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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07. 2020

더 즐거운 여행을 만드는 3가지 방법.

상피테스부르크 여행기#6

러시아, 상피 테스 부르크에서 여행을 마쳤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인연과 경험을 선물해 준다. 나아가, 일상으로 돌아와도 일상이 달라 보이는 효과까지 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낀 여행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드는 3가지 방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언짢아하지 않기


여행 3일 차, 드디어 처음으로 혼자 길을 거닐며 여행을 시작한다. 처음에 마샤의 직장 근처에서 시작해 근처에 관광지를 찾아가기로 한다. 처음에 찾아가려 했던 곳은 blue mosque(Saint Petersburg Mosque). 상피 테스 부르크의 유일한 모스크이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도시이다 보니, orthdox(그리서 정통교)가 주를 이루는 도시임에도 이슬람교도를 위한 모스크도 존재한다. 인터넷이 길거리에선 되지 않아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길을 익히고, 그저 걸어서 찾아간다.


엄청나게 큰 건물이 있다. 아마도 blue mosque가 아닐까 싶다. 들어가서 구경한다. 정말 엄청난 크기에 압도된다. 수백 년 전 대체 어떻게 이러한 건물들을 지었을까 놀랍다.

알고보니 peter and paul 요새.

그렇게 구경을 하고 나와 옆을 돌아보니 또 멋진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색깔이 푸른색이고, 모양을 보니 이게 mosque이다. 어쩐지, blue mosque라고 생각한 건물은 파란색이 아니었다. 너무 멍청하다. 혼자만의 에피소드를 웃어넘기고 원래의 목적지로 향한다.

St.petersubrg mosque

 먼 곳에서 사진을 찍고 모스크 안에 들어가 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가 쓸데없이 너무 길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공학적으로 계산해보아도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이 훨씬 시간적으로 이득이다. 당연히 실행으로 옮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착지했다.


뭔가 좋지 않은 소리다. 뭐지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데 갑자기 하늘에 깃털이 날아다닌다. 마치 천사가 강림한 것 같다. 겉옷을 확인해 보니 겉옷에 구멍이 났다. 울타리를 넘는 과정에서 나의 몸은 성공적으로 넘어왔지만, 롱 패딩의 길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넘어가는 과정에서 겉옷이 울타리의 뾰족한 곳에 걸렸고, 구멍이 나 버렸다.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람이 엄청나게 많이 부는 그날의 상피 테스 부르크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 구멍 사이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깃털이 계속해서 빠져나와 날아갔다. 걸어 다닐 때마다 깃털이 여기저기로 날아다녀 마치 나의 행적을 남기는 헨젤과 그레텔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날아다니는 천사가 된 기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았다. 언짢음을 느끼지 않았다. 여행에서 이런 일들은 많이 일어나는 법이다. 여행을 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이런 것도 나름의 재미지

하고 웃어넘기며 여행을 계속했다. 여행에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장소가 아니니, 사소한 변수에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짜증이 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말 사소한 실수 때문에 함께 여행을 간 친구끼리 싸우고 서로 기분이 잔뜩 상해 그날의 여행을 망쳤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을 수 있는 고전이다.


여행일수록 마음을 가볍게 먹을 필요가 있다. 마음을 가볍게 먹고, 새로운 변수가 생기면 그 변수를 나름대로 즐겨보자. 순간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충분히 재미있는 안주거리로 변한다.


그렇게 구멍을 한 손으로 틀어막는 응급처치라고 하기도 민망한 조치를 취하고 여행을 계속한다. 이전에 친구가 추천해준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가서 점원에게 혹시 테이프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테이프를 받아서 간신히 심폐소생술에 들어간다. 테이프를 덕지덕지 칠해 구멍을 억지로 막아 놓으니 그래도 걸을 때 깃털이 온 사방으로 날아다니지는 않을 듯하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아간다. 성 아이삭 성당을 구경한다. 계속해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이렇게 많은 문화재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참 대단하고,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더한다. 그렇게 관광을 계속하고 여기저기 지도를 보며 방문한다.

