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말러의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성 안토니오>
한 달이 조금 지났구나. 할머니할아버지의 포르투 한 달 살기에 로아가 엄마아빠와 함께 찾아와 일주일간 같이 지냈던 일이. 사실 어른들은 염려했단다. 무엇보다도 39개월의 ‘아기’ 로아가 인천공항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4시간, 암스테르담에서 포르투까지 3시간, 총 17시간의 비행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포르투의 할머니할아버지 숙소 앞, 택시에서 내려 할아버지 품에 안기는 로아를 보고는 염려했던 마음은 싹 사라졌구나. 잠이 덜 깬 채 ‘이곳이 어디지?’하는 표정 속에서도 로아는 유쾌하고 명랑했거든. 로아는 그 긴 비행시간을 잘 견뎌냈을뿐더러 오히려 즐기면서 왔다니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그 기특함이 포르투에서 지내는 내내 이어졌지. 포르투에서 지낸 일주일 동안 로아는 많은 곳을 방문했고, 많은 경험도 했지. 어느 곳을 방문하던, 어떤 경험을 하던, 로아는 매 순간 호기심이 가득했고 신나 했어. 아프라다의 거리 축제날 많은 인파와 무더운 땡볕에서도 그랬지. 지친 어른들과는 달리, 로아만은 짜증 한번 없이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 모두 감탄했구나.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로아와 함께 가장 자주 찾았던 곳은 성당이었어. 포르투 숙소 주변에 있어서 거의 매일같이 지나다니며 보고 들렀던 성당도 여러 개 있었지. 로아가 마음에 들어 했던 책을 샀던 언덕 위 높은 탑의 클레이구스 성당과 포르투갈 고유타일인 아줄레주 외벽을 배경으로 로아가 멋진 사진 포즈를 취해주었던 카르무성당은 특별히 인상적이었지. 로아는 도루강변 언덕 위의 웅장한 포르투대성당도 잊지 못할 거야. 엄마아빠하고 높은 탑까지 올라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광장 그늘에서 졸고 있던 할아버지를 용케도 발견하고는 목청껏 불러댔던 일을 나중에도 할아버지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지. 물론 인근 도시를 방문할 때도 성당은 빼놓지 않고 찾았었지.
포르투갈에서 성당을 자주 찾았던 것은 우리 가족이 기독교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단다. 포르투갈에서 성당은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이자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어서이기도 해. 우리 가족처럼 이 나라를 찾는 거의 모든 외국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이유이기도 해. 이베리아 반도를 구성하고 있는 스페인과 더불어, 포르투갈은 오랜 옛날부터 가톨릭 국가였고, 성당 건축은 신앙심의 표현이자 국력의 상징이었단다. 과거 포르투갈의 수도였던 포르투 곳곳에 대규모 성당들이 들어서있고, 로아가 방문했던 성당들이 한결같이 높은 탑에 규모가 크고 내부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금은으로 도금된 장식들이 있는 이유이기도 해.
로아도 성당 안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던지 두 손을 여러 번 모으더구나. 압도적인 실내 규모와 화려하지만 낯선 장식, 어두운 실내조명 때문에 로아는 종종 무섭다며 오래 있지 못하고 할아버지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오곤 했지만.
인구 대부분이 가톨릭 교인인 포르투갈에서 사람들은 이들 성당에 자부심과 존중감을 갖고 신앙심을 유지한단다. 로아가 방문한 성당 안에서 예배시간이 아님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을 거야.
포르투갈에서는 성당 못지않게 성인들도 존경의 대상이 되고 모든 도시에서는 각각의 수호성인을 모시고 기념하고 있어. 할머니할아버지가 포르투에 도착한 주말 이틀 동안 포르투 최대 축제가 열렸는데, <성 요한 축제>였어. 세례 요한은 포르투의 수호성인으로 도심 곳곳에는 들뜬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 찼고, 숙소 앞 광장에서도 불꽂놀이와 밤샘 행사가 진행되더구나. 할머니할아버지도 거리에서 사람들과 휩쓸리면서 플라스틱 뽕망치로 머리를 여러 번 맞기도 했지. 뿅망치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온다고 하니 맞아도 오히려 기분이 좋더구나.
