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s Corner 중 <그라두스 아드 파슘 박사>
로아야, 얼마 전 할아버지는 인상 깊은 영상을 보았단다. 우연이었어.
파리의 세느강 유람선 위, 라이브 피아노 연주 영상이었어. 피아노 연주 장면은 세느 강변의 저녁 정경과 교차하면서 이어졌지. 연주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랑랑(郎朗, Lang Lang)이었는데, 영상 속 연주곡이 약간은 의외였어. 클로드 드뷔시의 <<어린이의 코너>>에 실린 첫 곡 <그라두스 아드 파슘 박사>였으니까. 연주 기교가 아주 뛰어나고 연주 몸짓도 아주 큰 랑랑이 어린이용 피아노 연습곡인 이 곡을 아주 차분하고 정감 있게 연주하고 있었거든.
이 피아노곡 자체로도 세느 강변의 저녁 정경과 잘 어울릴 것 같진 않은데, 이 영상 속에서는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더구나. <그라두스 아드 파슘 박사>는 클레멘티의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연습곡 <그라두스 아드 파슘>의 변주곡으로, 어쨌든 연습곡으로서 사람의 감성에 크게 호소하진 않거든. 오히려 이어서 연주된 곡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은 제목에서 보듯 잔잔하고 명상적이어서 저녁 정경과 아주 잘 어울리지만.
그럼에도 랑랑의 <그라두스 아드 파슘 박사> 연주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 깊었던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구나. 랑랑의 연주 모습과 피아노 소리에서 묻어 나오는 정감과 더불어, 할아버지의 세느강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와 바람도 작용했던 듯해. 얼마 전 할머니와 함께 즐겼던 세느강 유람선 경험이 새삼 떠올랐고, 드뷔시의 이 피아노곡은 언젠가 로아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던 음악이었거든.
지난여름 포르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로아가 먼저 한국에 돌아간 뒤, 할머니할아버지는 귀국길에 파리에서 시간을 보냈단다. 파리의 주요 명소는 세느 강변에 자리 잡고 있어서 파리 전체를 먼저 둘러보는 데는 세느강을 따라 도는 유람선만 한 것이 없지. 당시 할머니는 배탈이 나서 힘들긴 했지만, 저녁나절 유람선을 타고 둘러본 파리 정경은 매우 인상적이었단다.
‘로아가 좀 더 커서 함께 오면 로아도 참 좋아할 것 같지?’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동시에 든 생각이었기도 하고. 세느 강변의 정경만이 아니라 유럽의 문화를 목격하고 경험하는 데는 사실 파리만 한 곳은 드물거든. 로아와 함께 탄 유람선에서 랑랑의 라이브 연주를 만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랑랑의 이 영상을 보면서 아니면 음악만으로라도 함께 하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그런데, 랑랑이 어린이를 위한 이 연습곡을 세느강 유람선에서 연주한 이유가 무엇일까?
“저는 이 앨범을 저의 멋진 어린 제자들과 저만큼이나 피아노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친구들에게 바칩니다.”
랑랑이 새로 발표한 피아노 앨범 <<피아노 북>>에 적힌 문구대로 랑랑은 이 앨범 발매를 기념하면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 랑랑의 말처럼, 이 앨범을 통해 랑랑은 피아노 배우기를 원하고 피아노곡을 사랑하는 어린이에게 용기를 주고 피아노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 그래서 이 앨범에는 자신이 어려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이 악기에 빠지게 만든 소품들로 채웠다고 하지. <그라두스 아드 파슘 박사>가 이 <<피아노 북>> 앨범의 첫 곡으로 수록된 점을 보면 어린 랑랑에게도 이 곡은 연습곡 이상의 의미가 있었지 않을까?
드뷔시가 <<어린이의 코너>>를 작곡한 의도를 알면 <그라두스 아드 파슘 박사> 곡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 같구나. 드뷔시에게는 늦둥이 딸이 있었어. ‘슈슈’라 불리는 이 사랑스러운 딸이 지금 로아처럼 세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로서 드뷔시는 딸이 좋아할 6개의 피아노곡을 만들어 <<어린이의 코너>>라는 제목의 피아노 모음곡으로 펴냈어.
이 모음곡은 어린이들이 즐겨 갖고 노는 인형이나 어린이들이 즐겨할 장면을 담고 있어서 로아도 좋아할 것 같아. <짐보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로아는 우스꽝스럽고 귀여운 어린 곰의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고,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를 들으면서는 케이크를 들고 뽐내며 걷는 인형의 모습을 즐겁게 상상할 수 있을 거야. <눈은 춤춘다>에서는 눈 내리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어서 눈을 좋아하는 로아는 이 곡도 좋아할 것 같고.
