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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할아버지 May 29. 2023

<무릎서재> 세 번째 이야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

“라핀아, 안녕! 밤새 잘 잤니?”


아침에 일어나면 할아버지는 라핀에게 인사를 건네고 쓰다듬어 주고 물을 흠뻑 주곤 한단다. 라핀이 누굴까? 로아도 궁금하지? 로아 친구가 될 체리나무야. 로아 생후 첫 돌을 기념하고 둘이 친구처럼 함께 잘 자라라고 할머니할아버지가 마당 둔덕 양지바른 자리에 심었단다. 로아가 잘 자라고 있는 것처럼, 라핀도 건강하게 잘 커서 빨간 체리 열매를 매달고 로아를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었지. 이번 주말 로아가 감기 때문에 오지 못해서 라핀도 안타까워하는 모습이구나. 새에게 탐스런 열매를 몇 알 내어주긴 했지만, 체리를 좋아하는 로아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분명해. 로아가 다음에 오면 꼭 라핀과 친구로 인사하고 라핀에게 근사한 이름도 지어 주면 좋겠다.



로아야, 친구란 무엇일까?

    

생후 15개월이 되어가는 지금의 로아에게도 ‘친구’가 있을까? 로아가 할아버지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문화센터 수업에 가면 로아 또래의 여러 아기들을 만나지? 로아는 첫돌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다른 아기들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단다. 교실에서 옆에 앉아있는 아기만이 아니라 반대편에 앉아있는 아기들에게 열심히 기어가서는 손으로 터치하곤 했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다른 아기들에게 관심 갖는 일이 더욱 잦아졌고.


문화센터 교실에서 만나는 아기들이 로아에게 ‘친구’일까? 로아는 아직은 좀 기다려야 할 것 같구나.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아기들은 지금의 로아에겐 단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탐구대상일 거야. 로아가 이 아기들에게 손을 내밀어 얼굴을 만진다거나 몸을 찌르거나 옷을 잡아끄는 모습이나 웃음 지어 보이는 표정을 보면 상대에 대한 탐구작업일 것이고. 감정교류를 기반으로 한 협동적이고 사회적 교류는 함께 놀 나이가 되어서야 가능하다고 하니, 로아에겐 한참 뒤에나 이뤄질 것 같구나.


그럼에도 한 공간에서 만나는 아기들과 눈으로 익숙해지고 손으로 터치하는 지속적인 경험은 로아가 크면서 친구를 사귀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교실에서 로아가 돌아다니면서 다른 아기들을 터치해도 할아버지가 크게 제지하지 않는 이유야. 물론 수업에 방해되지 않고 다른 아기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만 허용하지만.


오늘은 로아에게 친구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친구란 로아가 성장하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매우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친구란 무엇일까? 친구란 평등한 입장에서 오랫동안 서로 호감을 갖고 서로 배우고 서로 도우며 지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가까운 사이라서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간의 우정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의에 바탕을 둔단다. 이런 친구관계는 저절로 생겨나지도 그리고 유지되지도 않아.


언제부터인지 할아버지는 친구를 대하는 마음은 나무를 대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가 나무를 심을 때,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 종류를 선택하고 다음으로 모양과 크기, 색깔 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골라 조심스럽게 심지. 심은 뒤에도 정성껏 물과 영양분을 주고 멋지게 자라도록 다듬어 주며, 때로는 말도 걸어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해. 나무가 아픈 모습을 보이면 돌보는 마음도 덩달아 아파서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된단다. 이런 마음이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닐까?


친구간의 우정의 성격 못지않게 할아버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친구’ 규정이란다. 무슨 말이냐면, ‘친구’ 관계는 나이와는 무관하게 맺어질 수 있다는 점이야.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같은 혹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끼리만 친구라고 불리고 그런 관계가 맺어지지만, 서양에서의 ‘친구’란 단어에는 나이와는 무관하고 관계의 성격만을 규정한단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 간에, 조부모와 손주 간에도 ‘친구’ 관계가 맺어질 수 있는 것이지.


