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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03. 2020

러시안은 무섭다?

상피테스부르크 여행기#3

러시아 인들은 뭔가 무섭고, 친절하지 않다는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서 온 것인고 하니 당연히 할리우드 영화에서 온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미국의 미디어가 아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이다. 다르지 않다, 다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지 않을 뿐이다.


도착할 때쯤 보니 문자가 와 있다. 인터넷은 안되지만, 문자를 받는 것은 어째 되는 모양이다. 문자는 모르는 번호인데, 마리아의 친구, Arseny란다. 마리아는 휴대폰이 망가져서 연락이 안 되었던 것이고, 도착할 때쯤 Bukoved shop에 있겠다고 한다. 연락이 닿던 2일 전에 핀란드에서 방문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

천만다행이다.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구원을 해주는 느낌이다. 이름도 maria(예수의 어머니)이니, 그녀가 나를 구원해 주었다고 해도 아주 큰 호들갑은 아니다.  호스텔을 예약하느라 난리를 칠 필요는 없겠다. 현지인이 나를 케어할 것이다.

버스는 도착을 했다. 대체 Bukoved shop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어, 버스에서 내려 Bukvoed shop이 어디냐고 이름을 보여주며 약 5번 정도 물었다. 영어는 못 알아듣는 것 같지만, Bukoved shop을 5번쯤 반복하자 내가 이 곳이 어디인지 묻는지 알아듣는 것 같다. 참 신기하다. 언어는 못 알아듣지만 대충 의사소통은 다 된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주는데 정말 바로 앞이다. Maria, 최고다. 정확히 버스가 내리는 곳 바로 앞에 장소를 말해 주었던 것이다. 현지인은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들어가 보니 서점이다. 상당히 큰 규모의 서점이다. 와이파이가 되는지 알아보지만, 역시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서점에 있는 카페를 찾아간다. 보통 카페는 와이파이가 되기 마련이라 와이파이를 기대하고 어슬렁어슬렁 거린다. 메뉴를 살펴보아도 온통 러시아이고, 가격 역시 러시아 통화, 루비이다. 가격이 얼마인지 전혀 모르겠고, 메뉴도 모르겠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랬더니 직원이 아주 유창한 영어로
“영어 메뉴 필요해?”
라고 묻는 것이다. 예상외의 친절함에 감사함은 곱절이 된다.


“예스, 스파시바”


내가 아는 단 하나의 표현 스파시바 (감사합니다.)를  시전하고 영어 메뉴판을 받는다. 오렌지 주스로 결정한다. 90 루비인데 이게 얼마인지 도통 모르겠다. 오렌지 주스가 얼마인지 물었다. 당연히 90 루비라고 설명한다. 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통화를 모를 가능성이 높으니 유로나 달러로 바꾸면 얼마인지 물었다. 대략 1.5 유로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일 것이라고 한다. 굉장히 저렴한 가격이다. 카페에서 파는 오렌지 주스가 한화로 2000원 내외 가격이다. 아주 저렴하다.

기분 좋게 오렌지 주스를 시키고, 와이파이를 묻는다. 요즘 시대에, 특히 새로운 도시에 갔을 때 와이파이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나의 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이터 로밍을 시도했으나, 어쩐 이유에선지 작동하지 않는다.

카페 직원이 매우 친절하게 내 자리까지 와서 와이파이를 연결해준다. 비밀번호가 있는 시스템은 아니고, 와이파이 연결 후 웹사이트에서 휴대폰 번호를 인증하는 시스템이다. 러시아 번호로만 인증을 할 수 있어, 직원 본인의 번호로 내 휴대폰의 인터넷을 연결해준다.

러시아 인들은 뭔가 무섭고, 친절하지 않다는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서 온 것인고 하니 당연히 할리우드 영화에서 온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이전 냉전시대부터 서로 썩 사랑하는 관계는 아니다.