로아도 아프라다에서 <성인 베드로 축제>을 경험했지. 포르투에서 도루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나오는 아프라다는 도루강 하구와 대서양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촌이야. 이 마을에서는 어부였던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매년 축제를 여는데 마침 로아가 포르투에 도착한 그 주말에 열렸구나. 베드로를 선두로 가마에 태워진 수호성인들의 조각상 행렬이 마을 곳곳을 행진하던 모습을 로아도 아빠 무등 탄 채 지켜보았던 일 기억나지?
성 요한이나 성 베드로처럼, 포르투갈에서 가장 널리 기념하는 수호성인은 안토니오란 분이야. 성 안토니오는 포르투갈 국민들한테 가장 많이 사랑받는 성인으로, 이분이 포르투갈 출신이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 선행을 많이 베풀었던 분이기 때문이야. 성 안토니오는 결혼의 성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다툼을 한 부부가 찾아오면 갈등을 해결해 주고 잘 화해시켰기 때문이라고 해. 그래서 리스본에서 열리는 성 안토니오 축제 기간에는 대규모 결혼식이 한 번에 열린다고 하지.
이번 ‘스토리’n 클래식’에서는 바로 성 안토니오를 둘러싼 스토리와 음악을 다뤄보려고 해. 마침 로아가 포르투와 성당을 경험했던 참이니. 그리고 안토니오는 지난번 글에 다뤘던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와도 직접적인 인연이 있고 안토니오도 동물에게 설교한 이야기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성 프란치스코에 이어서 다루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 안토니오는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조국인 포르투갈을 떠나 이탈리아로 가서 프란치스코와의 만남을 통해 감동을 받고 제자가 되었어. 그 뒤로 프란치스코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많은 선행을 행했지. 성 프란치스코와 성 안토니오 두 분에게는 동물에게 말을 걸고 설교를 했다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단다. 성 프란치스코가 새들에게 설교했던 것처럼, 안토니오는 물고기에게 설교한 이야기가 옛날부터 널리 전해 내려온단다.
그러고 보니 로아도 이 두 성자처럼 새들과 물고기에게 말을 건네곤 했구나. 로아가 할아버지 동네에서 마주친 새들에게 말을 걸었던 것처럼, 포르투에서는 물고기에게 말을 걸기도 했지. 비아나 두 카스텔로에 있는 의료선박 박물관에서였지. 이 배가 정박해 있는 운하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수면에서 선박 주변으로 헤엄쳐 다니고 있었고, 갑판에서 물고기들을 내려다보고 로아는 말을 걸기 시작했지.
‘물고기들아, 안녕! 너희 뭐 해?’
‘물고기들아, 내가 먹을 것 줄까?’
‘아기 물고기야, 엄마아빠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등등
로아가 선박박물관에서 물고기에게 말을 거는 장면에서 할아버지 머리에는 성 안토니오와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가 즉각적으로 떠오르더구나. 새들에게 설교한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를 리스트라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자가 피아노곡으로 만들었듯이, 물고기를 대상으로 한 안토니오의 설교는 구스타브 말러가 음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리스트나 말러 모두 클래식 음악에서 매우 유명하고 훌륭한 음악가로, 특히 말러 음악은 할아버지가 요즘 자주 듣는단다.
이제, 성 안토니오의 물고기를 향한 설교 이야기와 말러의 스토리 음악을 살펴보자꾸나.
성 안토니오의 물고기를 향한 설교 이야기는 중세 기독교 전통에 뿌리를 둔 설화로 전해져 내려왔어. 그러다 14세기에 출판된 성 프란치스코의 스토리를 엮은 책에 처음으로 기록된단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이탈리아로 온 성 안토니오는 리미니라는 곳으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곳은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고 하지.
