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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09. 2020

핀란드의 페미니즘

핀란드의 젠더#1

한국에서 페미니즘만큼 말을 꺼내기 어려운 주제도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의 본래 정의는 "성별에 따른 평등"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그것을 잘 못하고 있다. 무언가를 개선할 때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잘하고 있는 대상을 따라 하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젠더에 따른 불평등이 가장 적은 나라들 중 하나인 핀란드, 그들은 어떻게 그 결과를 이룬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 


현재 한국에서 페미니즘만큼 화두가 되고 있는 큰 주제도 없다. 가장 큰 발화점이 된 사건은 강남역 살인 사건이다. 이미 조금씩 불이 붙고 있던 이 젠더의 문제에 기름이 확 하고 번졌다. 먼저 여성들이 젠더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 여성 혐오 발언 등의 주제였다. 그리고 일부 극단적 시위로는 메르스 갤러리로 파생된 여러 가지 시위와 게시물 등이 있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성별에 따른 갈등이 이어졌는데, 여성들이 화가 났고, 화가 난 여성들의 높은 목소리와 시위에 남성들 역시 화가 났다. 현재까지 집단 모두 화가 나 있다.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는 서로 이성적인 대화가 어렵다. 그래서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서로 조심해야 하는 주제, 혹은 괜히 피해야 하는 주제로 변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분명히 중요한 주제이다. 21세기 밀레니엄 세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2가지 화두로 페미니즘과 절대빈곤 극복을 이야기한다. 우리 세대가 세계시민으로서 살아가면서 언제나 마주해야 할 주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대체 무엇일까? 

Feminism is a range of social movementspolitical movements, and ideologies that aim to define, establish, and achieve the political, economic, personal, and social equality of the sexes.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eminism

위키피디아에 의한 페미니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페미니즘은 성별의 정치적, 경제적, 개인적, 사회적 평등을 정의, 확립,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 운동, 정치 운동, 이념의 범위다.

즉 페미니즘의 정의는 "성별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고, 반발할 이유가 없는 정의이다. 그러나 이 정의에 반기를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위키백과 한글 사전의 페미니즘을 찾아보면 살펴볼 수 있다. 

여성주의(영어: feminism 페미니즘) 또는 여권주의는 여성의 권리를 중요시 여기는 이론이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여성주의 

한국의 위키백과에서는 영어 버전 위키피디아와 조금 다르게 정의가 되어 있다. 위키백과는 분명 학술적이고 권위적인 사전은 아니다. 그러나 그 용어를 사용하는 대중들이 그 단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줄 수 있다. 


내가 이 글에서 다룰 페미니즘은 "성별에 따른 평등"에 대해서 이다. 한국에서는 성별에 따른 평등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 

2018  Global Geneder Gap index, World Economic Forum

2018년 Global Gende Gap Index 순위에서 한국은 전체 140여 개국 중 115위로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순위를 차지했다. 국제경제 기구에서 조사한 결과로 한국은 성별에 따른 평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 나라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고, 개선해야 되는 부분이다. 


무언가를 개선할 때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잘하고 있는 대상을 따라 하는 것이다. 맥락과 상황이 달라 모든 것을 다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처음에 방향성을 잡을 때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은 사실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성별에 따른 평등이 잘 이뤄지고 있는 나라들은 어디인가?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로 우리가 흔히 북유럽 국가라고 분류하는 나라들이다. 



완벽하게 경향성을 따라가지는 않지만, 성별에 따른 평등이 높은 나라들은 주로 가장 행복한 나라 순위에서도 높은 순위에 위치한다. 이 두 가지의 상관관계는 많은 연구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나는 핀란드에서 1년 2개월째 생활하고 있다. 핀란드는 2020년 Gender Gap Index에서 스웨덴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그렇다면 핀란드는 어떻게 성별에 따른 평등을 잘 성취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 비밀을 살펴보면 한국에도 적용할 무언가가 있을 게 아닌가? 


교육이 사회를 따라가냐, 사회가 교육을 따라가는 것이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인류의 딜레마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만큼은 모두가 교육이 사회를 이끌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만큼 교육에 대한 투자가 높고, 교사에 대한 존중 도도 높다. 의과대학 다음으로 경쟁률이 높은 곳이 교사가 되는 과정이니, 교사에 대한 열의와 존중이 얼마나 높은지 잘 볼 수 있다. 


