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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할아버지 May 15. 2023

<무릎서재> 두 번째 이야기

<샬롯의 거미줄> (2)

<샬롯의 거미줄> 스토리에서 지난번에는 할아버지가 로아에게 공감에 대해 들려주었다면, 오늘 들려줄 내용은 ‘나’의 참모습과 글의 힘이란다.


“어느 돼지도 나만큼 돼지인 자신을 사랑할 수 없지요.”     
“돼지가 더러운 동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돼지는 나름 멋지다고 생각하거든요”     


돼지 윌버의 말이야. 윌버가 처음부터 자신이 돼지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아니야. 농장의 다른 동물들이 돼지라고 깔보고 친절하지도 않았어. 그래서 돼지가 아닌 동물들이 부러웠단다. 그런데, 샬롯의 격려로 자신이 돼지로서 다른 동물들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된 거야. 더 멋져 보이는 동물들이 이제는 부럽다거나 그 동물들을 닮기를 원하지도 않게 되지. 대신, 공중돌기와 같은 묘기 부리는 재능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재능을 기르려고 열심히 노력했단다. 그래서 대회에서 상도 받고, 다른 동물들도 윌버를 칭찬하고 부러워하게 되지.


로아가 태어나기 전부터 할머니할아버지는 엄마아빠하고 로아가 어떤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는지 이야기를 많이 했단다. 놀랍게도 어른들 모두 로아가 얌전하고 그저 착한 아이보다는, 톰보이 같은 성격에 자기 주관이 확실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요즈음 로아 하는 것을 보면 어른들의 바람대로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우리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더구나. 로아를 돌봐주시는 분이 얼마 전 그러셨대.

     

“로아는 절대로 얌전한 아이가 아니네요. 짜증을 부리거나 떼를 쓰지 않아서 처음에는 무척 얌전한 아이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전혀 아니에요. 자기 뜻이 강한 것 같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성품과 재능이 있단다. 로아만의 성품과 재능이 있을 것이고, 할아버지 눈에 그 싹이 제법 보인단다. 할아버지는 그 싹이 온전한 방향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필요하면 물도 주고 쓰다듬어도 주면서 잘 지켜봐 줄 생각이야. 다만, 할아버지는 도우미이고 주인은 로아 자신이란다. 윌버와 같이 로아도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생각과 모습, 재능을 당당하게 펼쳤으면 한단다.


자신에게 당당하고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남에 대해서도 존중과 공감 능력이 더 크단다.  얼핏 보면, 정반대일 것 같지? 할아버지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으면 로아도 이해할 것 같구나.


할아버지가 젊어서 미국에서 공부할 때였단다. 어느 날 밤에 고속도로를 혼자서 운전하고 있었어. 할머니는 어디 있었냐고?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니까 할머니는 서울에서 할아버지보다 더 멋진 사람하고 데이트하는 중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할아버지가 운전하던 차가 너무 낡아서 그만 고장이 나버린 거야. 도시에서는 멀리 떨어진 고속도로였고, 밤이 되면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았어. 더군다나 그때는 고속도로에서 강도 사건이 자주 일어나서 고장 난 차를 발견해도 잘 서주지 않을 때였어. 큰일이다 싶었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단다. 첫 번째 친절한 운전자의 도움으로 견인차가 와서 할아버지 차를 견인해 갈 때까지 한 시간이 걸렸는데, 기다리는 동안 그곳을 지나던 차들이 약 10분 간격으로 일부러 멈춰 서서 도와줄 것은 없는지 물어왔단다.

  

다 수습이 되고 나서 할아버지 스스로 물어봤단다. ‘내가 그곳을 지나던 차량이었다면 서 주었을까?’ 대답은 ‘나는 못 해’였단다. 도움을 받은 처지에서 이 대답이 부끄러웠어. 조금 뒤 다시 물어보았단다. 여전히 ‘나는 못 해’였어.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떠올랐어. ‘자신을 중시하고 존중하는 개인주의 생각이 강한 미국인들에게는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하지?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를 중시하는 한국인인 나는 왜 못하겠다고 하지?’


이 사건을 통해 할아버지는 한동안 부끄러움을 마음에서 떨쳐낼 수 없었고, 큰 교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의 ‘개인주의’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었단다. 개인주의가 단순히 자신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남을 고려하지 않거나 배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자신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도 그 자체로 중요하며, 그래서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야. 내가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가치와 인격도 존중해 주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도움 주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사람이 어려움에 부닥치면 결국 자신의 가치와 인격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이니까 말이야.


‘나’를 존중하고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특별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란다. 돼지 윌버처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신 있게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찾아내서 노력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 그러면 자유로운 영혼으로 온전히 로아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란다. 할아버지가 겪은 일을 통해서 보듯,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 역시도 존중하고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기꺼이 도움을 주고 마음을 나누는 공감을 갖게 되는 것이란다.


    

로아야, <샬롯의 거미줄>에서 할아버지가 로아에게 한 가지 더 전해줄 내용은 글과 말의 힘이란다. 우리 로아가 그동안 단순한 아기 옹알이에서 ‘말’ 비슷하게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의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보았지? 로아도 그런 반응을 보고 덩달아 신나서 더 ‘말’을 많이 하고 말이야.


