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로아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장면에서 돈키호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우스꽝스럽다?
안타깝다?
불쌍하다?
바보스럽다?
각자 보기에 따라 돈키호테는 여러 모습으로 다가올 거야.
여기서는 상상력과 현실감, 위트의 관점에서 이 모습을 생각해 보자꾸나.
이 장면에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각각 상상력과 현실에 바탕을 둔 판단을 드러낸단다. 그리고 위트 역시 찾아볼 수 있어.
돈키호테의 상상력은 영웅적인 기사도에 대한 꿈에 있어. 기사란 아주 오래전에 활약했던 용감한 군인으로, 세상의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영웅적인 사람들이야.
돈키호테는 기사와 기사도 정신이 사라진 시대에 살면서도, 영웅적 기사들에 관한 책을 통해 자신이 기사가 되는 꿈을 키워왔어. 그리고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실제로 기사의 복장을 갖추고 모험을 나섰지. 풍차와의 결투 장면은 이 세상의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돈키호테의 기사로서의 첫 번째 임무였던 것이야.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 악당으로 여기고 달려드는 모습은 로아가 보기에도 우스꽝스럽지 않니? 그런데 돈키호테는 실제로 풍차를 악당 거인으로 여겼던 것이야.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하나는 돈키호테가 세상의 악한 존재를 물리치겠다는 강한 의지에 사로잡혀 있어서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상상 속에 빠져 있다 보니 현실감을 잊어버린 결과일 것이야. 돈키호테는 아주 오랫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사들의 스토리에 파묻혀 지내면서 자신도 기사도 정신을 실천할 꿈만 꾸어왔으니까.
돈키호테의 모습은 아무리 훌륭한 정신과 목적이라도 상상력만으로는 불완전하고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거야.
건전한 상상력에는 현실에 바탕을 둔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이 이야기에서는 시종인 산초 판사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저건 풍차일 뿐이란 말이요’
라며 산초 판사는 풍차에 돌진하려는 돈키호테를 계속 만류하고 있잖아.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의 말을 들었더라면, 풍차 날개에 의해 내동댕이쳐져 다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지.
풍차를 둘러싼 돈키호테의 공상과 산초 판사의 합리적인 판단 사이의 대조에서 위트도 찾아지는구나. 특히 돈키호테의 태도가 그래. 풍차를 ‘악당 거인’으로 여기거나, 나중에 풍차라는 점을 알고 난 뒤에도 마법사에 의해 거인이 풍차로 둔갑했다고 둘러대는 모습은 어린 로아가 봐도 우스꽝스럽지.
그런데 이런 돈키호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태도에서 위트가 발견되는 것은, 돈키호테의 모습과 태도가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주기 때문이야.
이 할아버지도 종종 그렇긴 한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자신만이 옳고,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일이 많단다. 돈키호테처럼 자기 생각에 갇혀 산초 판사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듯,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말을 애써 무시하기도 하면서 말이야.
돈키호테의 생각과 행동에는 또 다른 위트가 숨어 있단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악당 거인으로 여기고 달려드는 ‘우스꽝스러운’ 생각과 행동은 달리 생각해 보면 우스꽝스럽지만은 않기 때문이야. 할아버지 말이 풍차 날개처럼 빙빙 돌고 도니 로아가 이해하기 좀 어렵지?
우선, 풍차의 크기와 모습을 생각해 보자꾸나. 돈키호테에 나오는 종류의 풍차를 본 적이 없는 로아는 대관령에서 보았던 풍차를 생각해 보면 쉽겠다. 풍차 근처에 다가갔을 때, 로아는 어땠어? 풍차가 엄청나게 크고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무서워서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일 기억나지?
돈키호테의 풍차는 대관령 풍차보단 작긴 하겠지만, 마침 불어온 회오리바람에 힘차게 도는 풍차 날개에 의해 돈키호테의 창이 두 동강이 나고 돈키호테와 말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정도였으니, 당연히 위협적이었을 것이야. 그런데도 돈키호테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들었을까? 세상의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기사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였어.
돈키호테의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생각과 태도, 행동을 보며 우리가 마냥 재미있다고 여길 수 없는 것은, 그의 생각과 용감한 행동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 주기 때문이야. 우리가 가져야 할 이상적인 생각과 태도, 행동에 대해 우리는 현실적인 이유나 변명으로 회피하거나 눈감아버리는 경우가 많단다.
돈키호테 소설이 나온 지 40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많이 읽히는 것은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이 위트들과 무관하지 않단다. 요즈음 이 소설을 다시 읽는 이 할아버지도 돈키호테를 통해 할아버지 현재의 모습을 자주 들여다보거든. 로아와 같은 어린이들에게도 돈키호테는 좋은 거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구나. 할아버지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음악으로 들어가 보자꾸나.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란 분이 돈키호테 소설을 음악으로 만들었어. 소설 제목인 <<돈키호테>>를 그대로 자신의 음악 제목으로 삼았는데, 소설 속 이야기 내용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의미야.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음악을 교향시라고 하는데, 슈트라우스는 여러 교향시를 작곡했어. <<돈키호테>>도 그중 하나로, 서주와 주제에 이어서 10개의 변주가 나오는데, 각 변주는 소설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건을 음악으로 옮겨놓은 것이지. 첫 번째 변주가 바로 풍차 장면이란다.
