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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May 05. 2020

왜 그 맛있는 고기를 안 먹어?

춘천에서 자랐던 나는 살면서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기억하는 순간부터 아파트에 살았고, 자연은 그냥 주변에 존재하는 것일 뿐 특별히 교감하거나 감사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생활을 했고, 3~4년 전부터 서울에서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은 제법 특별한 일이 되었다. 기분이 좋은 날도 뿌연 하늘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특히 기관지가 예민하기에 미세먼지가 많은 날 밖에 나가면 금세 목이 아픈 것이 느껴졌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깨끗한 공기를 잃고 나서 환경과 자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핀란드에 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사함은 자연이다. 밖에 나갈 때마다 나를 맞이해 주는 상쾌한 공기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나 혼자만의 감상이 아니고, 많은 핀란드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을 당연하게 여기며 수동적으로 누리는데서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보존하는 노력을 했다. 당연히 지속가능 한 개발은 교육과 사회 모두에서 큰 화두다.      


핀란드에서 생활을 하면서 베지테리언이나 비건인 친구들이 주변에 정말 많았다. 물론 한국에도 채식을 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대부분 알레르기 혹은 건강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특별한 영감을 주거나 함께 참여하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핀란드에서는 어느 모임에 가도 채식을 하는 친구가 한 명씩은 있었다. 룸메이트가 채식을 하는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마침 교육학 수업시간에는 채식과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련한 토론까지 할 기회가 있었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했지만, 주된 이유는 역시 지속가능성의 관점이었다. 한국의 미세먼지와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의 대비를 통해, 자연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극적으로 체험하고 있을 때였고,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채식을 실천하고 있었다. 핀란드에서는 특히 개인이 집단을 이룬다는 사고방식이 강하다. 집단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 개인이 함께 모여 집단을 만든다. 그렇기에 한 개인의 행동, 윤리적, 도의적 책임의식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개인의 행동이 쌓여서, 그리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한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고, 아름다운 자연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채식을 시작하게 되어 1년째 채식을 하고 있다.      


채식을 한다고 하면 왜 그 맛있는 고기를 안 먹어?라는 질문의 맹공을 받는다. 개인을 쉽게 놔두지 않는다. 반드시 모두를 설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채식을 하려는 이유는 주로 에너지 측면의 이유다.      


채식을 하는 이유를 가장 잘 소개해주는 다큐멘터리는 <cowspiracy>라는 다큐멘터리다. Netflix, Amazon을 통해서 관람할 수 있고, 해당 웹사이트에서 유료로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   https://www.cowspiracy.com/

요즘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지속 가능성, sustinaibility을 생각한다. 나 역시 현재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속가능성이다. 당장 대한민국에서는 미세먼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구가 고생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 후세에게 지금 보다는 괜찮은 지구를 물려주고 싶다.     


육식을 줄이는 것은 환경에 좋다. 이것은 크게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을 생각하면 된다. 더 많은 과정을 거칠수록 에너지는 손실된다. 한 번의 단계를 거칠 때마다 그만큼의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이다. 식물을 기르고, 그 식물을 다시 동물에게 먹인 다음, 동물을 다시 가공하여 먹는 과정은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그 과정 속에서 손실된다.     


더 쉽게 설명해보자. <총, 균, 쇠>의 사례이다. 사자가 가축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식성 때문이다. 같은 450kg의 고기를 얻기 위해서 소는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4,500kg의 옥수수를 먹는다. 그러나 사자는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소 10마리를 먹는다. 즉 45,000kg의 옥수수가 필요하다. 똑같이 성장하기 위해서 채식을 할 때에 비해 육식을 하면 10배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숫자로 보면 조금 더 와 닿는다. 그 구체적인 숫자가 아래에 나와 있다.

     

1개의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서는 660 갤론, 2500l의 물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가축을 기르기 위해서 사용하는 물의 양은 전체 주거를 위해 사용하는 물의 양의 11배에 해당한다.
2,500 마리의 소가 만드는 쓰레기는 411,000명의 사람이 만드는 쓰레기와 양이 같다.
1마리의 소가 165명의 쓰레기를 만든다. 
육식을 하는 사람이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땅의 넓이는 비건이 필요로 하는 땅의 18배에 해당한다. 

    

어떤 선택을 할 때에 있어 항상 그 선택으로 오는 장점도 생각해야 하지만, 그 선택에 따른 비용도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 만약 채식을 하는 것에 있어 내가 지구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정도에 비해 그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면 아마 쉽게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육식을 줄이는 것의 공헌도가 굉장히 높은 것을 떠나 핀란드에서 채식을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사실 채식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너무 쉽다. 그냥 요리를 할 때에는 대체식품, 콩, 버섯을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밖에 나가 음식을 먹을 때는 어디에서나 준비되어 있는 채식메뉴를 고르면 된다.     


학식에는 언제나 채식메뉴가 있다. 그냥 고기 대신 채식 메뉴를 담으면 그만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세상에 공헌할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채식은 그 어떤 것보다 쉬웠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 학교에서는 언제나 베지테리언 메뉴를 먹는다고 이야기했을 때, 모든 친구들은 너무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응원해 줬다. 룸메이트는 내가 채식을 시작한다고 한 다음부터 매일 같이 오늘은 어땠냐고 물었고, 점점 익숙해질 것이라고 파이팅을 해주었었다.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그렇게 시작한 채식이고, 이미 습관화되어 있는 식습관이라 한국에 와서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채식은 아직 주류가 아니다. 그렇기에 핀란드에서 느꼈던 소속감이나 유대감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한국도 채식에 대한 요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 변화에 조금이나마 공헌하고 싶다. 채식을 더 쉬운 선택으로 만들고 싶다. 내가 처음 채식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받았던 지지와 소속감을 다른 사람에게도 돌려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그 맛있는 고기를 먹지 않고, 유난스럽게 글을 쓰는 이유다. 



아래 원고를 조금씩 수정하여 책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inlandex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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