“좋은 말로, 너는 세상도 바꿀 수 있어.”


샬롯이 윌버에게 해주는 말이야. 실제로 샬롯은 윌버를 위해 거미줄에 ‘특별한 돼지,’ ‘멋진,’ ‘빛나는’과 같은 단어들을 새겨 넣는단다. 자신감이 없고 낙담하고 걱정하는 윌버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어. 윌버는 이들 글자로 자신감과 용기를 얻게 되지. 이 단어들 때문에 농장의 동물들과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윌버를 ‘특별하고, 멋지고, 빛나는’ 돼지로 여기게 된단다.


로아야,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단다. 나쁜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아파하거나 슬퍼하고, 화가 나기도 한단다. 대신, 좋은 말을 들으면 윌버처럼 자신감과 용기를 얻고 행복해지지. 요즈음 소셜미디어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좋지 않은 말들이 마구 올라온단다. 그 말로 인해 마음 다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로아도 곧 말을 온전히 하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친구들하고도 소통하게 될 거야. 우리 로아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지금부터 좋은 말만 익혀서, 친구들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되도록 좋은 말을 했으면 좋겠다.


좋은 말은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가 사용하는 말을 들으면서 배울 수 있지만, 책을 통해서도 배운단다. 말이 모여 스토리가 되고, 스토리가 모여 책이 되니, 좋은 말은 스토리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거야.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고, 할아버지가 <무릎서재>를 들려주는 이유란다.


그런데, 샬롯의 말처럼 정말로 말이나 스토리 혹은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로아가 크면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할아버지는 로아가 이해하기 쉬운 예를 하나 들어주마. 미니마우스, 미키마우스야. 요즈음 로아가 자주 껴안고 코를 맞추거나 코를 깨무는 인형이 바로 미니마우스야. 정말 귀엽지 않니? 그런데 미니마우스는 어떤 동물이지?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고 로아와 같은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동물인 쥐야. 그런데 스토리 안에서, 영화 속에서 이 쥐는 이름도 갖고 ‘귀여운’ 주인공으로 변하게 되는 거야. 말과 스토리로 인해 혐오스러운 동물인 쥐를 귀엽고 잠자리에 껴안고 자고 싶은 동물 이미지로 바뀌게 된 것이야. 말의 힘, 로아도 이해하겠지?


윌버는 어떤 동물이지? 사람들은 돼지를 먹는 것만 밝히는 미련한 먹보이자 지저분한 동물이라고 놀려대지. 그렇지만, 이야기 속의 윌버는 똑똑하고 귀엽지 않아? 그런데 실제로 돼지는 영리하단다. 모든 동물 중 5번째로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어. 옛날에 유럽에서는 ‘유식한 돼지’들로 알려진 돼지들이 멋진 조끼를 입고 재주를 부려 사람들을 감탄시켰대. 윌버가 재주 부리는 것이 꾸며낸 이야기만은 아닐 거야. 그런데 ‘유식한 돼지’를 못되게 사용한 일도 있었어.  ‘돼지 오르간’이 그 예야. 어느 프랑스 왕은 음악과 영리한 돼지를 너무 좋아해서, 돼지 목소리가 들어간 오르간 음악을 즐겨 들었대. 오르간 뒤쪽에 음역이 다른 어른돼지와 아이돼지, 남자돼지와 여자돼지를 일렬로 세우고 건반을 눌러 거기에 달린 침으로 돼지를 찔러 소리를 내게 했다는구나. 돼지는 얼마나 아팠을까? 로아야, 자기가 즐겁다고 동물을 학대하는 일은 없어야겠지?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집에 가면 키우던 돼지가 있어서, 우리에 들어가 먹이도 주고 몸을 만지기도 했단다. 지금 생각해도 돼지와 우리는 전혀 지저분하지 않았단다. 그 돼지는 오히려 깨끗한 것을 좋아했어. 잠도 항상 새로 갈아주는 짚 위에서만 자고, 소변과 대변도 한쪽 구석에서만 했지. 긴 속눈썹을 가진 돼지 눈을 보고 있으면, 꿀꿀거리면서 꼭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 지금도 그 또랑또랑하고 깊은 눈동자는 할아버지 기억에 남아있구나. 아마도 그때, 할아버지도 그 돼지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불렀던 것으로 기억해.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로아를 데리고 돼지를 가까이서 보는 날도 있겠지. 그때가 되면, 로아도 동물이라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거야. 그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동물들 이름 지어주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겠구나.


오늘 할아버지가 로아에게 해준 이야기, 로아가 커가면서 가끔씩 돌아보았으면 한단다. 로아는 로아 모습 그 자체로 특별한 존재라는 점, 친구들과 다르다고 비교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따라가려고 하지 않고 다른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친구들만의 다른 점도 존중해 주기, 친구들에게 말을 하거나 메시지를 보낼 때도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기, 동물에게 이름 붙여주고 존중해 주기.


저런, 너무 길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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