풍차 장면이 어떻게 악기 소리로 전달될까? 우선은 특정 악기가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역을 맡아. 첼로와 비올라야. 동경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저음의 첼로는 위엄과 기품을 갖추고 고상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사에 어울리는 소리를 내지.
반면에 현실감 있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중간 톤의 비올라는 현실적이고 수다쟁이인 산초 판사에 어울리고, 느리고 투박한 저음의 소리를 내는 튜바 역시 비올라와 함께 산초 판사를 나타내는데, 원래 단순하고 투박한, 우둔한 농부로서의 모습의 표현이지.
풍차 장면 연주는 3–4분 정도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내용은 다 담겨 있단다. 우선 비올라와 목관악기들이 규칙적인 리듬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곧이어 첼로가 합세하는데, 첼로의 저돌적이고 힘찬 소리에 다른 악기 소리는 파묻히게 된단다.
비올라나 목관악기의 규칙적인 리듬은 풍차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인데, 저돌적인 첼로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게 돼. 이것은 자기 생각에 빠져 투쟁 의지를 불태우는 돈키호테가 풍차를 풍차로 여기지 않는 것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아.
이어서 산초 판사의 비올라 솔로가 짧고 주저하는 듯한 소리를 내는데, ‘주인님, 저건 풍차일 뿐이라고요’라고 돈키호테를 말리는 소리로 들리지. 그런데도 첼로는 눈길 한번 안 주고, 점점 더 빠르고 저돌적인 연주만 이어갈 뿐이야.
여기에 오케스트라의 저음 악기들과 금관악기군이 가세하고 곧이어 팀파니와 심벌즈, 전체 오케스트라의 “쨍”, “쾅”하는 소리와 함께 클라이맥스에 도달해. 돈키호테가 말을 탄 채 풍차로 돌진하여 풍차 날개에 부딪히는 장면이겠지.
이후 비올라의 흐느끼는 소리와 첼로의 아주 작고, 낮고, 슬프고, 짧게 끊어지는 소리만이 이어진다. 풍차 날개에 부딪혀 내동댕이쳐진 채 땅바닥에 나뒹구는 돈키호테의 모습과 깜짝 놀라 달려와 주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슬퍼하는 산초의 모습이겠지.
첼로는 흐느끼면서도 곧이어 자신의 소리를 되찾고, 조용한 멜로디 속에 당당하고 힘찬 소리로 풍차 장면을 마무리해. 돈키호테가 풍차 사건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모험을 지속해 나갈 것임을 말해주는 모습일 거야.
돈키호테 교향시의 풍차 장면에서도 유머나 위트가 들어있을까? 악기 소리와 첼로 연주자의 표정에서 살펴보자꾸나. 악기들이 군데군데 장면을 묘사할 때 내는 소리가 재미있는데, 돈키호테와 말이 풍차 날개에 부딪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장면에서 하프가 내는 아래로 미끄러지는 글리산도 소리가 좋은 예지.
연주자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첼로 연주자의 표정을 살피는 것도 하나의 재미를 더해준단다. 연주자의 표정에 돈키호테의 마음과 상태가 잘 나타나곤 해서지.
이 교향시에서 음악을 통한 위트도 드러나는데,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풍차의 모습을 표현해 주는 목관악기의 선율이 좋은 예야.
말과 함께 돈키호테는 풍차 날개에 의해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굴욕감을 느끼며 나뒹굴고 있고, 순식간에 뛰어온 산초 판사는 주인이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하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장면이지.
이런 상황에서도 풍차 바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규칙적으로 돌아가잖아.
첼로와 현악기, 금관악기가 빠르고 큰 소리, 불협화음으로 이 소동을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도 목관악기는 무심한 듯 멈추지 않고 일정한 선율을 반복적으로 연주하고 있어.
특히 플루트와 오보에는 가볍고 규칙적인 회전 리듬을 시종일관 유지해. 풍차 날개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말해주는 거지.
플루트와 오보에의 선율은 돈키호테가 쓰러져 있는 비극적인 상황과 대조적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가는 풍차의 무심함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준단다.
돈키호테가 땅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은 본인에게는 ‘비극적’이지만, 그의 모습을 읽거나 보고 듣는 우리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도 분명하지.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때문에 풍차 날개의 대조적인 무심함이 더욱 잘 드러나게 돼.
이 대조를 통해 자연이나 세상의 많은 일은 우리의 통제나 의도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며, 그래서 인간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교훈이 드러나는 거야. 이것이 플루트와 오보에의 선율을 통해 드러나는 위트야.
날이 따뜻해지면, 할아버지에겐 로아와 함께 대관령 풍차 보러 갈 이유가 생겼구나. 그땐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 음악도 데려가야겠지? 할아버지는 벌써 궁금해진단다.
돈키호테 풍차 장면의 음악과 함께 돌아가는 풍차 날개를 보면서 로아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