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n 클래식] ‘윌리엄 텔’과 <빌헬름 텔>

‘윌리엄 텔’ 스토리와 오페라 <<빌헬름 텔>>

by 로아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 열매는 잘 관찰하고 기록해야 해. 그런데 이 열매는 보통 열매가 아냐. 매우 특별한 열매야.”


할아버지 집 마당에 수북이 매달린 빨간 남천 열매를 자세히 바라보던 로아가 갑자기 던진 말이다. 세 살 반 어린 로아의 말재주에 할아버지는 한순간 할 말을 잊는다.


“이 열매가 어떻게 손짓하는지 로아는 알 수가 없어. 그래서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온 거 아냐?”


바로 이어지는 로아의 이 수수께끼 같은 말. 표현은 분명 논리적이고 로아는 분명 생각이 있어서 한 말일 텐데….


할아버지는 이번엔 어떻게 답해야 할지 허둥댈 뿐이다.



빨간 열매와 예수님, 할아버지.


로아의 머릿속에서 떠올린 이 세 단어는 어떤 관계일까? 어린이들의 풍부한 상상력은 어른들의 합리적 추론이라는 그물에 담기지 않겠지만, 생각해 보니 그래도 짚이는 것이 있다.


할아버지 집 크리스마스트리에 로아와 함께 장식한 빨간 열매, 예수님 생일 크리스마스 예배, 크리스마스 날 할아버지 생일 파티. 며칠 전 로아가 몸소 경험한 것이다.


“이 열매가 어떻게 손짓하는지 로아는 알 수가 없어. 그래서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온 거 아냐?”


크리스마스트리에 빨간 열매를 장식하면서 로아는 예수님을 떠올렸을 것이고, 마당에 달린 빨간 열매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로아를 향한 예수님의 ‘손짓’으로 본 것은 아닐까? 예수님과 같은 날에 태어난 할아버지는 그분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냐는 로아의 ‘당연한’ 생각?


실제로 그 순간 로아의 마음에서 이런 생각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할아버지의 추론이 너무 앞서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들의 생각과 상상력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단단하고 부드럽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로아 양육에 참여하며 경험으로 깨달은 바이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로아가 하는 말이라면 되도록 귀에 담아두고 마음으로 되새겨 보는 편이다.


“이 열매가 어떻게 손짓하는지 로아는 알 수가 없어. 그래서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온 거 아냐?”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그 자리에서 바로 반응하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대답이다. 그리고 고맙다. 로아의 예수님 신뢰에 할아버지 신뢰를 함께 엮어주니 말이다.



신뢰


로아와 함께 할머니·할아버지 집에서 지난 연말을 지내며 로아가 가족에게 보여준 마음이다. 아빠와의 공중제비 돌기 놀이, 보기에 조마조마할 정도로 아빠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고 아빠 팔에 의존해 공중에서 연신 깔깔거리며 재미있어한다. 요즘 아빠와 가장 자주 하는 놀이 같다.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로아의 엄마에 대한 신뢰는 대체 불가하다. 애초 계획은 출근 때문에 엄마만 먼저 올라가고 로아는 아빠와 며칠 더 할머니·할아버지 집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로아도 쿨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엄마가 떠나기 전날 밤 마음이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 서럽게 우는 모습에 마음에 상처가 남지 않을까 해서 결국 엄마·아빠와 함께 올라갔다.



로아야,


로아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엄마에 대한, 아빠에 대한 신뢰를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한 스토리를 떠올렸단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화살로 쏘아야만 하는 장면이 나오는 ‘윌리엄 텔’이라는 이야기.


이 스토리는 애초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독일 작가 쉴러가 무대 공연을 위해 희곡으로 만들었지. 그 후 이탈리아 작곡가 롯시니가 이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로 만들었고. 그런데 영어 제목인 ‘윌리엄 텔’이 독일어로 쓰인 희곡 제목은 ‘빌헬름 텔’, 불어로 쓰인 오페라 제목은 ‘기욤 텔’로 표기되는데, ‘빌헬름’과 ‘기욤’은 각각 ‘윌리엄’ 이름의 독일어식과 불어식 표현이란다.