이 모음곡 제목에 영역 혹은 공간, 세계를 의미하는 ‘코너’를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곡들은 단순히 인형의 동작이나 눈 내리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아. 어린이들의 세계 속에서 만나는 정경을 유머러스하거나 정감 있게, 때로는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단다. 랑랑의 연주가 정감 있게 들렸던 이유이기도 하겠지.
그러면, <그라두스 아드 파슘 박사>는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제목부터 낯설고 어려워 보이지? ‘파르나소스산에 이르는 계단’을 의미하는 <그라두스 아드 파슘>은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들을 위한 클레멘티의 손가락 연습곡 제목이었고, 많은 어린이가 이 곡으로 피아노 연습했다고 해. 그런데, 이 곡은 손가락 움직임을 연습하는 곡이었던 만큼 멜로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양손이 건반 전체를 똑같은 속도로 빠르게 움직여야만 해서, 아이들은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이 연습곡에 싫증 내고 지루하게 느끼는 것도 당연하게 보여.
드뷔시는 사랑하는 딸이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지루해하고 싫증 내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겠지? 이 연습곡 제목에 ‘박사’란 이름을 덧붙인 이유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고. ‘박사’란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을 진찰하고 약을 처방해 주는 ‘의사’를 의미하듯, 어린이들이 연습하면서도 따분하지 않도록 이 피아노곡에 처방을 내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래서 그런지, 이 곡을 듣다 보면 피아노 앞에 앉아 손을 열심히 빠르게 움직이며 따분한 표정으로 연습하는 어린이의 표정과 더불어, 그러한 기분을 위로하는 듯한 빠르고 느린 패시지가 교차해서 경쾌하고 정서를 자극하는 그리고 때로는 환상적인 멜로디에 즐거워하는 표정 역시도 떠오른단다.
이 곡을 이야기로 풀어보면 어떨까? 스토리 제목은 ‘어린 피아니스트의 계단 오르기’으로 하자.
옛날 옛적에 로아라는 어린이가 살았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로아는 파르나소스산 정상에 오르는 꿈을 가진 어린 소녀로, 파르나소스산은 모든 예술가가 도달하기를 원하는 마법의 산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로아는 마치 새가 날아오르기 위해 취하는 자세로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연습하면 몇 계단쯤은 오를 수 있겠지’
굳게 마음먹고 피아노 앞에 앉은 로아는 피아노 선생님이 내주신 새로운 연습곡을 쳐다봅니다. 단순한 리듬을 기계적으로 그것도 쉼 없이 빠르게 반복해서 연습하는 손가락 연습곡이었지요. 로아는 키를 하나씩 하나씩 정성껏 누르며 인내심 있게 연습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빠른 패시지가 이어지다 보니 자주 박자를 놓치고, 단순한 리듬을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곧 흥미가 사라집니다. 그러다 피아노 앞에서 졸기 시작합니다.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기계적으로 반복하던 음이 갑자기 재빠르고 생기 있게 건반 위를 통통 튀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로아의 손은 마치 토끼가 건반 위를 깡충깡충 뛰듯이 신나고 경쾌하게 움직입니다. 로아의 눈앞에는 파르나소스산 정상에 오르는 계단이 펼쳐집니다.
로아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아노 음들은 반짝이는 파르나소스산 계단 위로 통통거리며 재빠르게 튀어 오릅니다. ‘오, 재미있는걸!’하며 집중하는 사이에 로아는 구름이 드리워진 계단을 지나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파르나소스산 정상이 올려다보이는 계단에 다다릅니다.
정상이 보이는 계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로아는 조금만 더 연습하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이내 힘을 내어 다시 계단을 오르기 위해 일어섭니다. 그때 계단 옆 나무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로아야, 음악은 연습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다. 음악은 즐길 줄도 알아야 해. 음악은 기쁨을 주는 것이거든.”
올려다보니 둥근 안경을 쓴 올빼미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로아를 그윽하게 내려다보며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로아야, 간식 먹고 해.’
그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에 로아는 잠에서 깨어났고, 파르나소스산과 계단, 올빼미는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로아는 다시 피아노 앞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로아 앞에 놓여있는 연습곡은 이제는 더 이상 지루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곡들이 악보에서 튀어나와 건반 위로 신나게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로아도 통통 튀는 곡들을 따라 손가락으로 건반만 눌러주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피아노 연습하는 것이 로아에게는 정말 재미있는 놀이처럼 생각됩니다.