St.Isaac's cathedral

6시에 친구를 시내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4시 반쯤 되었을 때 길을 찾아 슬슬 걸어가 보려고 한다. 걸어가려니 1시간이 조금 더 넘게 걸리는 거리이다. 충분히 서두르면 늦지 않을 것 같아, 약 15분 정도 늦을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남겨 놓고 걸어간다. 열심히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걷는다. 워낙 추워 길을 보지 않고, 감각을 믿으며 걸어간다.


걷다 보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생각보다 길이 복잡하다. 하염없이 방향만 맞춰 걷다 보면 대략 도착하겠다 싶었는데 벌써 한 시간 도 훌쩍 넘게 걸었다. 거의 6시가 다 되어버렸다. 마침 근처에 KFC가 있어, 매장에 들어가 인터넷을 연결한다. 위치를 확인해 보니 엄청나게 먼 거리이다. 아침 8시부터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이미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친구에게 SOS를 보낸다. 내가 현재 이곳에 와 있는데 나를 데리러 와 줄 수 있겠냐고 말이다. 다행히 차가 있어 금방 올 테니 기다리라고 말해준다. 한숨 돌린다.


나는 항상 내가 길을 잘 찾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족들을 데리고 가이드 역할을 하며 여행을 할 때나, 여자 친구와 여행을 할 때 길을 찾을 때 항상 예상보다 오래 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왜 혼자 여행할 때는 길을 잘만 찾는데 친구들과 여행을 할 때는 잘 되지 않는가 라는 고민을 매번 하곤 했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았다.


나는 길을 잘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는 것을 언짢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길을 잃는 것도 여행의 일부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재미를 찾고, 사진을 찍으며 즐겼던 것이다. 가이드로서 여행을 할 때는 절대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수 없지만, 홀로 여행을 할 때는 정말 좋은 태도이다. 길을 잃으면 잃은 대로, 겉옷에 구멍이 나면 나는 대로, 웃어넘기면서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된다. 굳이 언짢아할 필요 없다.




2. 공부하기


그렇게 첫날의 여행은 한식을 좋아하는 러시아 친구의 최애 한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관광지에 대해서 눈으로 느끼고는 있지만 너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친구가 오늘 어디 어디를 다녔는지, 어떤 게 어떻게 좋았는지 묻는데 너무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제한되어 있었다. 심지어 대부분 방문했던 곳의 이름도 잘 몰랐다.


최소한 이름과 최소한의 역사 정도는 외우고 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내용을 대략적으로 외우고 있는 정말 몇 개 되지 않는 시이다. 중학교 때 수행평가로 외웠던 시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관광지의 수많은 궁전과 대성당들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냥 "멋진 건물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건물들을 공부해 이름으로 불러주고, 역사를 공부한다면 그 건물은 내게로 와 "꽃"이 되어준다. 같은 건물을 살펴보아도 훨씬 다르게 보이고, 사소한 것들에서 더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최소한의 공부를 하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 위키피디아만 찾아봐도 웬만한 흥미로운 공부는 다 할 수 있다.

Alexander Nevsky Lavra, 알렉산더 네브스키 수도원

1710년 러시아의 피터 1세가 왕자인 알렉산더 넵스키가 스웨덴인들을 물리쳤던 1240년 네바 전투의 현장을 기리기 위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브스키 프로스 피크 동쪽 끝에 세운 것이다. 수도원으로서 과거에 기능을 했기에 하나의 대성당의 구조가 아니라, 작은 학교의 구조처럼 구성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상피 테스 부르크의 상징인 Bronze horseman을 구경했다.

이 동상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원 광장에 있는 피터 대왕의 승마상이다. 18세기 후반 캐서린 대왕이 지시한 이 작품은 프랑스 조각가 에티엔 모리스 팔코넷에 의해 만들어졌다. 동상의 이름은 알렉산더 푸슈킨이 1833년 지은 동명의 시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시는 러시아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조각상의 받침대는 거대한 썬더 스톤으로, 인간이 지금까지 움직인 것 중 가장 큰 돌로 알려져 있다. 이 돌은 원래 무게가 약 1500톤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냥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동상도, 공부를 하고 꼼꼼히 살펴보면 그 의미와 역사에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아직 과학의 힘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전 18세기 후반 그 무거운 돌을 옮겼을 생각을 하니, 당시 러시아 황제의 위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어제 방문했던 성 아이삭 성당을 다시 방문했다. 어제는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워낙 좋아 전망대에까지 올라갔다.