희곡과 오페라 내용은 거의 비슷해. 다만 오페라 대본에서는 가족과 신에 대한 믿음이 좀 더 강조되고 있어. 오늘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려는 주제가 믿음이다 보니 《빌헬름 텔》 오페라 대본을 통해 사과 쏘는 장면을 소개해 보마.


아주 오래전, 스위스라는 나라는 이웃 나라인 오스트리아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못된 오스트리아인 총독은 광장 기둥 위에 자신의 모자를 걸어두고는, 모두가 그 앞에 머리를 숙일 것을 명령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광장을 지나던 빌헬름 텔은 머리 숙이기를 거부했고, 그 자리에서 총독 부하들에게 붙잡혔습니다. 화가 난 총독은 텔이 화살을 잘 쏜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헬름 텔, 자네가 활쏘기의 명수라지? 네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겠다. 그걸 화살로 맞히면 풀어주마.'
이 끔찍한 명령을 듣고, 텔은 이 명령을 취소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총독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린 아들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빠가 세상에서 활을 제일 잘 쏘는 분이라는 걸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년이 나무 아래에 서고 총독은 소년의 머리 위에 반짝이는 빨간 사과를 올려놓았고, 텔은 총독이 정한 지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명사수인 텔은 자기 아들의 머리에 놓인 사과를 선뜻 쏠 수가 없었고,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잘못 쏘게 되면 아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아들은 아빠에게 말합니다.
제미 (아들): ‘아빠, 아빠 활 솜씨를 믿으세요.’
텔: ‘아아, 너를 향한 한없는 애정이 나를 이렇게 두렵게 만드는구나.’
제미: ‘아빠, 제 심장에 손을 대보세요. 아빠의 화살 아래에서도 제 심장은 전혀 두려움 없이 차분할 거예요.’
텔: (눈물을 흘리며) ‘내 약함이 네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 네 심장으로 난 이젠 기운을 차리게 되었구나. 네 마음의 평온함이 나의 손을 안정시켜 주었어. 이제 약해지지도, 당황하지도 않으마.’
화살을 당기기 전, 텔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들을 품에 안고 절절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가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그대로 가만히 있거라’는 뜻의 "소이스 임모바일“(Sois immobile)입니다.
‘가만히 있거라. 그리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렴. 하나님을 찾으렴, 하나님을 찾아.
아이를 통해 아버지를 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이란다.
그대로 있거라,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렴.
그대로 있거라,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아.
이 강철 화살촉이 너의 사랑스러운 머리를 겨냥할 때
그 날카로움이 네 눈을 놀라게 할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움직이지 말라, 조금도 움직여선 안 된다...
제미야, 제미야, 엄마를 생각하렴!
엄마가 우리 둘을 기다리고 계신단다!
제미야, 제미야, 엄마를 생각해야 해.


로아야,


이 상황에서 아들도 아빠도 정말 두렵고 떨리고 끔찍하지 않았겠니? 화살이 조금만 빗나가도 아들은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텔은 아들을 전혀 다치게 하지 않고 정확히 사과를 맞혔단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맞아, 서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지.


아들은 아버지의 활 솜씨를 믿었고, 그러한 아들의 대견한 모습과 격려에 아버지도 용기를 얻어 자신의 솜씨를 발휘할 수 있었던 거야.


아리아에서 텔이 아들에게 부탁하듯, 그들에게는 서로를 향한 신뢰를 넘어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 또한 있었지. 여기에 엄마의 존재 역시 중요하구나. 두렵고 떨리는 순간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계실 엄마를 떠올리면 아들도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엄마’의 따뜻한 품은 마음의 평온과 위로를 얻는 아늑한 보금자리니까. 로아가 애초 마음과 달리 엄마를 먼저 떠나보내 드리지 못하고 떼를 써서라도 함께 집으로 돌아간 마음도 그 때문일 거야.



이 오페라 장면에서 롯시니는 음악적으로도 아들과 아버지의 마음을 잘 전달한단다. 어린 소년인 아들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대견한 표정과 소프라노 음색으로 아버지에게 용기를 주고 있어. 바리톤이 부르는 아버지의 아리아는 아들 제미에게 조금도 움직이지 말고 서 있어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부드러우면서도 고통에 찬 기도와도 같아. 물론 아들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표정과 끊임없이 아들을 쓰다듬고 보듬는 손길에도 아버지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지.


