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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할아버지 Jun 27. 2023

<무릎서재> 다섯 번째 이야기

피터래빗 이야기


‘로아야, 입에 있는 거 다 삼키고 먹어야지?’


앞 접시에 담긴 수박 큰 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로아 손에 들린 포크는 어느새 또 다른 수박 조각을 집어 입에 넣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엄마의 제지에 로아는 연신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야? 그래도 입에 든 것부터 다 먹고 먹는 거야.’


엄마의 부드러운 제지에도 로아는 더욱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로젓는 반경이 180도를 넘어 270도는 족히 돼 보인다. 그러면서도 흡족한 표정으로 눈은 엄마를 향하고 있고 입은 부지런히 단맛을 즐기고 있다. 엄마는 로아가 너무 급히 먹을까 봐 걱정이지만, 다음 수박 조각이 달린 포크는 로아의 손에서 여전히 대기 중이다. 로아는 먹는 리듬을 스스로 가져가고 있는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엄마의 제지에 반응하는 로아 모습에는 짜증이나 반항이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의 제지와 로아의 반응, 둘 다 이 틱톡식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게임’이 재미있는지 한동안 이어진다.


로아야, 아빠가 올린 영상 속 너와 엄마 모습이야. 이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는 한참을 웃었단다. 이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 눈은 한동안 젖어 있었단다. 할아버지 참 이상하지? 왜 웃음과 울음이 함께 올까? 이 모습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얼마 전 로아의 힘없고 힘든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이란다.


로아가 병원에서 퇴원 후 가장 반가운 점은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이야. 퇴원 후 할아버지 앞에서 먹는 모습에서나 엄마아빠가 올리신 영상에서 로아의 먹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맛나게 먹을까’하고 감탄이 나올 정도란다. 태어난 이후 항상 부족하게 먹어온 로아 때문에 노심초사해 온 엄마나 로아 음식을 주로 준비해 주는 아빠로서는 요즈음 로아 먹는 모습에서 그저 황홀함을 느끼실 거야. 아니, 엄마는 또 다른 방향으로 걱정을 시작한 것은 아닌지 싶구나. 지금의 로아 볼과 배를 가리키며, ‘아, 저 볼 살~,’ ‘요~ 둥그런 배’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렇구나. 미리 걱정을 대출해서 마음에 쌓아두는 일이 대다수 엄마들의 마음이자 특권이니, 엄마도 예외는 아니지 싶다.



퇴원 후 로아의 달라진 또 다른 모습이 할아버지에게는 뚜렷이 보이는구나. 수박 먹는 장면에서 엄마의 제지에 로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데서 보듯, 자신의 분명한 뜻과 적극적인 의사 표시 모습이 그것이야. 사실, 로아의 자기 뜻에 따른 행동과 의사 표시는 퇴원 후에 새롭게 생긴 것은 아니고, 그전부터 로아의 개성으로 느껴질 정도로 분명했단다. 갖고 놀 장난감이나 함께 볼 책을 고르는 일에 어른이 정해주는 것은 일부러 거부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로아는 스스로 골랐거든. 걸음걸이를 시작하고 나서 불안 불안한 보행에 손이라도 잡아주려고 하면 영락없이 손을 뿌리치는 것도 그래. 어른이 이끄는 ‘안전한’ 방향보다는 자신의 시선을 끄는 방향이 항상 우선이었어. 이 점도 퇴원 후에 더욱 뚜렷해졌고. 호기심이 유난히 강한 로아니 만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치 10대의 사춘기를 미리서 치르는 착각이 들기도 한단다.


로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나, 밖에 나와서 호기심에 이끌려 할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기우뚱거리면서도 ‘제 멋대로’ 발길을 부지런히 옮기는 모습에서 <피터 래빗 이야기>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피터 래빗’의 모습이 연상된단다. 할아버지가 로아에게 들려주는 이 동화의 무릎 스토리텔링이야.


