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30 21:34
혼자 있을 때?
외롭진 않아.
그냥 누군가와 함께 있다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가. 한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떨어져 나갔을 때? 그냥 그때의 그런 허전함이 있는 것 같아.
어렸을 땐 혼자 있는 걸 정말 싫어했었어. 부모님이 집에 자주 안 계셨거든. 그래서 혼자 집에 있는 게 정말 싫어 밖에 나가 또래 친구들과 놀다가 너무 늦게 들어와 부모님에게 혼나는 일이 부지기수였지. 그땐 그만큼 혼자 있는 걸 싫어했던 것 같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직장생활을 하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어울리고 연락하고 그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부대낄수록, 점점 혼자 있고 싶다.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라는 생각이 종종 들더라고.
그렇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홀가분하다거나 즐거운 기분보다는 약간 허전한 거.
외롭거나 쓸쓸한 게 아니라 단지 허전한 거... 그런 기분이 들 때가 더 많았어.
가끔은 그 허전함과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
근데 그때 기억들을 돌이켜 보면 부질없는 투정이었던 것 같아. 혼자서만 하는 투정.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한테는 늘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서 관심받고 싶고, 혹시 누군가 나와 함께 있어 줄까? 누군가 먼저 다가와 말 걸어 주지 않을까? 눈길 한번 주진 않을까? 하는.
근데, 혼자 있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꼭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 함께 있으면 보지 못 한 것들.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전부 보고 느낄 수 있거든. 내 곁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 흘러가는 시간 따위는 전혀 의식할 필요도 없고.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 하나하나 자세히 볼 수 있고, 노래를 들을 때면 가사 하나하나가 내 귓가에 울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으면 집 앞에 있는 개울가에 물 흘러가는 소리, 바람이 나무를 휘감는 소리, 낙엽이 떨어지며 자기들끼리 서로 부대끼는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각자의 어색한 모습들.
여행을 가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먹고 싶은 것. 그 장소가 맘에 들면 그곳에서 더 머무르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는 기분. 둘이 있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그런 기분. 나 혼자만의 시간. 나 혼자만의 만남. 나 혼자만의 모습들.
한 번쯤 눈을 감고 상상해봐. 바닷가엔 아무도 없어. 너무나 조용해 적막감마저 흐를 정도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제외하고. 그리고 너의 손에는 향긋한 커피 한잔 들려 있고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와.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하얀 모래사장을 걷는 거야. 바다를 바라보며 한발 두발 천천히. 파도가 백사장에 맞닿아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만들고,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에게 인사하고.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을 걷다 어느 순간 뒤돌아서면 올곧은 하나의 길처럼 내 발자국만 찍혀있는 거야.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내 발자국 하나만 길게 찍혀 있는 거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봤을 때. 나의 시선 끝자락이 하늘 너머에 닿았을 때. 그곳에 적당한 구름들이 몽실몽실 떠다니고 그 구름 사이로 아침 11시 밝은 빛살이 바다로 쏟아지는 거야. 그 빛살이 쏟아질 때. 그 빛살이 파도에 부서질 때. 은빛 물결을 일으키며 파도가 눈부실 때...
그때의 그 느낌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지. 이런 느낌 있잖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같은 기분. 느낌 아니까. 이런 느낌들도 다 중독이더라고.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볼 때면,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 내가 오늘의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오늘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항상 사진을 찍어서 누군가에겐 보내주게 되더라고. 아니면 sns에 사진을 올리고서 댓글이 달리길 기다리는 거지. 친구들이 사진 좀 적당히 올리라고 하면 그냥 심심해서 올린 거라고 웅얼거리며.
외롭지 않고 단지 허전한 거라고 말하지만, 혼자 여행 다니는 게 좋다고 말 하지만. 그래도 제일 좋은 건 이런 모든 감정들을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머물고 대화하는 것 같아.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거...
결론은 외롭구나. 나도 사랑받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