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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04. 2020

진정한 러시안이 되는 길

상피테스부르크 여행기#4

1 러시아의 사우나 반야에서 몸을 지진다. 2 베니크로 몸을 사정없이 때려 온 몸의 미세 구멍을 넓힌다. 3 그 상태에서 계곡으로 뛰어가 얼음물에 몸을 담근다. 4 장간의 칼처럼 뜨거운 곳과 찬 물에 식히는 담금질을 반복,  5. 보드카 샷을 필마니와 피클을 안주 삼아 먹는다. 6. 마지막엔 교양 있게 클래식으로 마무리.

축하한다. 당신은 이제 러시아인이다.


길었던 하루를 무사히 끝내고, 잠에 들었다. 무려 11시까지 푹 잤다. 잠에서 깨 주방을 가니 마샤 (영어식 이름은 마리아이지만, 러시아 식으로 발음하면 마샤에 가깝다.)가 요리를 하고 있다. 아침은 포리지와 마샤의 어머님께서 만드신 베이킹 요리. 핀란드에서 먹던 요리와 유사하다. 특히, 페이스트리는 핀란드에서 크리스마스에 먹는 그것과 같은 모양이다. 마샤와 어머님, 그녀의 남자 친구 아르세니, 그리고 나까지 4명이 도란도란 아침을 먹는다.


오늘의 첫 일정은 반야, 러시아식 사우나 혹은 공중 목욕탕이다. 진정한 러시아를 체험하고 싶다면 이곳을 꼭 가야 한다고 한다. 우리 셋은 반야로 향한다. 마샤의 집은 시내에서 차로 5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으로, 비교적 조그마한 동네이다.

입구에서 티켓을 사려하는데 입구의 할머님과의 대화가 매우 길어진다. 할머님의 언성이 높아지는데, 이번에도 내가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어 때문에 화가 난 것처럼 들리는 건지, 정말로 화가 나신 것인지 알기 힘들다.
동네 어르신이라 할 말이 많으신가….

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아르세니가 마샤가 출입을 거부당하고 있다고 한다고 설명해준다. 이유가 뭔고 하고 들어 보니 제법 황당한 이유다. 얼마 전 마샤가 해당 반야의 리뷰를 러시아의 페이스북과 비슷한 웹사이트에 작성했다. 아주 오랫동안 단골이었던 마샤는 최근의 급격한 가격의 상승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저번 주 아르세니가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넘어져 다치기까지 했다. 실제로 동네의 모임 장소 같은 역할을 했던 장소였으나, 현재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조금 먼 시내의 반야로 향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급격한 가격 상승과 미흡한 관리에 대해 부정적 리뷰를, 개선을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작성했다. 가격은 지나치며, 바닥은 미끄럽고, 청소 상태는 미흡하다며 말이다. 그 글에 공감하는 어르신들이 매우 많았다. 많은 어르신들이 그 글을 읽었고, 그 글이 엄청나게 읽히고 공유가 되며 심지어 관리청에서 해당 반야에 연락까지 왔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님은 전반적인 반야 재구성을 하고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리뷰가 고작 일주일 전이라 마샤는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이 설명을 듣는 내내 할머님과 마샤는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과장 없이 목욕탕 입구에서 10분 동안은 서서 기다리고 있다.

대충 마샤는 자기는 이 곳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쓴 것이고, 개선이 되고 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지 않겠냐고 할머님을 구슬리는 중이다. 반야에서는 베니크 (나뭇잎 꾸러미)로 자신의 몸을 때리는데, 주로 자작나무나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다.

베니크 역시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교체가 되지 않는다고 마샤가 리뷰를 남겼던 모양이다. 대화가 대충 이렇게 흐르고 있다. (아르세니 역시 이 상황이 제법 흥미로웠는지 모든 상황을 영어로 다 번역해 주고 있다.)

H(할머니): 내가 그걸 매번 어떻게 한번 쓰고 버리게 하냐! 더러우면 네가 직접 사서와!!
M: 그럼 그거 우리가 내가 직접 쓸 것 사 올 테니까 보내주세요~
H: 그… 그려..? 그러면 그러 등가!”
M: 그럼 사 올게요~


역시, 직장인 3년 차의 관록인가. 직장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의 사회생활 능력은 있어야 하는 건가. 진심으로 감탄한다.

그렇게 새 베니크를 근처에 상점에서 구입하고, 다시 왔다. 할머님은 화가 많이 누그러지신 것 같다. 티켓을 판매하시면서 나를 가리킨다.


H :저 놈은 누구야!?
M: 제 친군데요, 한국에서 왔어요 러시아의 반야를 체험하려고 하는 중이에요.
H: 그래?!! 그럼 저놈은 환영이야!!! 행복한 목욕 해!! (러시아에서 목욕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마샤와 아르세니가 먼저 빵 터졌고, 상황을 설명 들은 나 역시 박장대소했다. 처음엔 어이없었지만 점점 진행이 될수록 할머님의 츤데레가 귀엽다. 재미있는 일화를 뒤로하고 목욕을 하러 반야로 들어간다.