로아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선택이 아닌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우연히 맺어진 것이란다. 로아의 할아버지라는 우연한 인연 자체만으로도 할아버지는 너무나 행복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못지않게 로아와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싶단다. 로아의 마음에 들어 선택한 할아버지 나무,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선택한 손주 나무라고나 할까?

친구란 나무와 같다는 점에서 오늘 로아에게 들려줄 스토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다. 이 그림동화는 미국의 쉘 실버스타인이란 작가가 60년 전에 쓴 것인데,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단다. 로아가 만 4살이 되면 혼자서도 읽을 수 있는 동화로, 우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무릎 스토리텔링은 이런 식이 되겠구나.      


   옛날 옛적, 어느 숲 속에 특별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는 것을 좋아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화창한 날, 호기심 많은 한 꼬마 소년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숲길을 따라 걷다가 이 나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자기에게 손짓하는 듯 여겨져, “나무야, 나하고 친구 할까?”하고 나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래, 우리 친구 하자’는 듯, 나무도 가지를 흔들어 반갑게 대답했습니다. 
  그날 이후 소년은 매일같이 이 나무를 찾아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사과 열매를 따먹고, 가지를 붙들고 그네를 타고, 나무 둥치에 기대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소년은 커가면서 친구하고 어울려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다른 일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나무를 찾아오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이따금씩 찾아와서도 나무와 함께 놀기보다는 자기한테 필요한 것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나 돈이 필요해,” “우리 집을 지어야 하는데 나무가 필요해,” “여행을 하는데 보트가 필요해.” 그럴 때마다 나무는 열매인 사과와 가지, 몸통을 차례로 내어주었습니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소년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할아버지가 된 소년은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내게 쉴 자리가 필요해.” 나무는 자신의 그루터기를 내어주며 소년을 다시 보게 돼서 행복했습니다.  


로아야, 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정말 착하지? 소년에게 언제나 친구가 되어주고 소년이 원하는 것을 아낌없이 다 내어주니 말이야. 로아에게도 이런 친구가 생긴다면 좋지 않을까? 이 동화가 많이 읽히는 이유도 이 나무가 진정한 친구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로아에게 이런 친구가 생긴다면 마냥 반가울 것 같지는 않구나. 세상을 살아보니 사람사이에 한쪽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호의로는 건강한 관계유지가 힘들더구나. 로아가 이 동화 속 소년이었다면 행복할까? 어려서는 나무가 놀이터가 되어주고, 쉼터가 되어주고, 맛있는 사과도 내어주니 행복하지 않았을까? 커서는 나무가 내어주는 사과를 팔아서 돈도 벌고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집도 짓고, 나무 몸통으로 보트를 만들어 타고 세상을 여행했으니, 행복하지 않았을까?


할아버지는 이 동화를 여러 번 읽으면서 한 번도 소년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구나. 무엇보다도 나무와 같은 좋은 친구를 두고도 요구만 했지 자신은 준 것이 없거든. 나무한테 받으면서도 감사한 마음도 없었잖아. 나무는 정말 행복했을까? 나무는 자기희생을 하면서 소년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나무 역시도 말과는 달리 행복했을 것 같지가 않구나. 소년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자신을 내어 주었지만, 소년은 자기가 필요할 때만 찾아와서는 나무에게 더 큰 것을 요구해 왔단다. 나무는 소년이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서 섭섭하기도 했겠지만, 나무가 소년을 아끼는 마음이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지. 그런데, 성장한 소년은 세상살이에 행복해 보이지가 않고, 친구도 없는 외톨이처럼 보여. 노년이 되어 찾아온 소년은 행복하기는커녕 지치고 고단한 모습이었지. 이런 모습을 보고 나무가 어떻게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해 보았단다. 소년이 어려서 이 나무와 함께 놀면서 나무를 통해 우정을 쌓는 법을 배웠더라면 훨씬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하고. 나무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대신 소년에게 관계 맺는 법을 알려주었더라면 더욱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고.