옛날 옛적에 피터라는 이름의 어린 토끼가 있었어. 피터는 엄마와 다른 3 형제와 함께 커다란 전나무 뿌리 아래 모래 언덕에 살았다.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형제들과는 달리 피터는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한 토끼였어. 어느 날 엄마는 마을로 빵을 사러 나가시면서 어린 토끼들에게 신신당부했지.
“엄마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잘 놀고 있어. 특히, 맥그리거 아저씨네 농장 근처에도 얼씬거리면 절대 안 돼. 아빠도 그곳에 들어가셨다가 목숨을 잃으셨어. 알았지?”
다른 형제들은 엄마 당부대로 집 앞에서 놀이를 하였지만, 피터는 맥그리거 아저씨의 농장에 몰래 숨어 들어갔어. 높은 울타리를 쳐 놓은 농장이 어떻게 생겼고 무엇이 자라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야. 엄마가 못 가게 하시니까 궁금증이 더 커졌지.
농장 텃밭으로 들어간 피터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각종 야채와 채소들을 보게 되었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돋을 정도였어. 피터는 텃밭을 돌아다니며 좋아하는 당근이며 양상추, 강낭콩, 무를 발견하고는 맛나게 뜯어먹었어. 정신없이 먹다 보니 뱃속이 좋지 않아 파슬리를 찾아다니다 농장 주인인 맥그리거 아저씨와 마주치게 되었어. 맥그리거 아저씨는 일하던 쇠갈퀴를 들고 자신의 농장에 침범한 피터를 쫒기 시작했어. 텃밭 사방으로 쫓기며 정신없이 도망치던 피터는 간신히 울타리 틈새로 빠져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단다.
그런데, 정신없이 도망치다 피터는 신발과 웃옷을 텃밭에 잃어버렸고, 맥그리거 아저씨는 피터의 웃옷과 신발을 주어서는 텃밭에 서있는 허수아비에게 입혀주었어. 피터가 잃어버린 신발과 웃옷은 엄마가 사준 지 얼마 안 되는 새것이어서 피터는 엄마가 아시면 혼날까 봐 걱정되었지. 다행히도 맥그리거 아저씨가 외출한 틈을 타서 사촌의 도움으로 함께 텃밭에 들어가 신발과 옷을 무사히 찾아올 수 있었지만, 피터는 도망치면서 물이 잔뜩 든 물뿌리개 안에 숨는 바람에 흠뻑 젖었고 결국 감기에 걸려 침대에 눕고 말았단다. 이 일로 피터는 형제들한테 핀잔을 들었지만, 엄마는 피터가 무사히 돌아와서 안심이 되었고, 피터는 엄마가 가져다주신 따뜻한 스프를 맛나게 먹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어.


이후로 피터가 맥그리거 아저씨네 농장에 다시 들어갔을까? 로아도 궁금하지? 할아버지도 궁금한데 알 수가 없구나. 그런데, 로아에게 더 궁금한 점은 이게 아닐까? 빠르게 달리지도 못하는 어린 토끼 피터가 어떻게 맥그리거 아저씨한테 잡히지 않았을까? 할아버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 할아버지가 어려서 토끼를 키워봤거든. 마당에 풀어놓고 잡으려 들면 잽싸게 옆으로 달아나는 동작이 어찌나 빨랐던지 아주 애를 먹었던 경험이 있어.


이 그림동화책을 읽을 때마다 할아버지가 어려서 키우던 토끼가 연상되는 이유이지. 그림 동화 속 피터의 모습처럼 할아버지가 키우던 토끼도 정말 귀엽고 민첩했단다. 이 그림동화책을 쓰신 분도 할아버지처럼 토끼를 키워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았더니 정말 그래. 베아트리스 포터라는 분인데 지금부터 150년 전에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커다란 농장에서 토끼와 다른 많은 동물들을 키우면서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그림동화책을 쓰면서 살았대.


포터가 살았던 피터 래빗의 배경인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도 할아버지는 실제로 가보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곳이야. 할아버지가 아주 좋아하는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살면서 시를 썼던 곳으로, 그분의 시를 통해 실제로 가봤던 것처럼 때 묻지 않은 자연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곤 했던 곳이야. 포터라는 분도 자연과 동물을 아주 많이 사랑해서 나중에는 자신의 모든 땅과 재산을 그곳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환경 단체에 기부했단다.


<피터 래빗 이야기>도 아이들이 동물을 사랑하고 피터와 같이 용기 있게 자라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쓴 그림동화이지. 포터는 어려서 자신을 가르쳐주신 옛 가정교사의 아들이 병에 걸려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이를 격려해 주기 위해 ‘피터’라는 이름의 토끼가 등장하는 그림 이야기를 편지로 보내기 시작했어. 이것이 ‘피터 래빗’ 시리즈의 시작이 되었대.


포터는 농장에서 토끼도 키웠으니, 이야기 속 피터에게서는 실제 토끼의 특징이 담겨있기도 해. 어린 피터 래빗이 쫓기면서도 잡히지 않고 달아나는 것도 실제로 토끼의 특성에 따른 것이야. 자신보다 빠른 늑대나 살쾡이 같은 포식자에게 쫓기는 경우 어린 토끼라도 잡히지 않는 비법은 갈지자형 뜀이야. 앞으로 나아가는 거리는 짧아지지만, 움직임은 더 날렵하기 때문이지. 토끼의 갈지자형 뜀과 같이 생존을 위한 고유의 핵심 특징을 동물학자들은 닫힌 프로그램이라고 하는구나. 


이 갈지자형 뜀을 어린 토끼는 어떻게 익혔을까? 배운 것이 아니라 갖고 태어난 것이라고 해. 

동물은 어미의 보호를 받고 자라는 기간이 짧고 성장이 빠르고 짧은 생애를 사는 경우 닫힌 프로그램을 지니게 된다고 해. 토끼도 여기에 해당하지. 토끼는 생후 4일째부터 털이 자라나고 어미젖을 먹는 기간도 아주 짧고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평균 수명이 4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 그러니 차분하게 회피 전략을 학습할 시간이 없는 것이겠지.