반야의 과정은 쉽게 말해 고문의 연속이다. 처음 목욕을 하고, 사우나에 들어간다. 핀란드 사우나나 한국의 사우나를 경험한 터라 별 문제없을 줄 알았다. 아니다. 그보다 훨씬 하드코어다. 지옥 불에 몸을 지지는 것 같다. 적당히 (내겐 적당하지 않았다.) 몸을 따듯하게 만들면 수영복 혹은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밖으로 나온다. 온몸에 눈을 바른다. 몸을 춥게 만들어 사우나에서 더 오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이 친구들, 좀 이상하다... 이미 추워서 머뭇머뭇하고 있는다.

자기들끼리 실컷 온몸에 눈을 바르고 나서는 “이 친구 안 되겠구먼”을 시전하고 내 슬리퍼를 기어코 뺏어 맨발로 만들고, 내 몸에 친히 눈을 발라준다. 이 친구들, 위험하다.


이제 만족스러운지 다시 사우나로 들어간다. 추워서 계곡 가기도 전에 사망하는 줄 알았다. 확실히 사우나에 오래 있고 싶기는 하다. 이제 사우나에서 몸이 너무 뜨거워서 사망하기 직전까지 버틴 다음 그 상태로 바로 얼음물로 달려가야 한다고 한다. 이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 진다.

정말 너무 뜨거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갔다. 이제 몸에 수건을 걸치고 계곡으로 향해야 한다. 몸에 수건을 걸치고 계곡을 향해 걷는다. 2~3분 거리에 계곡이 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얼음물이다. 얼음이 얼어있는 계곡에 이것을 위해서 약 2~3미터 반경의 원이 뚫려 있다. 지독한 러시안들, 뭘 얼음에 구멍까지 뚫어 놨단 말인가.

나는 수영복이 없는데 수건과 함께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보통 알몸으로 들어가는지 혼란스러웠다. 물었더니, 보통 계곡에 몸을 담글 때는 알몸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흠칫했다.
대충 그 표정을 읽은 아르세니가


A(Arseny) : 이건 섹스가 아니라 고문이니까 괜찮아!

라고 하며 몸소 먼저 얼음물에 들어갔다. 시원하게 고함을 지른 후 다시 돌아왔다. 내 차례다. 심호흡을 하고 믿지 않는 하느님 알라신 부처님을 찾았다. 심장마비는 걸리지 않게 해 주세요… 아르세니가 한국말로 욕해도 된다고 한다.


들어가니 알몸의 부끄러움은 뭐 생각할 겨를 도 없고, 고함밖에 안 나왔다. 소리소리를 지르고 한국말로 시원하게 욕까지 한다. 내 몸의 뉴런의 촉수 돌기가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게 아니고 누가 내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기분이다. 따갑다.

온몸을 담그고 다시 나와 수건으로 몸을 감쌌다. 전혀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여전히 바람을 불고, 내 몸은 조금 전 얼음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마샤가 다음 차례로 들어간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역시 내 표정을 읽은 아르세니가 추우면 먼저 돌아가 있으라고 한다. 고맙다. 정말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건지, 센스가 대단하다.

그렇게 고행 길을 돌아갔다. 갈 때는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를 괜히 쳐들어갔다가 싸워보기는커녕 러시아의 겨울에 다 얼어 죽었다던데, 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아니, 그래도 그 사람들은 엉성하지만 군복을 입고 있었잖아. 나는 수건 하나 걸치고 있는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영겁의 길을 지나 겨우 사우나에 도착한다. 얼른 샤워를 하고 사우나에 들어간다. 그 가마솥에 지지는 것 같던 사우나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뒤 이어 아르세니가 돌아온다. 이전에 준비했던 베니크를 들고 온다. 누우라더니 나를 그 베니크로 사정없이 때린다. 볼기를 맞는 것 같기도 하도, 제법 따갑다. 베니크로 몸을 때리면 몸의 혈액순환을 돕고 온 몸의 구멍을 넓혀 더 큰 열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친구들은 왜 이렇게 하드코어를 좋아하는가.

어때 별거 없지? 이걸 계속 반복하기만 하면 돼  

젠장. 한번 더 한다고?

위 과정을 그대로 한번 더 반복한다.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훨씬 할만하다. 두 번째 입수 후에는 나름의 상쾌함도 느껴진다.

그렇게 모든 과정을 끝냈다.


A:크. 인생 별거 없다니까? 행복해
I(Inspiring mushroom, 필자): 그러게 이거 하고 나오니까 엄청 개운하다.
A:이게 바로 너를 고문하는 이유야, 이제 더 이상의 고문은 없다. 얼마나 행복하냐?

참 이상한 코드를 가지고 있는 웃긴 친구다. 로비로 나와 마샤를 기다린다. 겉옷을 할머니께 받는다.

H: @$$@!@

무슨 말인지 물으니 러시아에서 반야 이후에 하는 행복한 목욕~ 정도의 인사말이라고 한다. 이 할머니, 치명적이다. 츤데레의 끝판왕이다.

마샤를 로비에서 만나 나갈 채비를 한다.


I : 얼음물에 입수까지 했으면 나도 이제 러시안이냐?
M: 맞지~
A:  무슨 소리야 보드카를 먹어야지 이제.
M: 맞네 ~ 어떻게 그걸 까먹을 수 있지? 보드카 사러 가자.

길고도 험난한 트루 러시안이 되는 길,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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