할아버지가 친구를 대하는 마음은 나무를 대하는 모습과 같다고 했지? 실제로 친구와의 우정을 맺는 일은 나무의 성장 단계로 비유가 가능하단다.


우선, 단단한 뿌리내림과 성장이다.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려면 뿌리가 땅 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아야 한단다. 할아버지 집 마당에 심어져 있는 나무 중 금송이 있는데, 화분에서 땅에 옮겨 심고 나서 4년 동안은 키와 몸집이 그대로였단다. 그동안 땅 속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일을 했기 때문이야. 5년 째부터는 요즈음 로아가 자라듯 쑥쑥 크면서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끄떡없구나. 우정이란 것도 상호 간에 단단한 신뢰와 이해, 존중이란 뿌리가 자리 잡아야 흔들림 없이 오래가는 법이야. 단단하게 뿌리내린 나무는 적절한 돌봄을 통해 키도 커지고 가지도 뻗으면서 성장하듯, 우정의 성장도 이와 같아. 친구 간에 호의와 돌봄, 이해와 존중은 서로의 우정을 자라게 하는데 필요해.


다음은, 휴식과 활력 제공이다. 나무는 인간만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가 휴식을 취하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고 활력을 되찾게 해 준단다. 친구란 존재도 마찬가지지.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을 만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단다. 이때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가 위로를 해주겠지만, 못지않게 친구에게서 위로와 격려를 받고 활기를 되찾기도 한단다. 그렇다고 로아는 “할아버지는 서포터만 해줘”라는 통보를 할아버지에게 날리지는 않겠지?


나무의 꿋꿋함과 선한 영향도 우정의 모습이 되겠구나. 건강한 나무는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지라도 변화에 의연하게 대처하며 꿋꿋하게 오래 견딘단다. 진정한 우정도 마찬가지란다. 시간이 흘러도, 사는 곳이 바뀌어도, 상황이 변해도 진정한 우정은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이야. 좋은 우정은 남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해. 숲 속의 나무는 홀로 서있는 것 같지만, 나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숲이라는 공간의 생태계 덕분이란다. 숲에 있는 공기와 물, 토양 등의 무기환경과 동물, 식물 등의 생명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이지. 좋은 우정을 나누는 것은 친구들 간에만 이뤄지는 것을 넘어서 친절과 도움이 다른 사람에게까지도 미치게 되는 것이란다.

      

로아야, 진정한 우정이란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전제되고 노력을 통해 유지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 지속되는 것이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의 나무처럼 자기희생으로 상대에게 무조건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도, 소년처럼 무조건 요구해서 받기만 하는 것은 진정한 우정 관계로 보기가 어렵구나.


할아버지는 로아에게 어떤 친구가 되어줄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닌 영화 <포카혼타스>의 ‘버드나무 할머니’Grandmother Willow와 같은 친구가 되어주면 어떨까 싶어. 인디언 추장의 딸인 포카혼타스는 성장하면서 궁금증이나 고민이 생길 때마다 오래된 나무인 버드나무 할머니를 찾아가 털어놓고 도움과 지혜를 구한단다. 포카혼타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버드나무 할머니는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주기보다는 포카혼타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통해 포카혼타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도록 지혜롭게 이끌어준다. 할아버지도 로아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단다.


로아야,

오늘 오후에 전시장에서 라핀나무의 체리만큼이나 매력적인 체리를 만났단다. 로즈 와일리라는 영국의 유명한 할머니 화가분이 그린 “두 개의 빨간 체리”라는 그림이야. 세련되고 화사한 완벽한 체리의 모습이 아니라, ‘자유를 표현하는 놀이터’인 캔버스에 탄생한 자유롭고 즐겁고 천진난만한 체리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할아버지가 이 그림 앞에서 잠시 발길을 옮기지 못한 것은 로아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란다. 로아도 어떤 그림인지 궁금하지? 전시장에 문의하니 괜찮다고 해서, 사진을 찍어 여기에 올려본다. 실제 그림에서 받는 느낌이 제대로 전달될 수는 없겠지만.


할아버지 집에 있는 라핀과 로아가 친구로서 참 잘 어울릴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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