생존 기술을 어렵고 귀찮게 학습하고 연습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린 토끼는 좋지 않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는 동물 중 토끼도 많은 것을 보면 말이지. 갈지자형의 뜀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차를 피해보려 하지만 결국 그 뜀의 반경이 차의 주행경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치이게 되는 것이지. 포식자 동물이 아닌 자동차라는 상황 변화에 따른 대처를 하지 못한 원인이야. 이것이 닫힘 프로그램의 한계인 셈이지.


우리 인간은 어떨까? 우리 인간은 토끼와 같이 위험하거나 도전적인 상황에 처할 경우 본능적으로 대처할 전술인 닫힌 프로그램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는다고 해. 태어나서 긴 시간 어미로부터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성장기간이 유난히 긴 사람은 닫힌 프로그램이 아닌 열림 프로그램을 지닌단다. 닫힌 프로그램과는 달리 열린 프로그램은 학습을 통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과 태도를 습득하게 되는 것이야. 특히나,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과 비교해서 사람 사는 세상은 다양하고 상황이 복잡해서 선택해야 할 순간도 많고 선택도 복잡하단다. 뿐만 아니라 세상은 계속 변해가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대처와 해결책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고 그래서 추가적인 학습과 입력은 계속해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토끼와 같은 닫힌 프로그램이 아닌 열린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이자 로아가 꾸준히 배우고 학습해야 할 이유인 것이 되겠구나.


특히, 로아가 살아갈 미래 사회는 할아버지가 살아온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도 급격하게 변하게 될 것이니,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 태도와 가치관을 열린 프로그램으로 습득하고 학습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야. 피터 래빗이 엄마 말씀을 어긴 것은 꾸중받을 일이지만, 위험을 무릎 쓰고 맥그리거 아저씨네 텃밭에 들어가는 호기심과 독자적인 자기 판단에 다른 행동, 탐험 정신은 로아가 살아갈 변화의 시대에 요구되는 중요한 태도로 보이는구나. 물론 피터와 같이 자신의 결정에 따른 행동의 결과를 깨닫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겠지. 피터 래빗이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따른 결과, 즉, 맥그리거 아저씨한테 붙잡힐 뻔했던 것이라든지 새 신발과 옷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결과를 깨닫는 것처럼 말이야.


‘학습 능력의 큰 선택적 이점은 수정란의 DNA로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 환경에 관한 훨씬 더 상세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의 이 말이 특히나 인공지능시대에 로아와 같은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에게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더욱 크게 다가올 듯하구나. 사회가 복잡다단해지고 미래 사회에 대한 예측이 어렵게 됨에 따라 오픈 프로그램에 의한 학습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야.


엄마의 ‘당부’에 고개를 단호하게 열심히 가로젓는 다든지 잡는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발걸음을 당당하게 내딛는 로아의 모습은 일정 부분 닫힌 프로그램으로서의 타고난 성향이기도 하겠지만, 학습에 의해 자기 정체성을 발달시키는 이 시기 아기들의 모습일 거야. 인간은 태어날 때 개성과 성향이 일정 부분 유전적으로 타고나지만, 마이어의 말대로 인간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성장하면서 노출되는 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 이 할아버지 생각이기도 해. 이전에 할아버지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인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인 데즈먼드 모리스가 손주가 태어나고 나서 쓴 흥미로운 <우리 아기>라는 책에서도 이런 말을 했더구나.     

인간의 유전적 요인은 출발점에 불과하며 나머지 일은 환경이 맡아서 하는데, 이 환경에는 부모나 조부모와 같은 양육자의 태도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할아버지도 100% 공감하는 말이야.

모리스의 관점을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자 하는 로아의 욕망에 적용시켜 보면 이런 설명이 가능하겠다. 먹는 일에서나 책과 장난감을 고르는 일, 걷기에서 로아가 새롭게 자기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 욕망은 일정 부분 엄마나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일 수 있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마음과 행동, 경향이 로아가 커가면서 엄마아빠 혹은 할머니할아버지에 의해 더욱 강화될 수도 아니면 꺾일 수도 있다. 이 성향이 장려된다면 로아는 사회규범이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제지된다면 사회규범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상상력이 부족한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양육자로서 주목할 점은 일생동안, 심지어는 늙어서도 지니고 살게 될 성격 형성은 아기들이 태어나서 몇 해 안에 결정된다.

 

로아가 이해하기에 좀 어려울까? 하워드 라인골드라는 유명한 미래학자의 말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겠구나. 라인골드는 정형화된 사회가 아닌 가상현실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과학기술 발달로 초래될 미래 사회에 관심을 가져온 계기를 어린 자신에게 대해주었던 어머니의 태도에서 찾는구나. 라인골드가 자신의 책을 어머니께 바치며 남긴 헌사인데, 어느 장황한 문구보다도 로아의 격대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이 할아버지가 마음에 새겨 두고 있단다.


‘내가 어려서 그림에 색칠을 할 때 선 바깥으로 나가도 야단치지 않았던 우리 어머니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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