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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할아버지 Jul 11. 2023

<무릎서재> 여섯 번째 이야기

아주아주 배고픈 애벌레 The Very Hungry Caterpillar

‘그래, 우리 로아지!’


한 달여 만이다. 로아 몸이 온전히 회복되어, 문화센터 수업에 다시 참가했다. 나도 방학이어서 프로그램 첫 주 로아와 동행했다. 로아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로아를 외출복으로 갈아입히고 기저귀 가방을 챙기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로아에게 외출복으로 갈아입히고 나면 로아는 설렘과 초조함이 교차되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바지춤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쓰고 갈 모자라도 챙기려고 내 방으로 향하면 로아는 바지춤을 잡은 채 뒤뚱거리며 따라온다. 준비가 다 되면 기저귀 가방을 어깨에 메고, 로아를 품에 안아 올린다. 로아는 할아버지 품으로 파고든다. 이제야 로아의 표정은 안도와 기대로 바뀐다.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흥은 로아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달여 만이지만 로아는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할아버지와의 이와 같은 준비가 문화센터 수업에 가는 것임을. 이것이 로아에게 설렘의 일임을. 한 달여 만이지만 할아버지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로아가 아팠던 일이 겹쳐지니 더더욱 그렇다.

  

‘우리 로아 맞아?’


로아가 새로 참가하는 수업은 15-24개월 유아 대상 수업으로 기존 수업보다 연령대가 조금 높다. 막 15개월을 지난 로아에게는 수업활동 참여가 조금 버겁지 않을까? 대부분 로아 보다는 큰 아이들 일 텐데 주눅 들지는 않을까? 더구나 한 달 이상을 수업활동을 쉰 뒤라 로아가 낯설어하지는 않을까? 엄마 아빠 나 모두 일말의 염려를 했다. 그런데?... 기우였다! 문화센터가 있는 대형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호기심에 두리번거리며 발걸음을 자주 멈추던 로아가 문화센터 인근에 이르자 내 손을 잡아끌고 서둘러 문화센터 방향으로 앞서 걷는다. 평소 매번 들르던 금붕어와 강아지 펫샵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교실에서도 로아의 행동은 이미 이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로아보다 개월 수가 많았고, 지도하는 선생님도 새로운 분이었다. 우선, 자리 잡고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로아를 안심시키려고 무릎에 앉혔다. 내 무릎에 앉아 로아는 탐색하듯 교실을 둘러본다. 이내 내 무릎을 벗어나 교실을 한 바퀴 돌면서 이따금 다른 아이들 앞에 멈춰 서서는 한참을 바라보거나 아는 체하기도 한다. 새로운 선생님한테도 마찬가지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율동음악이 나오자 특유의 율동감도 발휘한다. 앉아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서서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손에 들린 타악기로 장단을 맞춘다. 달라진 점이 있다. 몸은 부지런히 이동하고 움직여도 눈망울은 선생님의 동작과 목소리에서 떼지 않는다. 노래 중 ‘~ 멈춰라’ 소리에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동작도 제때 브레이크를 건다.

     

‘우리 로아 맞지!’


이런 활달한 로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불과 한 달 전, 로아가 입원해서 가장 아팠던 시간, 보호자로 옆에서 밤새워 지켜보았던 모습이 겹쳐서다. 낮이건 밤이건 열 때문에 힘없이 누워서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지냈던 로아였다. 잠시라도 앉아있을라치면, 힘에 겨워 옆으로 픽픽 쓰러지던 로아였다. 이랬던 로아가 내 눈앞에서 예전의 활발한, 아니 그 이전보다 더 활달하고 활동적인 로아로 돌아왔으니, 어찌 마음에 물결이 일지 않을 수 있었겠나.


로아야,

일주일 전, 로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문화센터 활동 수업에 다시 갔던 첫날의 이야기란다. 로아의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는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단다. 무엇이 빠른 시간 내에 로아가 다시 활기를 되찾고 한층 성장한 아이로 키워주었을까 하고. 유전적 요인보다는 인간의 노력과 배려로 배우고 키워갈 수 있는 환경적 요인에 더욱 의미를 두는 할아버지이다 보니, 외부적 요인을 생각해 보았단다. 로아의 먹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더구나. 할아버지가 로아의 식습관에 ‘감동’ 해왔기 때문이야.