사실 로아는 두 살을 넘기면서 악기를 놀잇거리처럼 ‘연주’했었어. 장난감 악기가 아닌 실제 악기를 말이야. 엄마의 피아노 앞에 앉아서는 건반을 마음대로 누르면서 각기 다른 소리에 신나했고 ‘노래’까지 불렀거든. 아빠가 어려서 사용하던 바이올린을 들고서는 활로 그으며 끽끽거리는 소리에 깔깔거리고 웃었고.
맞아, 로아가 바이올린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했던 일도 있었단다. 로아는 방바닥에 앉아서 바이올린 거꾸로 잡고 있었어. 바이올린을 어깨와 목 사이에 끼고 서 있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야. 팩이 달린 헤드를 바닥에 대고 아랫 몸통은 배에 기대어 잡고 할머니한테서 배운 대로 활로 열심히 그어대는 모습이었어. 바이올린 현에 활을 밀착시켜 소리 내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소리를 아주 잘 냈어. 할머니가 감탄할 정도로.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노래까지 불러 댔던 것이야. 로아 돌봄이 이모님이 자주 불러주시던 ‘섬집아기’를 활로 바이올린을 그어대면서 소리에 맞춰 끝까지 불렀다는 것이지. 그 장면이 오롯이 돌봄 이모님이 찍은 영상에 기록되었고, 영상을 보면서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 모두 감탄했었지.
할머니는 이때다 싶으셨는지, 로아를 보러 가서는 로아에게 바이올린 ‘교습’을 시도하셨지. 사실 할머니는 로아에게는 본인이 직접 바이올린은 가르치지 않으시겠다고 마음먹고 계셨었거든. 예쁜 손녀에게 좋은 할머니 역할만 하실 생각으로. 왜냐하면 바이올린을 가르치다 보면 혼내기도 해야 하고 숙제도 내줘야 하고, 로아가 귀찮아하고 싫어할 일들을 시켜야 하니까. 로아아빠도, 미국에 있는 삼촌도 4살 때부터 할머니한테 바이올린을 직접 배우면서 서로 힘들었거든.
어쨌든, 로아를 위한 할머니의 바이올린 연습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단다. 할머니 말씀대로 로아는 아직 바이올린 잡기에는 너무 일렀던 것 같아.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활 긋기도 몇 번 따라 하고는 이내 자기 마음대로 하든가 아니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으면 더 이상 하려고 들지 않았거든.
영상 속 로아 혼자서 노래까지 부르며 활을 그어대던 모습과 할머니의 레슨 받던 태도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스스로 흥에 겨워 즐기는 행동과 남에 의해 강제로 따라 해야 하는 행동 사이의 차이이지 않을까 싶구나.
지루한 연습과 훈련, 그리고 자기 방식대로의 즐김. 이 둘은 서로 정반대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단다. 연습과 훈련 없이 제대로 즐기고 만족을 없을 수 없기 때문이야. 음악만이 아니라 로아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로 하는 모든 일이 다 그래. 주어진 패턴대로 따라 행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로아와 같은 어린이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연습과 훈련은 꼭 필요하단다.
다만, 연습과 훈련에 강요와 의무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재미와 즐거움이 동반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드뷔시가 사랑하는 딸을 위해 기존의 기계적인 연습곡 <그라두스 아드 파슘>을 완급조절을 통해 정서에 호소하고 재미를 더해 <그라두스 아드 파슘 박사>로 편곡한 것도 그 이유겠지.
그런데,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연습곡에 ‘그라두스 아드 파슘’ (Gradus ad Passum)이라는 낯선 제목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제목은 라틴어 ‘Gradus ad Parnassum’의 변형된 표기로 ‘파르나소스산으로 향하는 계단 혹은 걸음’을 의미하는 것을 보면,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해.
파르나소스산은 그리스에 실제로 있는 산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아폴론과 그를 따르는 뮤즈들이 살고 있는 성지로 신성시됐던 곳이야. 아폴론과 뮤즈들은 시와 음악, 예술의 신으로, ‘파르나소스산으로 향하는 계단 혹은 걸음’이란 구절은 예술, 특히 음악에서 숙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듯 순차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는 뜻이지.
언젠가,
할아버지는 로아 손을 잡고 함께 그리스 파르나소스산에 오르는 꿈을 꾸어 본단다. 드뷔시의 <그라두스 아드 파슘 박사>를 들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