그 핀란드의 교육에서는 최근 젠더에 대해 어떻게 학교에서 가르칠 것인가가 굉장히 큰 화두이다. 과연 앞으로 자랄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관념을 어떻게 심어주어야 할지, 사소한 언어와 정책에서부터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에 핀란드 교육학 수업 "북유럽 교육"시간에 다룬 내용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림: HJH


이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사람이 제법 있을 것이다. 남성적인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보면서, 혹은 여성적인 옷을 입은 남자아이를 보면서 이상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들이 분홍색 스커트를 입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바지를 입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가정한다. 


사실 입는 옷이야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는 옷이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대표하고, 그것들에는 수많은 고정관념들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고정관념의 예를 들어보자. 남성은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여성은 공간지각을 잘하지 못한다. 흔히들 많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위험하다. 아이들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해로울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 고정관념을 강력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은 고정관념이 아닌 사실이라고 거품을 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분명 연구 분야에서도 우리의 고정관념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많다. 마스르쉬의 연구에 따르면(1), 여성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표정과 중립적인 얼굴 모두에서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공간 인식에 대한 연구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공간 과제에서 남성이 더 높은 성과를 보여주었다.(2)


분명 어떤 능력들은 성별과 관련된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일부는 통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몇 가지 물음표를 던져봐야 한다. 


우선 어떤 진술이 통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하더라 항상 예외가 있다. 공간 인식에 정말 능한 여자아이와 정말 감성적으로 예민한 남자아이들이 있다. 이 예외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정관념들 때문에 많은 재능들을 잃고 있을지도 모른다.


둘째로, 수많은 연구의 결과는 많은 편향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는 수세기에 걸쳐 생성된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강력한 고정관념을 토대로 설계되었다. 해석의 영역 역시 전형적인 여성/남성성을 기준으로 해석되었다. 가설 수준에서 많은 연구들은 이미 남성과 여성이 특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많은 실험이 진행된다. 이미 그런 가설을 가지고 시작을 하니, 그 가설을 증명하는 연구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뇌과학적으로 어떤 직접적인 차이를 보이는 연구가 없음에도 말이다.(3)


그리고 그러한 경향성은 생물학적인 차이가 아닌, 우리 사회가 만든 결과에 따른 경향성일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는 자신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원주 토착민을 통해 성별에 따른 경쟁심을 측정한 결과이다. 경쟁심은 인터뷰와 새로운 길을 포기하지 않고 찾는 정도, 바구니에 공을 넣는 게임 등을 통해 계산했다. 먼저 우리 대부분의 사회와 같은 부계사회의 문화를 살펴보자. 가부장적(마사이) 문화에서는 남성의 50%가 경쟁을 선택한 반면 여성은 26%에 그쳤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정관념과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모계(카시) 문화에서는 여성의 54%가 경쟁을 선택했고, 남성의 39%만이 경쟁을 선택했다(4). 즉,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고정관념들이 사실 유전적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사회 속에서 만든 사회적 역할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런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다. 우리 뇌의 특정 회로가 신체적 또는 정신적 활동의 반복을 통해 강화됨에 따라, 우리의 뇌는 그 부분의 회로를 더욱 강화시키고, 그 부분이 더욱 발달하는 것이다. (5)


따라서 특정 부분에 더 많은 뇌를 사용하면 그 특정 부분이 더 많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우리가 남자아이들을 운동과 퍼즐에 익숙하도록 키우고 여자아이들을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에 익숙하게 한다면, 남자아이들의 뇌는 공간 인식에 익숙해지고 여자아이들의 뇌는 공감과 감정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엄청난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멋진 실험이 있다. 그것은 "A Gender Neutral Education | No More Boys & Girls Can Our Kids Go Gender Free"라는 다큐멘터리다. 


https://www.youtube.com/watch?v=3Y4lgKnmWSk


실험에는 여자 옷을 입은 여자아이처럼 생긴 남자아이와 남자아이 옷을 입은 남자아이처럼 생긴 여자아이가 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은 어떤 아이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여자아이들에게 인형을 주고 남자아이를 위해 로봇을 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참가자들 대부분이 아이가 특정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여자아이들은 인형을 원하고 남자아이는 로봇을 원한다고 말이다.)는 것이다. 어른들 자신이 선택하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건네주더라도 말이다.