무엇이 감동적이냐면, 로아가 과일과 야채를 잘 먹고 생선과 같은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야. 로아가 첫 돌 지나고부터 여러 가지 과일과 야채를 먹기 시작했는데, 할아버지를 놀라게 했던 것은 로아가 삶은 브로콜리를 아주 맛나게 먹는 장면이었단다. 시금치와 더불어 브로콜리는 유아 건강과 성장에 좋은 음식으로 추천되지만, 선천적으로 단맛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브로콜리의 밋밋하고 약간은 쓴 맛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런데도 16개월로 향하고 있는 로아는 여전히 좋아하고 있으니 여간 기특한 게 아니야. 브로콜리와 생선 잘 먹는 일에 왜 할아버지는 감동했을까? 아빠 흉 좀 봐야 할 것 같구나. 아빠는 어려서부터 브로콜리와 생선을 거의 안 먹었단다. 성장을 위해 음식을 골고루 먹이고 싶어 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래서 많이 속상했었지. 더구나 어려서 식습관이 성장하면서도 그대로 지속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기도 했고. 사실 지금도 아빠는 브로콜리와 생선을 거의 안 먹거든. 할아버지가 브로콜리와 생선을 가리지 않고 먹는 로아에게 감동할 만하지? 로아의 모습에 아빠가 속으로는 할아버지보다 더 감동하고 있을 것 같구나.


     

로아가 기대하는 동화책 스토리텔링 시간!

오늘은 식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식습관의 중요성을 잘 전달해 주는 동화로 <아주 아주 배고픈 애벌레>가 있는데, 로아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무릎스토리텔링이야.


옛날 옛적에 항상 배고픈 작은 애벌레가 살았단다. 그 애벌레는 알에서 태어나서부터 먹는 것을 매우 좋아했어. 처음에는 사과 한 개, 배 두 개 식으로 먹다가, 몸이 커지면서 먹는 양도 늘어 자두 세 개, 딸기 네 개, 오렌지 다섯 개를 먹었단다. 그나마 먹는 것이 대부분 과일과 나뭇잎이나 풀잎처럼 식물을 먹어서 아프지 않고 잘 자랐지. 그러다가 초콜릿케이크와 아이스크림, 컵케이크, 막대사탕과 같은 달콤한 가공음식에 입맛을 들이고 살라미와 소시지 같은 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우적우적 마구 먹어댔단다. 달콤하고 짠 음식에 길들여지자, 과일이나 채소는 입에 대지도 않게 되었단다. 달콤하고 짠 가공식품을 마음껏 먹은 어느 날 밤이었어. 애벌레는 배탈을 아주 심하게 앓게 되었단다. 밤새 아파서 잠도 못 자고 너무너무 힘들었어. 그제야 애벌레는 깨달았어. 건강하기 위해서는 몸에 좋은 것을 그리고 적당한 양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 애벌레는 식습관을 바꾸기로 했어. 달고 짠 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전에 먹던 싱싱한 과일과 채소, 초록색의 나뭇잎을 먹었어. 그랬더니 배도 아프지 않고, 힘도 생기고, 기분도 좋아졌지. 이렇게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며 건강하고 기분 좋게 다 성장한 애벌레는 고치를 짓고 그 안에서 2주 동안 지냈단다. 그리곤 마침내 아름다운 나비로 태어났어. 날개를 활기차게 팔랑거리며 자유롭게 하늘을 날면서 나비는 기분이 너무 좋았단다. 그러면서 깨달았어. 자기가 이렇게 멋지고 자유로운 나비로 변하게 된 것은 건강한 음식을 먹은 덕분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이제 나비는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면서 다른 애벌레들에게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다른 애벌레들도 건강한 음식을 먹고 스스로를 돌보도록 격려했던 것이야.


로아야, 사실 대부분의 애벌레 모습은 멋지거나 귀엽지는 않단다. 그렇지만 이야기 속 배고픈 애벌레처럼 건강한 음식을 선택해서 자신의 몸을 돌보면서 건강하게 자란다면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야. 이런 애벌레에게서 로아가 살아갈 디지털 시대, 혹은 AI 시대를 살아갈 미래의 로아의 모습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구나.


우선은, 식습관을 보자구나. 사람의 식습관이란 많은 경우 어려서 결정되기도 하지만, 성장하면서 선택하고 배우는 과정의 결과이기도 하단다. 애벌레로 하여금 배앓이를 겪게 만든 정크 푸드는 로아에게도 끊임없이 유혹의 손짓을 할 것이 분명해. 로아가 커가면서 때때로 정크 푸드를 즐기기도 할 거야. 사실 맛있거든. 그런데,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신선하고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골고루 먹는 일이 중요하단다. 이것을 균형 잡힌 식단이라고 해. 디지털 시대, AI 시대는 기술 중심의 사회로 로아의 삶은 자연보다는 기술에 의존하는 삶이 될 것이야. 자연 식단은 그나마 로아가 자연에 연결되고,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야.