성 안토니오의 노력에도 그곳 사람들의 닫힌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 어느 일요일 아침, 성 안토니오는 예배시간이 되어 설교하기 위해 교회로 들어갔지만, 교회 안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지. 성 안토니오는 그 길로 강가로 가서는 물고기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고 해.
‘자, 다들 잘 보세요. 당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고, 내가 물고기에게 관심을 돌림으로써 당신들의 불순종을 더욱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아마도 성 안토니오가 물고기에게 설교하기 위해 강으로 가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물고기들이 성 안토니오 앞으로 모여들었고, 마치 설교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인 양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곤 했다지. 이 광경을 지켜보았던 몇몇 사람들에 의해 물고기 설교 이야기는 리미니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퍼졌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순종을 뉘우치고 교회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해.
물고기에게 했던 성 안토니오의 설교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새들을 향한 설교만큼이나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어 왔던 점은 분명해. 기독교 신앙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스토리 자체로서도 매력적이거든. 19세기 초반 독일 전역에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수집한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란 책에도 수록되어 많이 읽힌 것을 보면 그렇지.
이 이야기는 상징성도 있어서 음악적 소재로도 사용되었어. 그것이 바로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이야.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 수록된 이야기에 심취했던 말러가 성 안토니오의 설교 이야기를 접한 것도 바로 이 책을 통해서였단다. 말러에게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스토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거야. 말러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가깝게 지냈고 동물들에게 관심이 많았거든.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먼저 쓰인 교향곡 1번의 첫 악장에서 어린 시절 말러가 경험했던 이른 아침 숲 속 광경이 자세히 나오는 것을 봐도 그래. 이 곡은 나중에 할아버지 하고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 이른 아침 숲 속에 들어가서 들어보면 더욱 실감이 나겠구나.
말러는 성 안토니오의 이야기를 우선 가사가 있는 노래로 만들고, 나중에는 여러 악기들을 동원하여 확장시킨단다.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 실린 시는 그대로 노래가사가 되었어.
안토니오스 성자의 교회에는 설교 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네;
성자는 대신 물고기에게 설교하기 위해 강가로 갔다네;
모인 물고기들은 하나같이 꼬리를 흔들어대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네.
뱃속에 알을 가득 품고 있는 살찐 잉어들이 모두 함께 모여들었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집중하고 몰입하고 있네;
이보다 잉어들을 흡족시켰던 설교는 없었다네.
쉴 틈 없이 싸워대는 날카로운 주둥이의 강꼬치들도
이 신실한 설교를 듣기 위해 빠르게 헤엄쳐오네
늘 금식하며 지내는 낯선 물고기들,
내가 말하는 물고기는 다름 아닌 대구로
대구들도 설교를 듣기 위해 나타났네.
이보다 대구들을 흡족시켰던 설교는 없었다네.
살찐 장어와 철갑상어,
부자들이 즐겨 먹는 귀한 물고기들도
설교를 듣기 위해 머리를 숙였다네,
평소에는 느긋한 게들도, 거북이들조차도
설교를 듣기 위해 물속 깊은 곳에서 재빨리 솟구쳐 올라왔다네,
이보다 이들 바다생물들을 흡족시켰던 설교는 없었다네.
큰 물고기든 작은 물고기든, 신분이 높든 신분이 낮든
여기 모인 물고기들은 하나같이 지적인 피조물인양
고개를 들고 설교 말씀에 집중한다네,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다는 듯이.
설교가 끝나자 모였던 물고기들은 모두 흩어져 떠나가네,
강꼬치들은 여전히 훔쳐대고
장어들은 난봉질을 해댄다네.
