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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05. 2020

러시아에서 생각하는 "한국적임"

상피테스부르크 여행기#5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반야를 하고, 보드카를 마시고(이건 좋은 건가?), 차이코프스키를 즐기고, 톨스토이를 읽고, 발레를 보러 간다.  마샤가 신이 나 상피테스부르크와 러시아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계속 생각했다. 내 친구들이 한국에, 서울에 와서 나를 만나면 나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한국에 자부심을 느끼며 건물들의 역사와 배경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보드카를 사러 마트에 들어간다. 역시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다. 정말 다양한 보드카가 준비되어 있다.  보드카 하나를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마트의 계산대 옆에는 보통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보면서 쉽게 추가할 수 있는 제품들이 주로 구비되어 있다. 음료수나 껌, 사탕 등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껌, 어림도 없지 당연 술이다. 아주 높은 도수의 술이 마지막 계산대 옆을 장식하고 있다.

보드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보드게임을 할까 이것저것 골라본다. 아르세니가 체스를 제안하고 나는 흔쾌히 응한다. 이런 머리 쓰는 보드게임은 잘 지지 않는다. 자신 있다.

체스에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서 마샤가 보드카와 피클을 권한다. 보드카 샷을 마신 후 피클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체스에 워낙 집중하고 있어 아무 마음의 준비 없이 그냥 보드카를 입에 때려 넣는다.


푸웨ㄱ에켘케…

거의 토할 뻔했다. 아… 내가 마시는 것이 물이 아니고 보드카였지. 얼른 피클을 입에 넣어 보드카의 맛을 조금이나마 지워본다. 피클의 시큼한 맛이 입에 감돈다. 그럼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내 소화기관의 구조가 3D로 정확하게 파악된다. 입의 저작운동부터 시작해, 식도의 연동운동과 위장의 정확한 사이즈까지. 이 3D 정보를 3D 프린터에 넣으면 딱 나의 소화기관 출력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후에 게임을 지속했다. 아르세니 역시 너드한 맛은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 컴공 생이다. 꽤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보드카 때문이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덧붙여 본다.

A: 당연히 보드카 때문이지. 이게 바로 러시아 사기단이 외국인 등쳐먹는 수법인데, 한 명은 게임하는 척 상대의 눈을 돌리고 다른 한 명은 계속 독한 보드카를 주는 거지


함께 식사를 한다. 어제 먹었던 러시아식 만두와 요구르트 소스와 함께 먹는 요리이다. 상당히 맛이 좋다. 보드카는 역시 빠지지 않는다. 겨우 샷 2~3잔 마신 것 같은데 벌써 취기가 확 올라온다. 아르세니는 멀쩡해 보인다. 더 따라 마시면 정말 정신을 놓을 것 같아 그만 마시겠다고 한다. 정말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아르세니는 홀로 보드카 2샷 정도를 더 들이킨다. 어떻게 이걸 마시고도 멀쩡한지, 무섭다.

식사 이후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마샤가 클래식 음악 공연을 예약했다고 한다. 정말 호강하는 여행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주로 다루며, 마지막에는 현대식으로 변주한 음악을 다룰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러시아 박물관 내에서 진행되는 공연장으로 향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족히 수백 석은 넘어 보이는 규모인데, 모든 자리가 꽉 차있다. 다들 정장에 드레스에 예쁘고 멋진 옷들로 입고 왔다. 나는 여행할 때 제일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편한 복장이다. 약간 민망하다. 상피 테스 부르크는 러시아에서도 문화가 가장 발달할 편이라고 한다. 실제로 많은 오페라, 발레, 클래식 음악들이 수많은 공연장에서 열린다. 발레의 경우엔 워낙 인기가 많아 좋은 작품을 보려면 약 8개월 전에 예매해야 한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도 인기가 많은 편인데, 오늘 티켓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상당히 좋았다.