다음은,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이야. 균형 집힌 식단이 중요한 것은 건강상의 이유 말고도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되기 때문이란다. 애벌레가 다시 건강한 식단으로 되돌아와 결국은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태어나서 멋지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지. 애벌레가 한 때 빠져있던 정크 푸드와 같은 온갖 유혹들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로아에게도 도처에서 손짓을 할 것이야. 정크 푸드가 건강에 해롭듯이, 이들 유혹에 빠지면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고. AI 시대에 몸과 마음에 적절한 영양을 공급해 주고 디지털 웰빙을 포함한 균형 잡힌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단다.


로아 스스로의 선택과 결심도 중요하단다. 균형 잡힌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결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또한 로아가 명심해야겠다. 동화에서 애벌레가 정크 푸드를 탐닉하는 것도 그리고 건강해지기 위해 다시 과일과 채소, 나뭇잎을 먹기로 한 것도 애벌레 스스로의 결정이었어. 로아가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의 온갖 현란한 영상과 게임, 기술의 홍수 속에서 화면 시간의 균형이나 신체 활동 참여와 같은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선택 여부는, 엄마 아빠도 현명하게 안내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로아의 선택과 결심에 달려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성장과 변화, 자기 통제야. 애벌레의 여정은 성장과 변화 과정이어서 나비로의 변신은 애벌레에겐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이지만,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까지의 애벌레의 여정은 자기 수양과 자기 통제의 결과란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대에는 애벌레와 같은 적응력과 바람직한 성장 마인드셋이 아주 중요한 가치가 된단다. 로아는 좋든 싫든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적응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야.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것처럼 로아에게도 자신을 재창조하고 새로운 도전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단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환경과 기술 문명에 무조건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균형 잡힌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필요한 것이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과 자기 통제력이 되겠지.



오늘은 할아버지 집 텃밭과 정원에 심긴 나무와 식물, 야채를 서둘러 돌보았단다. 수술을 위해 내일 입원하면 일주일간 집을 비워둬야 하기 때문이야. 식물을 돌보면서 <아주아주 배고픈 애벌레>와 로아의 모습이 함께 떠오르더구나. 이 동화를 쓴 분이 에릭 칼이라는 작가인데, 어려서 자연을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지. 여러 가지 살아있는 애벌레와 곤충을 수집해서 어떻게 성장하고 변하는지 직접 관찰하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고 해. 이 이야기 속 애벌레도 자신이 어려서 관찰한 내용을 담아낸 것이고.


할아버지도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일이 재미있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구나. 어려서 시골에서 자랐던 할아버지는 자연과 가까이서 시간을 많이 보냈단다. 집 앞마당 가에 뽕나무와 탱자나무가 있었는데, 뽕나무에는 누에나방 애벌레와 고치가 많았고, 탱자나무 잎에는 호랑나비 애벌레가 살았단다. 누에나방은 징그러워서 만지지는 못하고 한 발 떨어져 뽕 잎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곤 했단다. 그런데 탱자나무에 사는 초록색 애벌레는 너무 귀여워서 잎과 함께 뜯어와 병에 넣어두고 집에서 키우기도 했었지.


지금의 할아버지 정원에 있는 뽕나무를 손질하면서 혹시나 누에나방 애벌레가 있는지 살핀 것도, 마을 산책길에 있는 탱자나무에서 초록색의 호랑나비 애벌레가 있는지 살피는 것도, 어려서의 기억 때문일 것이야. 로아도 내년 봄에 할아버지 집에 오면 이들 애벌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호랑나비 애벌레를 발견하면 집에 데려와 함께 키워보면 어떨까? 벌레를 아주 많이 싫어하는 엄마 아빠를 먼저 설득해야겠지만. <배고픈 애벌레>에서 애벌레가 맛나게 ‘먹어 치운’ 사과와 배, 자두도 로아가 따 먹으면서 왜 애벌레가 그렇게 먹기를 좋아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할아버지 텃밭에 자라고 있는 로아가 좋아하는 브로콜리와 방울토마토, 오이를 쓰담쓰담해주며 말을 걸었단다.


‘얘들아, 고맙다, 우리 로아가 너희를 너무 좋아해

보는 것보단 먹는 것을


섭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 짧은 라이프사이클이 로아의 삶 속에서 이어가는 일이니까


로아 고치 속, 너희 브로콜리, 방울토마토, 오이 애벌레

로아의 해맑은 웃음과 늠름한 향기로 나풀거리며 다시 태어날진대


내가 건강하게 잘 키워 줄게

너희 자연 그대로의 멋과 맛, 향이 로아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에서 아낌없이 배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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