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빅, 알람이 울린다.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모르겠다. 걱정되는 미래와 답답한 현실에 묻혀 이런저런 생각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벌써 일어날 시간이다. 오늘도 공부해야 할 양은 채워야 한다. 기지개를 켜겠다고 팔을 뻗으니 책상에 팔이 닿는다. 벌써 4년을 살고 있는 고시원이지만 정말 적응이 안 된다. 여전히 좁고, 답답하다.
4년 전, 군대를 전역하며 공무원 시험을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군번이 잘 풀려 상병이 꺾이는 시점부터 딱히 할게 없어진 나는 매번 나중에 뭘 먹고 살지 고민했다. 멋진 대학 간판, 스펙, 스토리도 없다. 대신 미리부터 공무원 준비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은 없지만 일찍 시작하니 시간이 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으니 이 정도 시험, 어렵지 않게 붙을 것이라 생각했다. 군대에 있던 개인 정비 시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꿈이 있었고, 공부도 나름 재미있었다. 공부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전역하자마자 시험 일자가 있었다. 경험 삼아 봐야겠다는 시험에서 1차를 붙어버렸다. 아쉽게도 2차에서 떨어졌지만 조금만 공부를 하면 붙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손 앞에 잡히는 것만 같았다.
공부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다짐했다.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소위 잠수를 탔다. 짧으면 다음번, 길어봐야 2년이면 합격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시험을 합격한 후 멋지게 친구들에게 짠 나타나고 싶었다. 자발적으로 다이빙을 시원하게 한 것이다. 사실 잠수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연락을 하던 친구가 있었어야 잠수라고 하지, 군대를 가니 대학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군대에서도 연락을 하던 친구가 없었고 군대를 전역하고 휴학을 했으니, 연락할 친구들은 없다.
아직 가게를 운영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용돈을 받아가며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는 집에 돌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전화를 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부모님은 힘들게 아들놈 바라지 하겠다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가게를 여신다. 나는 대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한 휴학 상태. 벌써 20학번이 대학에 들어왔는데 12학번인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노트가 쌓여갈수록 내 어깨의 짐들은 무거워진다. 처연하다.
다음 주 토요일, 3월 28일이 시험이다. 끊임없는 물속으로 더 깊이, 깊이 내려가고 있는 기분이다. 분명히 사람은 물에 빠지면 뜬다고 했는데, 왜 나는 위로 올라가지 않는가. 처음 호기롭게 다이빙을 할 때는 분명히 보였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과 시간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몇 번 눈 앞에서 찰나의 차이로 파도를 맞고 말았다. 파도를 맞고 허우적거리다 보니 방향을 잃고 더 깊은 물속으로 빠졌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니 벌써 칠흑 같은 바닷속이다. 이제 어디가 위인지, 어디로 가면 빛을 볼 수 있는지 방향도 잘 모르겠다. 힘을 빼면 몸은 뜬다고 해서 힘을 빼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뜨지 않는다. 점점 더 가라앉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모의고사 시험을 볼 때마다 점수는 오히려 점점 떨어진다. 처음 시험을 본 이후 참 꾸준하게도 매번 점수는 떨어지고 있다. 이런 것만 꾸준하다. 대체 어떻게 공부를 더 하는데 매년 시험 점수가 더 떨어지는 것일까? 책을 하도 많이 봐서 분명히 다 아는 내용 같은데, 왜 시험을 보면 답을 맞히지 못하는 걸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모르겠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상하좌우 분간이 안 된다. 그저 밖으로 나가 해를 보며 시원하게 숨을 쉬고 싶다. 그냥 해를 보고 시원하게 딱 한 숨만 들이시고 싶다. 그 한숨이, 누군가에게 너무나 당연한 숨 한 번이 내게는 참 어렵다.
이런 고민을 할 시간에 책을 한 줄이라도 더 봐야 할 텐데, 지금도 내 경쟁자들은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나는 왜 공부조차 하지 않는가. 공부는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까짓 그 시험 안되면 복학해서 공부하면 된다는 아버지의 이야기. 참으로 감사한 아버지다. 그러나 인생의 전부도 아닌, 이까짓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내가, 아니, 시험 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삐삐삐빅, 알람이 울린다. 그 와중에 시계가 다시 점심을 먹을 시간을 가리킨다. 1시간이 오직 내게 허용된 점심시간이다. 지금 점심을 먹지 않으면 저녁까지 기다려야 한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밥을 억지로 먹어야 공부를 할 수 있다. 무겁고 짐스러운 몸뚱이를 끌고 식당을 향해 간다. 여전히 빛은 보이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