그렇게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들을 감상했다. 처음 1부는 정말 전통적인 클래식 오케스트라이다. 연주자와 지휘자 모두 턱시도를 빼 입었다. 마샤가 옆에서 자꾸 이 노래는 뭐고, 저 노래는 뭐고, 이 연주자는 유명하고, 저 연주자는 저걸로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바흐 음악 하나 빼고 하나도 몰라서 민망하다. 나름 클래식 음악은 좋아하는 편인데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2부는 전혀 다른 형식의 파격적인 공연이다. 지휘자를 비롯한 연주자 모두 청바지와 검은색 캐주얼 셔츠로 갈아입었고, 영화 ost 등의 현대적인 음악을 연주한다. 한 번의 박수를 받고, 지휘자가 들어가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검은색 가죽재킷과 강렬한 붉은 바지이다. 지휘자 형님이 이렇게 멋질 수가 없다. 1부에서는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교양 넘치게 지휘를 하다가 2부에서는 갑자기 라이더로 변신해 락앤롤의 음악을 거의 춤을 추며 지휘한다. 메인 연주자는 일어나서 전자첼로를 연주하고, 박수를 유도한다. 클래식 음악 공연 중 최고로 인상 깊고 강렬하다. 앞으로 이 공연을 최고로 칠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어르신들 두 분 정도가 밖으로 나가신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면, 클래식의 고결함을 망가뜨려 화가 나신 것이 분명하다. 프로그램북에는 2부에는 조금 현대적인 음악을 할 것이라고는 나와 있었으나, 이 정도 롹앤롤을 해버릴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한다. 차로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이 든다.


한국적인 것. 그리고 국제화


유럽에서 정말 많은 도시를 여행했다. 국가별로 당연히 다르지만, 어느 정도 공통적인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국가들이, 작은 규모의 나라일수록 그 정도가 더 크고, 전통적인 문화를 많이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무언가가 굉장히 많다. 러시아 고유의 문화는 아직 잘 보존되고 있다. ”러시아스러움”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굉장히 많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반야를 하고, 보드카를 마시고(이건 좋은 건가?), 차이코프스키를 즐기고, 톨스토이를 읽고, 발레를 보러 간다.

물론, 국가가 아직 문을 활짝 열지 않아 국제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 모스코와 상피 테스 부르크를 제외한 도시에 사는 인구들은 외국에 갈 생각도, 심지어 외국인을 만나본 적도 거의 없다. 구글이나 유튜브 등의 인터넷을 통한 접속도 직접적으로 막지는 않았으나, 영어를 하는 하지 못하면 러시아 웹사이트(우리나라로 치면 네이버)를 주로 이용한다. 그 웹사이트는 당연히 국가의 관여가 커서, 마치 tv처럼 국가가 원하는 정보만을 필터링해서 제공한다. 21세기 사회에 이렇게 문을 닫고 있는 것은 당연히 큰 단점이다. 이런 현실에 답답함을 느껴 정말 많은 젊은 세대들이 러시아를 떠나고 있다.

다만, 전통적인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참 부럽다. 마샤가 신이 나 상피테스부르크와 러시아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계속 생각했다. 내 친구들이 한국에, 서울에 와서 나를 만나면 나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한국에 자부심을 느끼며 건물들의 역사와 배경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결론은 “없다”이다.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 중에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고, 역사적인 유적지와 건물에 대한 공부를 자발적으로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면 미안하다. 당신은 훌륭하다.) 서울에서 구경할 것이 창덕궁과 경복궁이 있고, 안국역에 한옥마을이 있다는 것 정도의 추천을 할 수 있지만, 그것들이 언제 지어졌으며, 무슨 용도였고, 어떤 역사적인 일들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우리는 한국의 전통적인 그것들이 구닥다리라며 멀리 한다. 나부터 그랬다. 한국적인 것은 뭔가 구리고, 세계적인(서구적이 조금 더 통용되는 용어이나, 이 단어는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설날과 추석에 본가를 찾느라 길바닥에 버리는 것 같은 시간이 아깝고,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절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산소는 히말라야 마냥 언제나 지나치게 높았고, 제사 지낼 때는 대체 절을 몇 번이나 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른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내 정체성에 한국인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외국에서 나의 정체성에서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어느 나라 출신인지 이다. 보통 이름 다음으로 소개한다. 이름은 워낙 다양해서 사실 서로 발음도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나는 주로 프랑스 이름이나 중동국가의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유럽 국가 거의 모든 친구들이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을 기억할 때 제일 먼저 기억나는 것이 국적이다.

주로 다루는 대화는 국가별 다른 문화들이다. 어떤 음식을 먹고, 명절에 무엇을 하고, 어떤 특별한 의식이 있는지 말이다. 한국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K pop과 드라마 제목 맞추기 놀이를 지나면 주로 하는 것도 한국문화이다. 설날과 추석에 먹는 떡국이나 제사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내 나라, 한국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더 재미있는 설명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훨씬 더 재미있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앞으로는 제사를 지낼 때 절은 몇 번 하는 건지, 홍동백서는 뭔지, 음복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금 알아볼 것이다. 창덕궁과 경복궁은 누가, 언제, 왜 지었고, 우리나라 한옥에는 특별함이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고마운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샤가 내게 했던 것처럼, 한국 여행을 최고의 경험으로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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