남자아이들은 공간 인식과 관련된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 그 결과로 공간 인식과 관련된 회로의 사용이 장려되어 해당 뇌의 회로가 발달한다. 그것 때문에 남자아이들의 실제로 공간 인식이 발달하는 결과가 야기되는 것이다.(6) 어린 시절 아이가 특정분야에서 본인이 우수하다고 느끼면 그 분야를 쉽게 좋아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은 당연히 더 많이 하게 되고, 더욱 잘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작은 차이였다 하더라도 성인이 되었을 때 그것은 큰 차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이 고정관념의 문제는 남자 여자 아이에게 모두 발생한다. 


남자아이들이 자라서 남성이 되면 감정 표현이 어려워진다.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기 어려워하고, 적절한 감정의 표출 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남성은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거나 전문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꺼린다. (7)


그리고 여자아이의 경우 자존심에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다. 여자아이들은 평균적으로 남자아이들에 비해 자존감이 낮은 경향을 보이며 자존감에 의해 문제를 이야기하는 비율 역시 높다. (8) 또한, 여자아이들은 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 14세 여자아이들 중 12%만이 매주 충분한 신체활동을 하고 있다. (9) (10)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15세 여자아이들 중 76%는 더 많은 신체활동을 하고 싶지만, 그들에게 적절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아서 포기했다는 점이다. 여자아이들이 참가하지 않은 다른 이유로는 스포츠가 "여성스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11) 역사적으로 스포츠는 남성성에 대한 문화적 관념에 강하게 얽매여 남성적인 보존으로 여겨져 왔다. (12) 이러한 "여성성"과 "남성성"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스포츠를 포기하는 것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아직 뇌과학적으로 입증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선천적 뇌 구조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13) 


그러나 우리는 그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여자아이들에게는 운동의 부족을, 남자아이들에게는 감정적 표현의 억제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고정관념들은 생물학적으로 발생한 당연한 차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사회적으로 만들고 있는 바꿀 수 있는 고정관념이다. 남성과 여성에게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이라는 이상한 자를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핀란드에서 높은 "성별에 따른 평등"을 가져올 있는 비결이었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어린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언제나 그 모든 대화들은 살아 있는 교육의 현장이다. 이제 앞으로 "남성스러움", "여성스러움"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국을 "성별에 따른 평등"한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작지만 큰 발걸음이다. 


출처

(1)   Marsh, A. A., & Ambady, N. (2007). The influence of the fear facial expression on prosocial responding. Cognition and Emotion, 21(2), 225-247.

(2)   Kersh, J., Casey, B. M., & Young, J. M. (2008). Research on spatial skills and block building in girls and boys. Contemporary perspectives on mathematics in early childhood education, 233-251.

(3)   Meet the neuroscientist shattering the myth of the gendered brain, 2019, theguardian.

(4)   Gneezy, U., Leonard, K. L., & List, J. A. (2009). Gender differences in competition: Evidence from a matrilineal and a patriarchal society. Econometrica, 77(5), 1637-1664.

(5)   Nicholas Carr, (2010) The Shallows: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

(6)   No more Boys and Girls: can our kids go gender free? , 2017, BBC documentary. 

(7)   Oliffe, J. L., & Phillips, M. J. (2008). Men, depression and masculinities: A review and recommendations. Journal of Men's Health, 5(3), 194-202.

(8)   Daniels, E., & Leaper, C. (2006). A longitudinal investigation of sport participation, peer acceptance, and self-esteem among adolescent girls and boys. Sex roles, 55(11-12), 875-880.

(9)   https://www.womeninsport.org/wp-content/uploads/2015/04/Changing-the-Game-for-Girls-Policy-Report.pdf

(10)  https://www.womeninsport.org/wp-content/uploads/2017/11/Girls-Active-statistics-1.pdf?x99836

(11)  Jog on - how running saved my life, 2018. Bella Mackie.

(12) Messner, M. A. (2003). Taking the field: Women, men, and sports (Vol. 4). U of Minnesota Press.

(13) Meet the neuroscientist shattering the myth of the gendered brain, 2019, the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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