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 째날 ― 11. 2.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은 밤새 내린 빗방울들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어제의 광장은 축구팀 응원을 위해 모인 많은 사람 덕분에 아주 뜨거웠지만, 오늘의 비는 어제의 뜨거웠던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듯 포근하게 광장을 뒤덮고 있었다. 오늘은 구경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 날인가도 싶었지만, 비는 점차 잦아들고 이따금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이 어서 밖으로 나오라는 듯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에 여행을 가서는 3가지의 F를 꼭 경험해야 한다고 들었다. Fatima, Football, Fado. 하지만 나는 파티마도 가 보지 않았고, 축구도 보지 못했을뿐더러, 파두 음악도 듣지 못했다. 나는 포르투갈에서 아무 곳도 가지 못했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걸까?
아, 그리고 빼먹지 말아야 할 것 하나 더. 에그 타르트였다. 나는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 빵을 먹는 날이라고 하면, 부모님이 나를 위해 생일 케이크를 사 오셔서 잘라 줄 때를 제외하고는 내 돈을 주고 빵을 사 먹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좌우지간 내가 포르투갈을 간다고 말을 하니 모든 이들은 이구동성 게임을 하듯 한마음으로 소리쳤다.
“포르투갈은 1일 1 에그 타르트야!!”
평소에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지 않을뿐더러, 유럽여행 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바로 빵을 먹는 것이었다. 먹기 싫어서 피하는 게 빵인데 그걸 사 먹으라고? 그것도 내 돈을 주고? 그래도 남의 말 들어서 포르투갈에 왔고, 지금 당장 출출한 속을 달래야 했기에 숙소 바로 아래에 있는 에그 타르트 가게로 향했다.
“에그 타르트와 커피세트 주세요.”
자그마한 잔에 향긋한 에스프레소와 에그 타르트가 함께 나왔다. 먼저 건조한 나의 입술을 에스프레소로 적셔 주었다. 씁쓸하지만 향긋함으로 혓바닥 끝에 달달한 여운을 그윽하게 남기는 맛있는 커피를 뒤로하고서, 에그 타르트를 입안에 가득히 욱여넣었다. 에그 타르트를 한입 크게 베어 물자마자 나의 미간은 지렁이 3마리가 기어가는 듯 찌푸려졌고, 얌전하게 모여 침착함을 지키던 나의 양발은 잔망스럽게 동동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의 두 눈 또한 자연스레 질끈 감기며,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마디. ‘이런 존맛탱.’ 이런 게 에그 타르트란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이것을 맛보지 못하고 어떻게 살았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맛이었다.
역시 때때로 남의 말도 잘 들어야 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가끔 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른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에그 타르트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흡입하고, 샌드위치를 하나 더 주문해 먹었다. 조금씩 불러 오는 배에 발맞춰 날씨도 차츰 좋아지기에, 음식을 깨끗이 비운 나는 포르토의 매력을 향해 성큼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목적지를 딱히 정하지 않은 나의 걸음은 이 골목 저 골목들을 들쑤시며 눈과 발로 포르토를 음미했다. 거리를 걷는 내내 수만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며 나의 뇌리를 뒤흔들어 놓았지만, 결론은 단 하나. ‘포르토는 절대 남자 혼자 올 만한 곳이 못 된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던 나의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거닐고 있던 골목 사이사이에서 로맨스의 향기들이 가득 차다 못해 넘실넘실거리며 도로 위로 흘러들었고, 날씨가 조금은 흐림에도 불구하고 건물들은 자신만의 색감을 뽐내며 ‘내가 그림 속을 걷고 있는 걸까?’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나 홀로 흐느적거리며 둘러보는 모든 곳은 작품이라 표현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뿜어지는 로맨틱한 기운은 나의 온몸을 백만서른마흔다섯 번 정도 적시고, 서른마흔다섯 번을 더 적시고도 넘쳐났다.
더 이상 길거리를 흐느적거리다가는 밀려오는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한 채 미쳐서, 1번 트램을 타고 가면 마주하는 대서양에 빠져 죽어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끓어오르는 욕구를 진정시키고 내 마음 판에 궁서체로 오늘의 다짐을 새겨 넣었다. 이곳은 나의 두 번째 신혼여행지로 당첨이다. 내 두 번 다시 이곳에 혼자 오지 않으리.
한참 동안을 좀비처럼 거리 위에서 흐느적거리다 숙소로 돌아와 삼계탕을 먹었다. 지친 나의 영혼에 잠이라는 포근한 안식을 줄까도 싶었지만, 소화도 시킬 겸 루이스1세 다리로 향했다. 숙소와도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어제는 거짓말쟁이 네덜란드인과 함께 다리를 보러 왔지만, 오늘은 나 홀로 다리를 마주하니 더욱 더 순천 생각이 많이 났다. 순천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팔각정에서 바라본 동천의 모습은 이곳 루이스1세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도루강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어느덧 한국을 떠나온 지 18일째.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진 않았지만, 혼자라는 외로움 덕분에 온실 속의 화초처럼 가녀린 나의 마음은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들로 하루가 다르게 흔들렸고, 매일 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잠이 들곤 했다. 허나 이곳에서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고향의 향기로 인해 나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이역만리나 떨어진 이곳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사는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순간 예전에 만났던 그녀가 생각났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얼마나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그녀가 답하길.
“감정이란 것은 추상적인 건데, 어떻게 그 크기를 가늠할 수가 있겠니?”
그녀의 말을 빌려 너에게 이야기한다. 네가 얼마나 예쁜지. 네가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었는지 말해 주고 싶지만, 이 모든 감정은 추상적이기에 그 크기를 어떻게 말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이야기해 줄게.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고마워 포르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