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놓친 기회
아내가 떠난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되어간다. 작년에 같은 제목으로 글을 썼을 때는 슬픔과 감정이 앞섰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과정을 조금 더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이다. 성당 미사 도중,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집중해야 할 경건한 시간에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는 아내의 투병 과정에서 적어도 세 번의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닐까.’
숭고한 미사 중에 왜 이런 세속적인 미련이 떠올랐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여전히 부족한 내 신앙심에 대한 자책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꼭 정리해두어야 할 마음의 부채처럼 느껴졌다.
발병 후, 림프암 판정을 받기까지 8개월이 걸렸는데, 대학병원에 가서도 확진까지 2개월이 소요되었다. 처음에는 단순 피부질환으로 생각되어 동창이 운영하는 피부과에서 레이저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았고, 강북 S병원으로 옮긴 후 2022년 12월에야 처음으로 “림프암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나는 비즈니스 업무로 캐나다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아내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회당 300만 원에 달하는 검사비에 부담을 느꼈고, 첫 번째 조직 검사에서 특이 사항이 없자 병리과에서 제안한 추가 정밀 조직 검사를 스스로 취소해 버렸다.
그때 추가 정밀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면 진단을 최소 한 달은 앞당겼을 것이고, 그랬다면 강남 S병원으로 전원 하는 일 없이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강남 S병원으로 옮긴 후, 아내는 두 차례의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견디며 관해와 재발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2024년 11월, 세 번째 항암 치료 후 시행한 PET SCAN에서 내부 장기로의 전이는 관찰되지 않았으나 종아리의 병변은 악화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투병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11월이 조혈모세포 이식을 고려해야 했던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주치의는 한때 제안했던 표적치료와 면역치료를 조직검사 결과를 이유로 시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2025년 1월에야 이식이 논의되었다.
이러한 판단이 표적/면역 치료 제안 이전에 충분히 검토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달만 앞서 수술을 준비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마지막 기회는 공여자를 찾는 과정에서 소실되었다. 2025년 1월, 이식이 결정되자마자 처가 형제 중 세 명에게 먼저 적합도 검사를 부탁했다. 나머지 두 명은 거리와 건강상의 이유로 일단 제외했다. 형제 4명 중 1명은 100% 일치한다는 확률적 통계만 믿고, 세 명 중 일치자가 나오지 않을까 안일하게 낙관했다.
한 달 뒤 결과는 50% 일치와 불일치였고, 다시 남은 두 명에게 검사를 요청해 결과를 받기까지 또 한 달이 흘렀다. 그 금쪽같은 두 달 사이 아내의 암세포는 내부 장기로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결국 100% 일치자를 찾았음에도, 수술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아내의 오판, 주치의의 지연, 그리고 나의 안일함. 이 세 번의 어긋남으로 우리는 도합 넉 달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암 환자에게 넉 달은 생사를 가르고도 남을 시간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 기회들을 모두 붙잡았다면 어땠을까? 아내는 지금 내 곁에서 미소 짓고 있을까? 아니면 아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식 부작용으로 더 큰 고통을 겪었을까? 혹은 이식 수술은 성공하여 회복했더라도 머지않아 재발하여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진 채 이별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강권한 이식 수술이 아내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의 굴레에 갇혀 살았을 것이다.
아내가 앓았던 '말초 T세포 림프종'은 처음부터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이었을까. 당시의 우리는 매 순간 그것이 최선이라 믿으며 결정했다. 그럼에도 남겨진 자의 마음에는 여전히 'What if'라는 잔상이 남는다.
하지만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오늘, 인간의 좁은 시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큰 뜻이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어쩌면 우리가 놓쳤다고 생각한 그 기회들조차, 아내를 더 큰 고통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미리 닫아두신 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훗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 "그때 하늘나라에 일찍 온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축복이었다"라고 말하는 아내의 미소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듯, 아내 역시 고통 없는 그곳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으며, 부활절의 이 무거운 넋두리를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