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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할아버지 Jun 12. 2023

<무릎서재> 네 번째 이야기

벨벳 토끼 인형

수액주사기를 매단 로아의 고사리 손등에

할아버지 마음은 온통 푸른 멍 자국이 내린다


침상에 누워 지쳐 잠든 로아의 얼굴에

할아버지 마음은 천근만근 가위에 눌려 꼼짝을 못한다


잠든 입으로 토해내는 로아의 신음소리에

할아버지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경기를 일으킨다.



우리 로아가 병원에 입원한 지 4일 차구나. 조금 전 처치실을 다녀온 뒤, 침상에 지쳐 잠든 너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이 할아버지 마음은 그저 아득하단다. 너의 그 가녀린 척추에서 투명한 뇌척수액이, 정맥조차 잘 보이지 않는 너의 뽀얀 우윳빛 손등에서 선홍빛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흘러 검사튜브에 담기는 그 기나긴 시간을 버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닫힌 처치실 문 옆에 기대 로아 울음소리를 들으며 끝나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할아버지 마음이 어찌 로아의 아픔에 비할 수 있겠니.

    

만 14개월을 넘긴 로아가 고열에 시달린 지 벌써 열흘이 흘렀다. 엄마가 퇴근하면 매일 같이 병원으로 달려가 진찰받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더구나. 열이 내리는 약을 먹어도 잠시 열이 내렸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해 왔단다. 엄마도 로아를 진찰한 의사 선생님들도 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로아는 열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의사인 엄마도 로아를 계속 관찰하지만 원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구나. ‘엄마’의 마음이 앞서니 엄마가 제일 힘들어하신다. 아빠도 많이 힘들어하실 테지. 하필 로아가 아픈 시점과 아빠가 관여하는 국제행사가 겹쳐 집에 들어오시지도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시겠니.


지난 주말 할아버지가 와서 엄마와 함께 대학병원에 로아를 입원시켰단다. 엄마가 근무하는 병원이어서 이곳에서 보다 자세한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기로 한 것이지. 입원 2일 차부터 로아의 열은 잡히기 시작했지만, 로아의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아서 엄마와 주치의 선생님이 함께 상의해서 필요한 추가적인 검사를 받아오고 있단다. 로아가 오늘 낮에 골수척추검사와 뇌 CT, 뇌 MRI 검사는 그래서 받은 거야. 할아버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생소한 병명들이 엄마와 주치의 선생님 사이에서 오고 갔고, 나중에 이들 질병에 대해 엄마한테 따로 설명을 들었단다.


치료는 주치의 선생님이 엄마와 상의해서 진행하실 것이니,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로아 옆에 있어주는 일이구나. 의학적 치료와 더불어 아픈 사람과 함께 있어주고 돌보아주는 일 역시도 병이 낫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로아가 힘들어하면서 할아버지를 보면 자꾸만 안기는 이유이지 않을까? 어린이 고전 동화책 <벨벳 토끼 인형>이 생각나는구나. 이 동화책에는 아픈 사람 곁을 지켜주는 일이 소중하다는 내용을 다뤄지고 있단다.



<벨벳 토끼 인형>(The Velveteen Rabbit)은 영국 동화책이란다. 인형의 주인인 소년과의 우정과 사랑으로 실제 토끼가 된다는 토끼인형 이야기야. 100년 전에 나온 동화이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읽히고 있지. 로아가 입원치료받고 있는 이 시점에 할아버지가 이 동화에서 주목하는 점은 아픔과 돌봄이란다. 각색하면 이런 이야기가 되겠구나.


옛날 옛적에 벨벳 헝겊으로 만든 토끼인형이 있었습니다. 이 인형은 정이 많고 남을 돕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주인인 소년이 열병에 걸렸습니다. 소년은 즉시 격리되었습니다. 소년이 가지고 놀았던 모든 장난감들도 상자에 담겨 벽장 속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세균이 묻어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좋아하고 잘 대해주던 소년이 갑자기 아프게 되자, 헝겊토끼는 소년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소년의 열병이 자신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헝겊토끼는 아픈 소년 옆을 지켜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밤이 되어 방에 소년이 혼자 남는 시간에 헝겊토끼는 조용히 상자를 열고 벽장에서 내려와 소년의 침대로 올라왔습니다. 열병에 걸린 이후 혼자서 지내던 소년은 헝겊토끼가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이제는 외롭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렸고 혼자서는 놀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소년이 힘들어 잠이 들면, 헝겊토끼는 소년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소년이 깨어 있을 때는, 헝겊토끼는 소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노래를 불러주어 기운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이때마다 소년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고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헝겊토끼의 소년과의 동행은 2주가 흘렀습니다. 드디어 소년의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소년의 얼굴에도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헝겊토끼의 보살핌과 헌신으로 소년은 온전히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소년의 가족은 소년이 회복할 수 있도록 휴양지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소년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에는 세균이 가득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밤에 야외 소각장으로 옮겨졌습니다. 여기에는 헝겊토끼도 들어있었습니다. 소년이 회복되어 기뻤지만, 헝겊토끼는 날이 밝으면 자신은 재로 변할 것을 생각하니 슬픈 마음이 들었고, 눈에는 실제로 눈물이 고여 볼로 흘러내렸습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정이 나타나 토끼를 안고 숲 속으로 데려다주었고 인형토끼는 살아있는 토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픈 소년을 생각하는 동화 속 벨벳 토끼 인형의 마음은 아픈 로아를 대하는 할아버지와 엄마아빠 할머니 마음이란다. 헝겊토끼가 감염을 무릎 쓰고 소년을 간호하는 것처럼,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라는 마음을 갖는단다. 로아와 같은 모든 아기들은 모두 소중한 존재이고, 아플 경우 스스로 감당해 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지. 특히, 성홍열을 앓던 동화 속 소년이나 로아와 같이 발열성 질환을 앓는 경우 몸이 많이 힘들단다. 로아가 입원하기 전, 엄마아빠가 제대로 잠도 못 자면서 수시로 로아 열을 체크한 것도 그 때문이지.