언제나 미국 영화의 악당은 러시아인이고, 우리의 멋진 영웅들은 나쁜 러시아인로부터 죄 없는 소시민들을 구출해준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가 무서운 이유는 어느 순간 우리 역시 무의식적으로 그 이야기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이런 이야기에 익숙해진 나는,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체 러시아 인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무섭다는 고정관념은 정말 많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다.


https://youtube.com/watch?v=oRIsC764Nn4

러시아 악센트에 관한 스탠드업 코미디, 미국의 주류 사회가 인지라는 러시안 악센트.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미국의 미디어가 아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이다. 똑같은 사람이고, 다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지 않을 뿐이다. 내가 만난 러시아 인들은 친절하게 웃으면서 나를 도와주었다. 심지어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도 말이다.

간신히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서점의 카페에 있겠다고 말이다. 메시지를 보낸 후 5~10분이 지나자 마리아가 도착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은 타지에서 친구를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만나자마자 포옹을 했다. 마리아의 친구 Arseny와도 인사를 했다.

그렇게 상피 테스 부르크를 관광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주위를 잘 둘러보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친구만 따라가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여유가 생기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너무도 아름다웠다. 지금껏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 수많은 아름다운 도시 중 현재 2위로 우뚝 올라섰다.  (1위는 아마도 Cambridge일 것이다. 나 같은 물리 덕후에게 뉴턴과 같은 땅을 밟고, 멕스웰, 레이레이, 톰슨, 러더퍼드, 브레그 가 연구소장으로 있던 연구소에서 그들이 사용했던 실험기구를 보는 경험은 감히 그 지구의 어떤 지상 낙원도 견줄 수 없다. 아마 사후세계의 천국이 있다면 대충 견줄 수 있을까?)

러시아, 상피 테스 부르크의 건물들은 지금껏 내가 구경해온 다른 유럽의 그것들과는 제법 많이 달랐다. 건물의 스타일이나 양식은 북유럽이나 독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 사이즈와 스케일이 다르다.

지금껏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관광을 할 때는 한 거리 정도에 큰 관광할 거리들이 있고, 아주 거대한 궁전이나 대성당 교회들이 하나씩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한 시간 걷는 내내 아파트만 한 궁전과 수많은 교회들과 성당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마리아는 그녀의 도시를 참 사랑하는 것 같다. 이건!@!@! 고, 저건 @##)$%고, 계속 신나서 설명했다. 당연히 건물들의 이름이 러시아어라 알아듣긴 힘들었지만, 대충 이건 역사적으로 중요했고, 저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현재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코 이전에 과거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712–1728, 1732–1918) 거대한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으니 당연히 황제의 궁전과 역사적인 교회와 성당들이 많을 수밖에.

입이 떡 벌어지는 사이즈의 궁전과 건축물들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을 구사했다.


 Amazing, Gorgeous, Enormous, Exquisite, Elegant, Fascinating, Marvellous….

내가 아는 모든 영어 표현을 모두 소진했음에도, 아직도 많은 건물들과 박물관이 남아 있어 그 이후부터는 그저 Wow 등의 간결한 표현과 눈이 휘둥그레지는 표정으로 대체했다. 원체 선천적으로 반응도 큰 편에, 대학교 1~2학년 열심히 했던 연극의 영향으로 감탄의 반응은 더욱 커진 상태이다.

나의 수많은 다양한 영어단어와 감탄스러운 표정에 마리아는 기분이 점점 더 좋아지는지 더욱 신나서 수많은 설명을 했다.

나 역시 덕분에 기분이 좋았고, 행복하게 공짜로 상피 테스 부르크 관광을 가이드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로는 펠메니라는 만두와 샐러드를 먹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핀란드에서 생활을 하니 뜬금없는 장점 중 하나가 세상 어디를 가도 저렴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긴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까지 계속 맛있는 티와 음식을 대접받았다. 4일 동안 묵을 수 있는 내 개인 방도 주었다.


정말 오기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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