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건 Feb 01. 2020

교환학생의 꽃

상피테스부르크 여행기#1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교환학생으로 살고 있다. 나의 신분을 알려주는 비자가 나를 핀란드에 있는 교환학생이라고 말해주고, 이 신분은 2월 23일에 끝난다고 한다. 이 신분의 최고의 장점 ,꽃은 무엇일까? 당연히 많은 것이 있지만 여행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나라가 가까이 붙어 있어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행의 부담이 적고, 국경 간 이동 역시 상대적으로 손쉽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예전에 사귄 친구들을 다시 만날 때이다. 영국과 독일에서 창순이 형, 터키에서 구프란, 그리고 그리스에서 마리아나를 만났다. 이전에도 좋은 친구였지만, 다시 만나면 더욱 반갑다. 그리고 현지인만 아는 현지 맛집 혹은 명소에 갈 수도 있다. 현지인과 같이 붙어 다니면서 관광객과 현지인을 구별하는 법 따위를 들으면 저절로 어깨는 으쓱해지면 준 현지인의 상태로 도시를 만날 수 있다.  

오늘은 러시아의 상페 테스 부르크에 마리아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공항을 향해 가고 있다.


오늘은 이동의 날이다. 새벽 6시 15분에 일어나, 집 앞 버스를 6시 45분쯤 타고, 오울루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타고 헬싱키로 날아간다. 헬싱키의 시내를 2시간쯤 둘러보다, 11시가량 헬싱키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것이다. 그럼 7시가량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온전히 이동에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뽑으라면 상위권을 앞 다퉈 쟁취할 것이고, 언제나 3순위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여행이라 함은 오늘과 같은 이동을 포함한다. 이동이 좋은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때문이다. 다른 날 하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집중을 해야 하고, 딴짓을 하고 싶은 나의 욕구를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여행의 첫날, 이동하는 날은 다르다. 물론 계획표에는 이동하는 동안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듣고 작성해 놓았다. 하지만 그는 부가적인 목표일 뿐이고, 주된 오늘의 목표는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하는 것이다. 아무리 긴 비행기든 버스든 시간에 맞춰 탑승하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나의 하루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평소 쓰고 싶었던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 무려 추가적인 일까지 달성하는 아주 알찬 하루가 되는 것이다.


아직 오울루 공항에 도착하기도 전인데, 지금 오늘의 이동에 첫 과제가 즉석에서 주어졌다. 기사가 내게 와서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당황하여 노트북을 덮고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영어는 못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찬찬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하고 들어 보니, 공항을 가는 버스라 존이 바뀌고, 존을 넘어갈 때는 일반 버스요금보다 비싼 금액을 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일반 금액만 지불한 상태였다.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버스카드를 충전하여 차액을 지불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첫 즉석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이렇게 즉석과제들만 해결하고 도착지에 도착하면 특별히 한 것이 없음에도 “오늘 하루 고생했다.” 하며 뿌듯함을 느끼고 잠에 들 수 있다. 얼마나 쉽고 확실한 행복인가?

내일은 아마 상피 테스 부르크에서 여행을 할 것이다. 내 여행은 대부분의 사람의 그것과 조금 다를 것이다. 여행은 혼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 도시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도,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도 혼자가 편하다. 내가 원하는 나의 리듬에 맞춰 여행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도시에 오랫동안 머문다. 보통 2~3일을 머무는 도시라면 최소한 그 2배는 있으려 한다. 더 많은 곳을 여행하기보다는 한 도시의 내음을 조금 더 만끽하길 좋아한다. 그리고 그 도시에 도착해서는 특별한 관광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평소 내 집에서 할 일을 그 도시 카페에 앉아하거나, 굳이 그게 아니라면 그저 걷는다. 정말 하염없이 걷는다. 비행기표와 첫날의 숙소 외에는 최대한 계획을 지양한다. 평소에 계획을 열심히 따라가는 만큼, 여행에서는 계획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에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열심히 따라간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가 생각이 난다. 첫째는 새로운 관점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기둥은 관점이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어야 내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고, 인생의 방향이 있어야 우선순위를 정해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투자할 수 있다. 관점을 가지는 방법은 경험이다. 그렇기에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은 모두 경험에서 나온다. 모든 사람에게는 시간적 경제적 제약이 존재하기에 모든 경험을 직접 할 수 없다. 그래서 간접경험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직접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만한 것은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여행을 가면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 건물의 양식부터 사용하는 언어, 사람들의 옷차림과 먹거리에 이르기까지 조금만 움직여도 다르다. 그렇게 깨달을 수 있다. 바로 옆 나라인 핀란드와 러시아가 얼마나 다른지, 핀란드 내에서 헬싱키와 오울루는 또 얼마나 다른지를 말이다.


둘째는 휴식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잘 못 쉬는 사람이다. 언제나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고, 집에서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덕분에 중고등학교, 대학교 괜찮은 성적과 학점을 얻었고, 대학에서도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했다. 좋은 일이다. 다만,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 언제부턴가 잠을 못 자는 후유증도 같이 생겼다. 열심히 관리 중이지만, 요즘도 가끔 잠에 들기 전까지 집에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하다 잠에 들려하면 글에 쓰고 싶은 내용이나 나중에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연구주제 등이 계속 떠올라 잠에 들지 못한다. 그 상태를 여러 번 경험하고 나면 잠에 드는 것 자체가 걱정거리가 되어 잠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여행을 가면 참 잘 쉬어진다. 여행을 가서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밤늦게 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느라 여행을 가서 더 피로해져서 돌아온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참 잘 쉬어진다. 내게 필요한 휴식은 주로 육체적 휴식보다는 정신적 휴식일 때가 많다. 피곤할 때 잠에 들고, 적절히 원할 때 일어나 시내를 구경하고, 시내를 걷거나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면 항상 긴장하던 뇌가 한숨을 크게 쉬는 것이 느껴진다. 걸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생각 혹은 몽상을 여유롭게 하다 보면 내가 하는 일의 방향성도 잡히고, 앞으로 지낼 시간의 계획이 제법 구체적으로 잡힌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여행을 좋아하고, 혼자 하는 걷기 여행을 더 좋아한다.

이번 상피 테스 부르크의 땅을 밟으면서는 대충 생각하고 싶다.


무언가 고민이 많고,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이 드는 분들이 있다면 어딘가 떠나기를 추천한다. 멀리 갈 필요는 없다. 한두 시간 버스를 타고 국내를 가도 좋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훌쩍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을 가도 좋다. 그렇게 어디를 도착해 주말 하루라도 쭉 걸어보자. 쭉 걸으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도 구경하고, 생각도 정리해보자.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도 있다.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 여행을 다녀왔다며 쿨하게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정도는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시작하는 핀란드 관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