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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02. 2020

여행의 꽃

상피 테스 부르크 여행기 #2


어제 교환학생의 꽃을 여행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여행의 백미이자, 꽃 중의 꽃은 무엇일까? 바로 즉흥성, 예측 불가능이다. 여행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지 모른다. (안전이 보장되는 전제하에서) 나는 이 예측 불가능성의 급류를 즐기는 편이다. 여행이라는 계곡에서 예측 불가능한 흐름에 몸에 맞기는 것이야 말로 여행의 참 맛이다.

헬싱키에 9시 반에 도착하여 11시까지 버스 정류장을 가서 버스를 타는 일정이다. 이동시간은 30분 내외가 걸릴 것으로 생각해 중앙역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해 중간에 헬싱키 대성당까지 걸어서 대성당을 구경한 후, 버스 정류장까지 갈 계획이었다.

역시나, 여행에는 새로운 변수가 있는 법. 현재 오울루에서 봉사활동 중인 동생과 헬싱키까지 함께 왔다. 동생이 2박 3 일용으로 싸온 2개의 짐 중 하나가 너무 무거워 수화물에 붙였다. 2박 3일 짐이 대체 어떻게 2개의 짐이 되며, 3kg의 짐이 얼마나 무겁다고 수화물에 붙이는지 알 순 없지만,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바로 나가지 못하고 약 20분 정도 수화물을 기다렸다.

20분을 기다리고 헬싱키 공항에서 헬싱키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갔다. 하필 눈 앞에서 기차를 놓쳤다. 5분 뒤에 금세 기차는 도착했지만, 시간이 빠듯한 상황에서의 5분은 참 긴 시간이다. 비행기를 두 번이나 놓친 전과가 있는 나기에 이번에는 여유 있게 도착하자 싶어, 헬싱키 대성당의 계획은 뒤로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바로 달려갔다.

도착하니 10시 35분, 상당히 여유가 있는 시간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길에서 아무나 잡고 물어보니 멀리 나가는 버스는 아마 지하로 가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지하로 가며 동생과는 안녕을 했다. 지하에는 인포데스크가 있었다. 언제나 체계가 잘 잡혀 있는 핀란드답게 번호표를 뽑아서 기다려야 했다. 번호표를 기다려 드디어 뭔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직원이 내 표를 보더니, 버스 회사를 물었다. 잘 모르겠다... 타는 곳이 샬롯 카페의 건너편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알고 보니 이 버스는 밖에서 타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서 걷다 보니 이제 시간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샬롯 카페를 찾아서 가는데 전혀 버스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샬롯 카페에 거의 도착을 해서 버스 티켓에 적혀있던 번호로 전화를 했다.

“@@!@!@”

아마 영어를 못하는 듯하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화가 난 것 같기도 하다.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봤고,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버스를 못 찾겠다고 영어로 설명을 했다. 30초 동안 서로 전혀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 했다. 아, 망한 것 같다.

그때 전화기에서 영어가 들려왔다. 세상에 영어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다. 아마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한 것 같다. 다시 영어로 설명을 했다. 그랬더니 내가 보인 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고 살펴보니 저기 정말 거의 바로 옆 50m 거리에 어떤 여성분 두 분이 계시고 한분은 전화를 하며 손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곳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니 영어를 하시는 분은 다른 차에 타고, 다른 한분이 웬 본고 차에 탑승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싶어 벙 쪄있었다.

!@@!@@!!@

역시 알아들을 순 없지만, 대충 제스처를 보니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것이다. 이 봉고차가 버스였다. 어렸을 때 태권도 학원 데려다주던 봉고차가 버스라니.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봉고차를 바로 옆에 두고 헤매고 있었다.  이게 러시아 스타일인가. 역시 15유로 주고 산 8시간 걸리는 티켓은 한번 의심을 해봤어야 했다. 어쨌든 잘 찾은 것 같아 봉고차에 들어가 시간을 보니 10시 57분이다. 아슬아슬했다.

문제는 새벽 일찍 나올 때 싸온 계란 3개와 버터 바른 빵 2개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7시까지 이 봉고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벌써 배고파 죽겠다.

뭐 먹을 것 좀 사 오면 안 되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다들 러시아어로 뭐라 뭐라 하고, 한쪽 구석에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인상을 팍 쓰고 있는 빡빡이 아저씨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못 물어봤다. 간헐적 단식이 몸에 좋다던데 팔자에도 없는 간헐적 단식을 하게 생겼다.

그렇게 봉고차에 쭈구리처럼 앉아 있으니 봉고차가 출발했다. 그러고 보니 내 티켓도 확인 안 했는데, 나도 이게 상페 테스 부르크로 가는 차인지 확인을 못했는데, 그냥 봉고차는 간다. 전화번호가 맞는 번호이니, 맞겠지. 아니면 그 도시에 호스텔이나 한번 찾아보자.

봉고차는 어쩐 이유인지 헬싱키의 항구 쪽으로 향했다.  방향이 이쪽 방향이 아닐 테인데 말이다. 덕분에 마지막으로 헬싱키의 항구와 아주 잠깐이지만 대성당도 슬쩍 지나가면서 봤다. 언제 다시 헬싱키를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참 모든 것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헬싱키 항구에서도 새로운 승객을 태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속도로로 나아간다.

일단 긴장이 풀리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2시간쯤 잠을 청하고 나니 차가 멈췄다. 무슨 상황인가 전혀 알 수 없기에, 주변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아까 그 험상궂은 빡빡이 아저씨가 영어로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지금 그냥 평범한 마트이고 먹을 것을 사 오면 된다고 했다. 역시, 사람을 생긴 모습으로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핀란드에 마지막 경계선인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지역, 인터넷을 봤는데 마리아 에게는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다. 2일째 연락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을 때 버스표를 확인했고, 마중 나온다고는 했다. 휴대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이후로 연락은 안 된다. 어제 호스텔을 알아보니 하루에 10유로 정도로 저렴하다. 정 연락이 안 닿으면 호스텔에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마트에 들어가 먹을 것을 찾아본다. 마땅한 샌드위치 같은 것은 없다. 뭘 사야 할까 고민하다 먹고 싶은 것을 잡히는 대로 산다. 가격을 보니 13유로 내외 얼추 17,000원 어지를 산 것이다. 역시 배고플 때 쇼핑하면 안 된다.

마트를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출입국 관리소가 나온다. 운전수가 계속 뭐라고 설명은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그 빡빡이 아저씨가 모든 것을 친절하게 다 번역해준다. 다시 보니 미남이다. 핀란드에서 나갈 때 한번, 러시아로 들어가며 한번, 마지막은 알 수 없는 군인이 나의 여권을 확인한다. 핀란드인이 러시아로 갈 때나, 러시아인이 핀란드로 갈 때 비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출입국 심사가 꽤 철저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저 멀리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비자가 필요 없이 자유롭게 양국을 왕래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여권이 참 자랑스럽다.

2번째 확인이 끝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헤매자 누군가 와서 또 뭐라 뭐라 한다. 역시 러시아어, 알아들을 수 없다. 어떤 다른 사람이 와서 “English?” 하고 묻더니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준다. 나는 그냥 차로 돌아가면 되었다. 3번의 과정이 끝나자 옆자리의 미남 빡빡이 아저씨가 드디어 블록버스터는 끝났다고 설명해준다. 역시 아직 세상은 따듯하다. 사람 첫인상으로 함부로 판단하면 큰 코 다친다.

그렇게 러시아로 넘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나라에 들어왔다. 자연풍경은 비슷하지만 건물과 언어가 다르다. 다른 나라라는 것이 느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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