피터 대왕의 수호성인인 달마티아의 성 아이작에게 바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성 아이작 광장의 교회는 차르 알렉산더 1세의 명령으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특별히 임명된 위원회가 나폴레옹의 디자이너인 샤를 페르시에의 아틀리에에서 공부한 프랑스 태생의 건축가 아우구스트 드 몽 페랑드(1786-1858)의 설계도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설계를 검토하였고, 건설에만 40년이 걸렸다(1818-1858). 소련 정부가 들어서며 종교를 금지하는 맥락으로 1931년 소련 정부에 의해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그 후로는 계속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전망대는 200 루블 (한화로 약 4천 원 내외)를 내면 올라갈 수 있고, 계단을 통해서 올라간다. 200계가 넘는 개단을 넘어 전망대에 도착하며 상피 테스 부르크 시내 전망을 모두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Hermitage 박물관에 갔다.

State Hermitage Museum

상피 테스 부르크의 최고의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계속 지나다니면서 이것이 그 박물관인지 몰랐다. 그냥 또 하나의 궁전으로 알고 있었다.


우선 입장에 앞서 아름다운 외관에 압도되었다. 주로 밤에 방문하였기에, 화창한 낮에 보이는 그 웅장함과 화려한 색채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야경.

프랑스의 르브로 박물관을 따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미술관으로 1764년 캐서린 대왕이 베를린 상인 요한 에른스트 고츠 코프스키로부터 인상적인 그림들을 입수하면서 설립되었다. 1852년부터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수많은 소장품 중 극히 일부만이 영구 전시되어 있는데, 이 소장품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 컬렉션을 포함하여 300만 점 이상의 품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에게는 무료로 입장을 허용하고, 일반인에게도 4,000원 정도의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입장권을 판매한다. 수많은 관이 있고, 그 관마다 인테리어가 모두 다르다. 수많은 유럽의 그림과 조각들부터 아프리카와 아시아권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문화재들을 구입(혹은 강탈)했다.


2시간 정도를 계획하고 들어간 박물관이지만, 그 크기와 디테일에 감동해 4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이후 친구를 만나 4시간 동안 전체의 반의 반도 못 본 것 같다고 하니, 당연하단다. 모든 전시물들을 앞에서 한 번씩 멈추며 제대로 관람하려면 숨만 쉬고 관람해도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3. 더 감사하기


그렇게 홀로 관광을 마치고는 친구들과 만나 오페라를 관람했다. 오페라는 한 번도 관람해본 적이 없는데, 색다른 경험이었다. 연극에서 모든 대사를 노래를 부르며 전달한다. 하나의 대사도 빠짐없이 노래로 전달한다.


"안!~~~~ 녕~~~~~ 하십니까~~~~~, 제 이름은~~~~~~~ 영감 버섯~~~~~~입니다~~~~"

대략 이런 식으로 모든 대사가 진행된다. 처음의 어색함만 이기고 나면 그 나름의 전달력이 굉장하다.

해당 티켓도 러시아 친구들이 중고마켓에서 구입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제 고맙다는 말도 너무 많이 해서 식상하지만, 그래도 더욱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전한다.


오늘은 자랑스럽게도 대중교통을 성공적으로 이용했다. 친구가 러시아 버스카드를 빌려주어 충전을 해서 자유롭게 다녔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이용을 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기계에 영어가 제공되었고, 지하철 역은 지도를 보며 파악하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뿌듯함을 느끼고 스스로 칭찬해 주었다. 어제는 무서워서 지하철도 못 탔는데 오늘은 발전했다. 칭찬하고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일이다.


이번 여행은 정말 크고 작은 많은 도움을 받았던 여행이다. 러시아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 번역해준 사소한 친절과, 테이프 심폐소생술, 집의 방까지 내어주며 모든 여행을 책임져준 마샤까지. 수많은 호의들에 매번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함을 진심으로 가슴 깊이 느끼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즐거워진다.



적고 보니 여행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도 위의 3가지 태도는 내 인생을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여행뿐 아니라 언제나 위와 같은 태도로 인생을 살아보자.



상피테스부르크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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