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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아나 Apr 25. 2022

검단산성과 정유재란

검단산성과 왜성 그리고 정유재란

 5년간 이어졌던 임진왜란의 막바지에 조선과 왜의 정전회담이 결렬되고, 왜는 재차 조선을 침공한다. 일본에서는 게이초 전쟁이라고 불리고 조선에서는 정유재란이라 불리는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1년 남짓 이어졌던 정유재란의 막바지, 전쟁의 종결을 선언하기 전 마지막 전투지로 기록돼 있는 장소는 순천에 위치한 검단산성과 왜성이었다.

 여수반도와 순천시를 잇는 길목에 위치한 순천시 해룡면 성산리. 고즈넉한 기운이 서려 있는 마을 뒤켠에는 해발 138m에 야트막한 피봉산이 있고, 이곳 7~9부 능선 정상 가까이에는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머리띠를 빙 둘러맨 듯 쌓여있는 검단산성이 있다. 너그러운 손길들로 켜켜이 쌓여진 성벽의 둘레는 430m 남짓. 주 출입구는 3면에서 접근이 용이하게 3개소의 문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는 흔적들만 남아 육안으로 식별되기는 어려우나 성곽 내부에는 지상 건물지 5개소, 수혈 건물지 5개소, 집수정 3개소, 대형 우물 1개소, 수혈 1개소, 저장시설 1개소, 옹관 2기 등이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검단산성은 정유재란 당시 조, 명연합군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쌓은 것이라 알려졌으나, 1995년 정밀한 유적 발굴 작업 중, 백제시대 축성 방식이 완연한 삼국시대 때의 산성으로 확인되었고, 백제시대에 특징인 무늬기와 수백점이 출토됨은 물론, 철촉, 어망추 등 쇠로 만든 못들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계절에 어울리는 서늘한 바람에 발맞춰 산성의 정상부로 향한다. 어느덧 정상에 다다르니 오랜만에 방문한 낯선 손님이 신기한 듯 낡은 벤치들이 서둘러 나를 반긴다. 벤치에 걸터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동남쪽으로는 광양만이 한 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해룡산 토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주 좋은 위치다. 그리고 동쪽언저리에 눈에 밟히는 하나의 장소. 그곳에 순천 왜성이 있다.

 해룡면 신성리에 자리한 순천 왜성은 서쪽만 육지일 뿐 동, 남, 북, 3면은 바다로 둘러 쌓여있어 군수물자 조달이 쉽고 일본군의 퇴각이 용이하게 축조된 성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왜성의 특징을 가졌다. 순천 왜성은 마지막 전투가 일어나기 불과 1년 전인 1597년 9월부터 약 3개월에 걸쳐 건설이 되었는데, 조선인을 징발하여 3개월 만에 축성공사를 마무리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일본군에 의해 축조된 일본식 왜성은 울산, 남해, 사천 등 경남에만 20여 곳이 있지만 호남지방에는 순천 왜성이 유일하다.  

 왜성은 성곽규모가 36,480평이고 외성 길이 2,502m, 내성 길이 1,342m로 외곽성 3개, 본성 3첩, 성문 12개로 축조되었고, 지금도 끊긴 데 없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나지막한 언덕을 따라 오르면 본성과 외성을 연결했던 문지가 나온다. 주 출입문으로 사용된 문지 2개소는 ㄱ자 형태 꺾여있어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이 방어하기에 용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최소 너비 23m, 최대 깊이 4.7m로 바닷물을 끌어와 섬처럼 만들어 방어용 진지로 쓰였던 해자 2개소, 천수대 동편 성벽, 본성 북단 평탄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조 31년(1598년). 그 해 8월 16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순천 왜성에 모여있는 왜군 약 1만 5,000명과 검단산성에서 출발한 조선군 약 1만명, 명군 약 1만 3,600명은 순천에서 끈질기게 항전 중이었다. 그러다 명군이 퇴각을 하고, 왜군은 300척에 전함으로 해상 탈출을 감행했다. 이 때 고금도 진영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장군님의 함대가 여수 앞바다로 달려오고, 왜군 전함을 노량앞바다로 이끌어내 200여 척을 수장시켰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장군님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지만 7년여 간 끌던 전란은 그제야 막을 내린다.

 순천시는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해룡면 신성리 옛 충무초등학교 부지에 평화를 상징하는 정유재란 역사공원을 만들었다. 공원의 광장 중앙부에는 가장 많은 고생을 겪었을 민초들을 기억하기 위해 조각상을 만들었고, 조각상을 둘러싸고 있는 1597개의 판석들에는 순천시민을 비롯한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그 시절 천지사방에서 몰아치던 광란이 사그라지고, 붉게 물든 바다와 벌판에 여명이 저며 든다. 어느덧 흘깃해진 태양의 눈짓에 움츠렸던 아지랑이 피어나고, 멀리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미래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의 영혼을 우리가 위로하고 그들의 노고를 길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년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하는 오늘, 우리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목숨 바친 선조의 얼과 넋, 한이 스며있는 검단산성과 왜성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신년, 미래를 열어 가는데 원동력과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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