아리아가 불리는 동안 오케스트라 연주 역시 아버지의 심정과 상황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어. 악기 소리로 사람의 마음이나 상황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을 ‘톤 페인팅’이라고 하는데, 이 장면은 ‘톤 페인팅’의 좋은 예가 되고 있어.


먼저 독주 첼로 소리야. 아버지 역을 맡은 바리톤처럼 첼로 역시 저음을 내는 악기로, 이 장면에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상징해. 아리아가 나오기 전, 아버지가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애절한 소리의 첼로 독주가 흘러나오고, 아리아가 시작되면 텔의 노래에 맞춰 첼로가 우울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선율을 연주해. 첼로와 텔의 노래가 마치 서로 주고받으며 대화하듯이.


첼로 소리에 집중해 들어보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슬픔을 첼로가 대신 전해주는 느낌이랄까. 아들을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애쓰는 텔의 겉모습 뒤에서, 속으로 흐느끼는 아버지의 내면을 표현해 주는 것처럼 들려서 더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해.


이 오페라의 하이라이트인 활 쏘는 장면에 등장하는 ‘톤 페인팅’을 하나 더 소개하자.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부드럽고 빠른 트레몰로(잘게 떨리는 소리) 연주야. 이 트레몰로 소리를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데,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화살로 겨냥하는 순간, 이 트레몰로 소리만 흘러나오거든. 활시위를 당긴 텔의 손과 마음이 떨리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이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의 긴장감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이지.


언젠가 우선 이 한 장면만이라도 할아버지하고 함께 감상해 보자꾸나. 이 장면만 영상으로 올라온 자료도 적지 않으니, 그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겠지.


https://www.youtube.com/watch?v=oDXZCpifdnY


“음악은 사랑과 같고, 미식은 삶과 같다.”


로아야,


이 말 멋지지 않니? 음악, 사랑, 미식, 삶. 아직 어린 로아에게는 마음에 와닿는 단어들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음악과 미식은 할아버지 삶에서 매우 매력적인 단어란다. 이 멋진 말을 남긴 롯시니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인지도 모르지.


롯시니는 음악 못지않게 음식을 좋아했다고 해. 그는 평생 딱 세 번 울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지. 첫 번째는 자신의 첫 오페라가 실패했을 때, 두 번째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을 때, 그리고 마지막은 보트 피크닉 중에 송로버섯을 채운 칠면조를 실수로 물에 빠뜨렸을 때였다고.


롯시니는 서른일곱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 《빌헬름 텔》을 마지막으로 작곡을 그만둔 뒤, 여생을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 전념했던 것으로도 유명해. 이 오페라와 작곡가의 이름을 딴 요리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빌헬름 텔 애플 타르트’도 그중 하나야. 1829년 《빌헬름 텔》의 초연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의 셰프들이 특별히 만들어 그의 이름을 붙인 이 디저트는, 텔이 사용했던 활 모양의 반죽과 아주 작은 사과 모양 반죽으로 장식된 화려한 사과 타르트였다고 해.


로아도 포르투에서 타르트를 맛있게 먹곤 했지. 모양까지 멋진 이 애플 타르트가 있었다면 더 좋아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지금은 없는 듯해. 하지만 실망하지 않아도 돼. ‘윌리엄 텔의 네버-미스 애플 케이크’라는 디저트가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어도 괜찮아. 할아버지가 이 케이크를 만드는 요리법을 구해 두었으니, 로아와 함께 만들면 더 좋겠지. 사과가 주인공인 이 요리는 최고의 맛을 보장한다는 ‘실패 없는’(never-miss) 케이크라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지난번에 로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만든 ‘또띠아 피자’ 기억나니? 로아도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했고, 구워 나온 이 요리를 아주 맛있게 먹었지. 다음 날에도 먹고 싶다고 해서 또 함께 만들어 먹기도 했고. 그때 할아버지는 용기를 얻었단다. 이제는 로아와 함께 요리할 수 있겠다는 용기. 만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메뉴 한 가지씩, 어때?



“음악과 미식은 한 몸의 두 팔이다.”


로아야, 할아버지와 함께 롯시니의 말을 직접 해 볼 준비가 되어 있겠지? 음악을 들으면서 요리도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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