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

아흔 번째 날 ― 1. 14.

by 바비아나

전날 하기 싫었던 휴식을 억지로 끝내고, 구글맵에 찍어 놨던 포인트들과 마주하러 길을 나섰다.


가장 먼저 올드타운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강변을 달렸다. 여행하며 마주한 대부분의 큰 도시들은 강을 끼고 있다. 세계 3대 문명의 발상지. 나일강,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인류의 문명을 태동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모든 도시도 강을 끼고 성장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그 도시들은 선조들이 남겨 놓은 많은 유적들로 그때 당시의 찬란함과 강인했던 시절들을 간직하고 있을 뿐. 그곳에 방문하는 관광객들만이 아득히 먼 옛날의 영화를 간신히 느낄 뿐이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아무리 부국강병을 한 나라라고 해도 내적으로 퇴보되고 외적으로 침입을 받게 된다면 오랜 시간을 버텨 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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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 폴란드 얼마나 이뻐? 아무튼 성경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 물론 전체적인 맥락을 따지고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기는 하지만, 간혹 가다 단편적으로 저 구절만을 인용하여 예를 드는 많은 사람이 있다.


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해 웅크리고, 큰 그릇은 늦게 차고, 내리막길이 있다는 것은 오르막길도 있다는 것 등등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높이 뛰기 위해 웅크리기까지, 텅 비어 있던 큰 그릇이 차기까지, 내리막길의 끝에서 다시 올라가기까지의 긴긴 시간 동안. 물론 짧을 수도 있지만, 그 시간 동안. 쉽게 말하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 동안 차분한 기다림으로 견뎌 줄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서로 앞다투어 좋은 명언들을 상대방의 면상에 들이밀며 내 말을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하지만 정작 그 명언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날 때까지의 시간을 허락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마 명언에서 말하는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말을 직접적으로 듣는 본인 자신일 텐데. 인터넷에서 이러한 글을 본 적이 있다.


― (10억을 건네며) 직장보다는 육아에 전념해 줬으면 좋겠구나.

― (10억을 건네며) 딸 같아서~

― (10억을 건네며) 청춘은 아르바이트보단 여행과 독서지.


모든 개소리도 10억을 건네며 한다면 말이 된다느니 어쩐다느니. 이런 잡생각을 하기 좋은, 여행 시작한 지 90일째.


제주도를 걸으며 여행할 때 지나쳤던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물었다. ‘걸으면서 무슨 생각 했어요?’, ‘걷다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등등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공통으로 대답했다.


“걷기 싫다고 생각했고, 언제까지 걸어야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포레스트 검프>란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집을 떠난 후, 그는 무작정 거리로 나와 달렸다. 그냥 달렸다. 동으로 서로 달리기만 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그가 달리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아무런 의견도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달리기만 하던 그의 알 수 없는 이유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더 달리다 마침내 주인공이 멈춰 선 순간 했던 한마디.


“이제는 피곤해요. 집에 가고 싶어요.”


인생을 사는 데 꼭 의미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제각기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노력해서 찾는 게 그 이유가 맞기는 할까?


어차피 이 세상은 내가 바라는, 내가 원하는 성공이 아닌 남의 눈에 비치는 성공만이 진정한 성공으로 단정 지어져 있는데 이런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바라는 게 없는데. 특별하게 바라는 게 없는데. 그냥, 그냥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서로 부담 없이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사는 건데. 하루 두 끼든, 세끼든 배곯지 않고 사는 건데. 그녀와 하루의 끝을 함께 마치고 싶은 건데. 만약 엄청난 행운으로 자식이 생긴다면, 그 자식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건강하기만을 바라고 함께 잘 먹고 잘살고 싶은 건데.


근데 생각해 보니까 그게 엄청 어려운 것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단순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거창한 걸까? 아등바등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한 달에 오만 원씩 용돈을 받아 가며 사는 게 진정한 아름다움일까? 그러면 아이를 가지지 말아야 하나?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나? 행복은 절대적일까? 상대적인 걸까? 왜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좋다고 가치관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행복과 성공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 걸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어렵다. 소주가 먹고 싶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해야 하는 사람인지. 오늘 밤이 사무치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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