동화 속 소년은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치료받기도 했지만, 소년이 열이 내리고 건강이 회복된 것은 내내 함께 있어준 헝겊토끼의 정성 어린 마음도 적지 않게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병원에서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가 교대로 24시간을 로아 곁에서 지켜주는 이유이기도 하지. 할아버지가 어느 기사에서 읽은 내용인데, 몸속 염증 수치는 인간관계의 성격과 돌봄과 연관이 있다는 내용이었어.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 비해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몸속 염증수치가 높으며, 로아의 경우처럼 급성질환으로 일시적으로 높아진 환자의 염증도 보호자로부터 잘 돌봄 받는 경우 수치가 낮아진다고 해. 돌봄 받는 일이 환자의 면역계를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라고 하지. 로아 뇌척수 검사에서 적지 않은 염증 수치가 나왔다는데, 할아버지가 로아를 열심히 간호해줘야 할 이유가 되겠구나.

         

할아버지가 오래전에 보았던 인상적인 영화 중에 <팻치 아담스>라는 영화가 생각나는구나. 이 영화에서는 의학적 치료 못지않게 환자에 대한 돌봄과 인간적인 대우와 인격적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는 내용이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야. 벨벳 토끼 인형처럼,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주인공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도움이라는 점을 깨닫고는 뒤늦게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한단다. 그런데 의과대학에서는 병의 증상과 기계적인 의학적 치료방법만 가르치고, 환자의 인격과 감정, 삶은 치료에서는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게 된단다. 그래서 주인공은 일반 병원과는 다른 대안 클리닉을 연다. 이곳에는 주로 가난하고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주인공은 이들에게 ‘의학적’ 치료가 아닌 말 들어주기와 인간적 관계 맺기, 웃음과 같은 ‘인간적’ 치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는단다. 헌터 아담스라는 실제 의사를 모델로 삼아 만든 영화라니, 이 영화 속 대안치료법이 허구만은 아니겠지.

      

“질병과 싸우고자 한다면, 의사의 환자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와 싸웁시다.”     
“우리가 질병을 치료한다면, 성공하기도 하겠지만 실패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질병이 아닌 사람을 치료한다면, 결과에는 상관없이 반드시 치료에 성공할 겁니다. 장담합니다.”      


할아버지가 주인공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의학적 치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내용이야. 의사면허 없이 치료행위를 했다고 자신을 비난하는 청문회에서 주인공이 열변을 토하며 말했던 인상 깊은 장면이었지. 의사를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는 이 할아버지가 주인공의 말을 여전히 기억하는 것은 그의 말이 할아버지의 가르치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었단다.


로아란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할아버지 삶에 두 가지 점에서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단다. 하나는 로아의 할아버지로서 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받는 것에서 보다 주는 데서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란다. 영화 속 주인공의 말을 할아버지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에 제대로 실천해 왔는지 되돌아보니 뿌듯함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크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로아가 태어난 이후 가르치는 일에서의 뿌듯함도 커졌다는 점을 로아도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할아버지가 아픈 로아 곁을 지키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도 마음만은 더 위로가 되는 이유가 주는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야. 당연히 로아가 이 할아버지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을 위하는 마음과 행동에서 사람들은 자기만족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벨벳 토끼가 인형임에도 실재 눈물을 흘리고 살아있는 진짜 토끼로 변하는 것도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잖니. 아픈 소년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과 감염을 무릎 쓰고 소년의 곁을 지켜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란다. 그 점에서 헝겊토끼나 할아버지의 돌봄은 아픈 소년과 로아를 위하는 일이지만 결국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야.


지금의 로아는 너무 어려서, 로아가 입원했던 일이나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가 마음 졸였던 일도, 이 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로아 곁을 지켜주었던 일도 기억하진 못할 거야. 그렇지만, 입원해 있는 로아를 바라보면서 할아버지는 커가는 로아의 모습 속에 주는 행동에서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그려본단다. 나중에 로아가 주변의 아픈 친구에 대해 갖는 마음과 행동, 그리고 그 마음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로아가 유치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아파서 유치원에 못 오면 로아는 어떤 마음이 들까? 헝겊토끼가 아픈 소년에 대해 갖는 마음과 같겠지? 로아가 아픈 친구를 병문안하고 선물을 준다면 그 친구는 어떤 마음이 들까? 그 친구가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헝겊인형과 같이 로아도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마침 행사를 모두 마치고 귀가한 아빠와 로아 간병 교대하고, 할아버지는 집에 오니 그새 잔디가 제멋대로 많이 커버렸구나. 할아버지의 돌봄을 받지 못한 잔디에게 미안했단다. 잔디도 돌봄이 필요하거든. 그런데 잔디 깎기 기계가 고장이 나 작동을 않는 거야. 로아가 아파서 지금 병원에서 치료받듯, 이 기계도 수리점에 데리고 가서 아픈 곳을 치료받고 부품을 새것으로 바꿔왔단다. 병이 나은 잔디 깎기 기계로 잔디를 깎아주었더니 정원 잔디밭이 깔끔하고 멋진 모습을 갖추게 되는구나. 우리 로아도 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고 병이 나으면 할아버지 잔디밭처럼 더욱 멋지게 성장할 것으로 믿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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