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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Apr 13. 2020

출간 계약서를 쓰다

출간 계약서를 두고 1주일 동안 고민했다. 180권을 팔아야 하는 조건이었다.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경우 내가 일정량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경제적 부담도 크지만, 만약 아무도 사지 않는다면 이 책을 만드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브런치 북을 만들고 특별히 사람들이 브런치 북을 읽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며칠 전부터 브런치 북에 조회수가 조금씩 나왔고, 며칠 사이 조회수가 7000이 나왔다. 그 자체로 높은 조회수는 아니지만,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이 다시 읽히고, 글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이 여러 개의 글을 읽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전체 독자는 280명, 그중 완독자가 2명이다. 2명이나 내 브런치 북을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이 참 기쁘다. 우습게도 그 2명이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해볼 용기를 주었다. 아직 꿰어지지도 않은 구슬들을 읽어준 사람도 있고, 가끔가다 브런치에서 조회수도 올려준다면, 내 책을 읽어줄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


핀란드에서의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속에서 한번 소화해 글로 다시 뽑아내는 과정은 깊은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처음으로 "공부 잘하는"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던진, 나 그 자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보내는 매일은 나는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다시 물어보게 도왔다. 워낙 크게 가치관이 흔들려서 일까, 나는 심리적으로 제법 힘들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단단한 성을 조금씩 조금씩 허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허물어지는 성은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렇게 성을 허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예민하게 곤두세운 신경과 쫑긋 세운 귀 덕분에 더 많은 것을 흡수했다. 경험들을 소화해서 글로 내뱉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을 지어야만 했다.


1달 여가 넘는 시간 동안 원고를 다시 수정할 것이다. 다시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고민하던, 관찰했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구멍이 난 성을 일부는 더 부수고 보완하고 다시 짓는 과정이 될 것이다.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쓰는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독자들의 성에 뻥뻥 구멍을 내는 책이 되고 싶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편하게 읽는 책이 아닌, 어떨 때는 불편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는 책이 되고 싶다. 본인을 다시 만나는데 마중물이 되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무언가 시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편집자님께서 예쁘게 편집도 해준다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네. 계약서를 썼습니다. 좋은 책으로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https://brunch.co.kr/brunchbook/finlandex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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