설교로 마음이 흡족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게들은 여전히 뒷걸음치고
대구들은 여전히 배를 두둑이 채우고
잉어들은 여전히 게걸스럽게 먹어댄다네
설교로 마음이 흡족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이 이야기에서 물고기는 메타포로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을 상징하고 있단다. 종교적 믿음에서 보자면, 교회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교회에 출석하더라고 예배가 끝나면 종교적 가르침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살던 세속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야.
말러 역시 물고기에게서 인간의 모습을 보았고 음악적으로 표현했어. “유머러스하게” 노래하라는 말러의 지시대로 노래를 들어보면 재미와 익살스러움이 느껴지지. “음악은 모든 것을 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말러는 인간 삶의 모습과 태도, 사회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음악에 풍자적으로 담아내곤 했단다.
말러는 이 노래 내용과 주제를 자신의 교향곡 2번 3악장에서 관현악으로 확장시키고 있단다. 스케르초 악장인 만큼 악기들은 해학적이며 빠르고 경쾌하게 연주하면서 이 이야기의 주제와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인 요소를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표현하게 되고. 여기서는 성 안토니오의 설교 장면에서 물고기들의 모습이 어떻게 악기로 표현되는지 초점을 맞춰보자꾸나. 로아가 의료선박에서 먹이를 주자 한 번에 달려들어 고개를 내밀던 물고기들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거야.
팀파니의 두 번에 걸친 힘찬 울림으로 시작한 이 악장은 바로 이어서 현과 목관악기들이 동일한 음표 길이로 유연하고도 계속 이어지는 음을 연주한다. 이 멜로디는 살랑바람에 잔물결이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물 흐름의 표현이면서 설교를 듣기 위해 여기저기서 물고기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움직임 모습이기도 해.
이어서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나긋나긋하고 미끄러지는 듯한 멜로디에 현의 피치카토와 루트 소리가 끼어드는데, 물고기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몸이 근질거리는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매끄럽게 움직이며 때로는 갑자기 휙 방향을 틀어 자리를 바꾸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움직일 때마다 물고기들의 비늘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뻐끔거리는 모습도 연상되지.
이 악장의 중간 부분에서는 큰소리의 금관악기가 동원되어 드라마틱한 음악이 전개되다가, 물고기 모습은 마지막 부분에 다시 등장해. 처음 시작 시점의 물고기 멜로디가 마지막 부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데, 물고기들이 마지막까지 성 안토니오의 설교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표현해주고 있어. 처음보다 멜로디가 조금 더 소란스럽게 변한 것을 보면 물고기들의 인내심도 다해가는 것 같고 뒤척임도 처음보다 더 커진 듯하지만.
이 악장의 마지막은 물고기 멜로디 소리가 점점 작아지다 마지막에 북의 아주 작은 울림으로 음악이 조용히 사라지며 끝을 맺게 돼. 팀파니의 두 번에 걸친 우렁찬 연타로 기대감에 찬 등장을 알렸던 시작과는 정반대이지. 용두사미랄까. 물고기들이 설교를 듣기 위해 기운차고 호기롭게 모여들었다가 설교가 끝나자 조용히 흩어지는 모습이 대조적이지. 여기서 말러는 물고기들이 열정적으로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설교가 끝나자 설교내용을 곧바로 잊어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동안 해왔던 습성대로 살아갈 것이라는 내용을 악기로 표현하고 있어. 노래 가사처럼 말이지.
성 안토니오의 물고기를 향한 설교라는 다소 유머러스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 인간들의 습성을 꼬집는 이야기란다. 말러 역시 노래와 오케스트라 음악을 통해 그 점을 표현하고 있고. 아무리 좋고 훌륭한 교훈적인 말씀을 듣고서도 자신의 마음이나 행동을 바꾸지 못하고 잘못된 습성을 이어간다는 점 말이지.
우리 로아도 그리고 이 할아버지도 성 안토니오의 물고기를 닮지는 말아야겠지? 말러의 음악을 종종 들어야 할 이유가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