 아예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아내와 함께 가고 싶었던 도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내가 가보고 싶어 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아내를 기억하며 미사를 드리고 싶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한국 성당처럼 연미사를 신청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도 그 성당 안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에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딸 가족—딸, 사위, 손자 두 명—이 동행하기로 했다. 현지 공항에서 만나기로 계획했다. 손자들은 13살과 9살인데, 둘 다 축구를 좋아하고 특히 큰 손자는 프로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바르셀로나 FC가 워낙 유명한 팀이다 보니 두 손자 모두 이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사실 여행지를 정할 때 나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도시를 원했고, 손주들은 활기차고 축구 열기가 느껴지는 도시를 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두 조건을 함께 고려하다 보니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이 바르셀로나였다.


올해 초부터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지난달에 항공권 구입과 숙소 예약을 마쳤다. 내 항공 일정은 서울–도하–바르셀로나이고, 딸 가족은 빅토리아–캘거리–암스테르담–바르셀로나 일정이다. 숙소는 사그라다 성당에서 가까운, 방 3개와 화장실 2개가 있는 아파트를 Airbnb를 통해 예약했다.


이제 남은 예약은 사그라다 성당 관람과 바르셀로나 FC 경기장 투어다. 성당 관람은 내가 맡고, 축구장 관람은 딸이 하기로 했다.


사그라다 티켓 예약 해프닝


인터넷에서 ‘사그라다’를 검색하니 곧바로 예약 사이트가 나왔다. AI를 통해 미리 알아본 바로는 약 두 달 전에 예약이 오픈된다고 했으니, 5월 관람을 위해서는 3월 초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접속한 사이트에는 향후 1년까지 예약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타워 관람을 포함한 성인 티켓 가격은 85유로. 작은 손자를 포함한 총금액은 350유로, 한화로 약 60만 원이었다. 최근 물가 상승을 감안해도 성당 관람 비용치고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서 성당을 보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이래서 여행을 가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나 보다. 그 비용이 아까워서 관람을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여행을 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관람할 것이라면 늦기 전에 예약하기로 하고 신용카드를 꺼내 들었다. 혹시 날짜라도 잘못 클릭하면 낭패일 테니 화면을 신중히 살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AI에 따르면 타워 관람은 동쪽과 서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는데, 예약 화면 어디에도 타워 선택 옵션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다시 ChatGPT, Gemini, 그리고 Perplexity까지 동원해 이유를 찾아보았다. AI들은 내가 선택한 날짜에 한쪽 타워가 이미 매진되었을 경우 선택 옵션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Perplexity가 한 가지를 물었다.
“지금 보고 있는 사이트가 공식 사이트가 맞습니까? 주소를 알려주시면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보고 있던 주소는
www.sagradafamiliatickets.org 였다.

Perplexity의 답은 간단했다.
“그 사이트는 공식 사이트가 아니라 판매 대행 사이트입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Perplexity가 알려준 공식 사이트
www.tickets.sagradafamilia.org 에 접속해 보니, 현재 예약은 4월 말까지만 열려 있었고 동쪽·서쪽 타워 선택 옵션도 분명히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가격이었다. 성인 36유로, 작은 손자는 무료. 총금액은 144유로, 약 25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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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대행 사이트에서 36유로짜리 티켓을 85유로에 판매하다니. 해도 너무했다. 게다가 약관에는 환불 및 취소 불가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나는 결제 직전까지 갔었다. 어떻게 마지막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아내가 조금 도와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축구장 투어를 예약할 때 반드시 공식 사이트인지 확인하라고 신신당부했다.


(2) 캐나다 여행


올해 7~8월은 캐나다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2022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매년 캐나다를 방문하긴 했지만, 항상 한 달을 넘기지 않고 돌아왔다. 최근 6개월 중 3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하면 건강보험 자격이 상실되고, 다시 회복하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그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1년 동안 6개월 이상 해외에 체류하지 않았다면, 몇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즉시 자격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30일 이내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 딸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한국의 무더위를 피해 지내기로 결심했다. 캘거리의 절친 집에도 상당 기간 머물 예정이다.


나의 장기 부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실 아버지가 걱정되었지만, 내가 아버지 곁에 일 년 내내 대기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24시간 간병인과 요양보호사, 그리고 형도 있으니까.


항공권 세일 해프닝


연초부터 항공권 가격을 예의주시했다. 1월 초에는 인천–빅토리아 이코노미 항공권이 CAD 1,200 정도였는데, 1월 말에는 CAD 1,570으로 올랐다. 더 오르기 전에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CAD 1,570짜리 항공권을 구매했다.


그런데 2월 중순, 내 컴퓨터 화면에 항공권 세일 광고가 떴다. 인천–빅토리아가 80만 원이라는 것이다. 설마 하는 마음에 Expedia에서 확인해 보니 90만 원대였다.

나는 거의 165만 원에 샀는데...


순간 속이 쓰렸다. 솔직히 ‘왕 짜증’이 났다.

취소 수수료는 CAD 285, 변경 수수료는 CAD 150. 계산해 보니 취소 후 재구매해도 40만 원 이상 절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환불 방식이었다. 많은 경우 환불액이 현금이 아니라 1년 유효의 항공사 크레딧으로 발행된다는 AI의 설명이었다. 특히 이코노미 항공권의 경우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면 1년 안에 다시 Air Canada를 이용하지 않으면 그 금액은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었다.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까?
하지만 가성비를 중시하는 내 성격상 그냥 덮고 넘어가기엔 금액이 적지 않았다.

나는 TD 은행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고, TD Reward Program을 통해 연계된 Expedia에서 항공권을 구매했기에 취소도 그곳에서 진행해야 했다.


일단 취소 절차를 끝 직전 단계까지 진행해 보았다. Expedia 자체 수수료는 없었지만 항공사가 부과한 수수료는 고객에게 전가하고, 환불액은 최초 결제 수단인 신용카드로 반환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항공사 크레딧이 아니라 현금 환불이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하고 싶어 캐나다 TD Reward Program에 국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이 Air Canada에 직접 확인한 후, 취소 수수료 없이 전액 카드 환불이 된다고 답했다.

'어... 기대 이상의 최상의 조건인데.'


전화를 끊자마자 기존 항공권을 취소하고, 저렴한 항공권을 새로 구입했다. 며칠 후 신용카드로 전액 환불이 확인되면서 이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지뢰밭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기분이다. 물론 목숨을 건 일은 아니고 돈 몇 푼의 문제였지만, 그 긴장감은 작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작은 지뢰밭을 통과하는 과정도 여행 준비의 또 다른 즐거움일지 모른다.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이런 순간을 겪게 되겠지만, 이번처럼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다가올 여행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