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호구짓 할래?
오랜만에 남편이 지인을 만나 식사를 하고 왔다. 행주산성에서 닭볶음탕을 점심으로 먹고 카페 다르모에 가서 차를 마시고 더츠커피팩토리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64겹 페스츄리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페스츄리를 그 지인에게도 사서 주고 왔다고 한다.
"당연히 밥은 자기가 샀을 거고, 그 사람이 커피 산 거야?"
아니란다.
"내가 다 샀는데?"
"왜? 그럼 자기가 밥도 사고 차도 사고 빵도 사서 준거야?"
"응. 그 사람 회사도 다른 데 옮겨서 힘들어. 내가 그 정도는 해줘야지...."
그럴 수 있지. 뭐 오랜만에 만나서 밥도 사주고 차도 사줄 수는 있지...
그때까지는 퍼주는 남편 성향을 알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이야기 나누다가 이어지는 말이..
"근데 이번에 그 사람 푸꾸옥도 갔다 오고, 뭐 태국도 갔다 왔대"
남편이 전부터 다음 여행은 푸꾸옥을 한번 가자고 해서 관심이 있었던 여행지였기 때문에 나한테 말을 꺼낸 거였다. 한참을 듣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사람 어렵다면서..? 그런데 해외여행을 최근에 두 군데나 다녀왔다고?"
"그러네...?" 하면서
남편도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보다 형편이 좋은 거 같은데? 하니까 남편도 순간 좀 그랬나 보다.
늘 더 베풀기를 좋아하는 남편이다 보니 누굴 만나면 당연히 밥값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얻어먹고 오는 적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남은 커녕 가족에게조차 얻어먹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댁을 가도 우리가 밥값을 내고 친정을 가도 우리가 밥값을 낸다.
회사에서도 회식을 하고 집에 갈 때 택시나 대리기사를 부르면 남들 다 보내주고 자긴 제일 마지막에 오는 사람이다. 후배들하고 술 먹을 때는 1차도 자기가 내고 2차도 자기가 내고 심지어 3차도 자기가 낼 때도 있고 술 취한 후배들 다 택시비 주면서 먼저 택시 태워 보내고 오는 사람이다.
왜 그렇게 편하게 못 얻어먹냐고...
왜 꼭 자기가 다 내야 되냐고...
요즘은 술자리가 뜸해 그나마 낫지만, 아직도 지인을 만나면 저런다.
그러다 보니 이런 남편의 성향을 아는 사람은 계속 계산을 하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남편을 호구로 보는 거 같아 옆에서 나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그런 거 같다. 자주 만나는 사람은 아니지만 좀 괘씸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만나자고 약속을 했으면 커피 한 잔은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남편 말이 더 가관이다.
"먼저 내겠다고 안 하는데 어떡해.. 자기가 사겠다고 해야 내가 안 사지..."
에휴....
"자기야. 자기 별명 하나 짓자. 호구 남편...ㅎㅎ"
이젠 그 사람 그만 만나라고 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는 남편 탓도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잘못이지..
자기 돈은 어디 땅 파서 그냥 나오는 거야?
왜 그렇게 있는 척하고 싶은 건데?
왜 그렇게 돈 쓰는 데 헤픈 사람처럼 보이는 건데?
오늘도 이렇게 말을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이야기한들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언제까지 호구짓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