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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Aug 09. 2020

인종차별, 당사자의 목소리

방송인 선생님 오취리 (3572)가 논란에 휩싸였다. 차별 논란에 비판을 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가나 출신의 방송인 샘 오취리가 결국 사과했다. 샘 오취리는 7일 자신의 sns에 "내가 올린 사진과 글 때문에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 죄송하다"라고 밝혔다.

출처: 연합뉴스

사건은 의정부고 학생들의 사진으로 시작되었다. 매년 독특한 콘셉트로 졸업사진을 찍어 유명한 의정부고등학교다. 학교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졸업사진만큼은 전 세계가 다 아는 학교다. 그중 한 학생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가나의 장례 문화를 흉내 낸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한 것에 샘 오취리는 지난 6일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려 "흑인으로서 매우 불쾌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때 사용한 용어들 중 'educate'이나 'ignorace'등의 단어에 네티즌이 분노를 했다. 학생들의 사진을 동의도 없이 자신의 sns에 올렸고, 학생들을 비하하였으며, 한국을 무지한 국가 등으로 몰았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분노의 주된 이유였다. 추가로 해당 사진을 당사자인 벤자민 아이두가 정작 자신들을 패러디해주어 고맙다고 글을 올려 더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1. 학생들이 순수한 의도로 패러디했고, 그중 비하의 의도는 없었던 것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아직 어린 학생들이고, '관짝소년단'이 멋지다고 생각해서, 쿨하다고 생각해서 따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얼굴에 검은색 칠을 하는 것은 인종차별적인 행위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 금기시되는 일이다. 충분히 그에 대해서 샘 오취리 입장에서는 불쾌했을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 모르고 그런 사진을 올리는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해당 학교와 한국 국민 전체에서 그에 대해서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던 점이 더 중요하다. 아이들이 잘 몰랐다면, 학교와 주변에서 그것은 굉장히 공격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다시는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알려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해외에서 아시안을 비하하는 제스처를 패러디랍시고 무려 단체사진으로 찍어놓고, 그 단체사진이 인기를 얻어 sns에 떠돌아다니길래 너무 기분이 나빠 한마디 했다고 가정하자. 그 반응으로


학생들은 전혀 비하의 의도가 없었다. 그냥 패러디일 뿐이다.

라고 국가적으로 반응이 왔다고 생각하면, 과연 우리는 어떤 기분을 느낄까?


나는 탄자니아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거기서 가르쳤던 일부 학생들이 우리에게 눈을 찢는 제스처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기분이 아주 나빴다. 그러나 평상시에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고려한다면 우리를 비하하려는 의도로 그런 제스처를 취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학생들은 우리를 정말 좋아해 주었고, 수업에도 너무 열심히 참여했고, 봉사활동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는 눈물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마도 눈을 찢는 제스처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흔한 중고등학생들이 그러하듯 그냥 '웃긴' 제스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 행위를 할 때 아무런 비하의 의도 없이 순수하게 취한 행위라고 할지라도, 통상적으로 비하의 의도로 사용되는 행위다. 최소한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통역사를 통하여 이 제스처에 대한 의사전달을 분명히 했다. 적어도 실수로 동양인을 비하하는 행위를 하지는 않도록 말이다.


핀란드에서 한 번은 친구가 내 앞에서 '칭칭 챙챙 총총'을 시전 한 적이 있다. 상당히 유쾌하고 재미있는 친구인데, 그 소리가 그냥 재미있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심지어 그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고 당황스럽고, 정확히 들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흐르고, 머릿속으로 이 것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를 겨우 정리한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네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냐고 물었다. 눈치를 보니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동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알기 쉽게 'N-word'와 비슷한 의미일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먼저 '사과'했다. 그리고 자신은 전혀 몰랐다며 자신의 무지를 알렸다. 앞으로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그 친구는 그 이후로 차별적인 언행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고, 나는 지금도 그 친구와 잘 지낸다.


그러나 만약 그 친구가 '너도 예전에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어!'라고 나를 공격했다면, 혹은 '그냥 장난인데 뭘 그러냐, 나는 전혀 비하의 의도가 없었어'라고 대답했다면 나는 과연 그 친구와 계속 친구로 남아있었을 수 있었을까?


잘 몰라서 (무지해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에게 굉장히 공격적인 언행을 했다면, 먼저 사과부터 하고 그다음에 자신이 잘 몰랐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잘 몰라서 실수를 한 학생들을 본다면, 학생들이 더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교가 할 일이 아닐까?


2. 한국에서 사는 다른 인종


그리고 우리는 벤자민 아이두와 샘 오취리의 입장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벤자민 아이두는 오랫동안 가나에서 생활을 한 사람이다. 본인의 인종을 특별히 인지해 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이 다 자기와 같은 인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샘 오취리는 오랫동안, 그것도 인종차별에 대해서 굉장히 무심한 한국에서 생활을 해왔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검은색 피부 = 차별, 비하의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하게 되면 자신의 인종을 잊고 살게 되지만, 외국에 나가면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실제로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백인이 아닌 외국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많은 차별을 당하면서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인종차별 적인 이슈에 그들은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이다.


3. 한국사회, 그리고 반성


일전에 한 방송에서 샘 오취리가 스페인의 '못생긴 얼굴'을 겨루는 대회가 있다는 맥락에서 '못생긴 얼굴'을 묘사하는 상황에서 '눈 찢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더 큰 이슈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샘 오취리 역시 동양인에 대해 예민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아시안이 충분히 불쾌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마치 토론에서 '발화를 반박할 수없을 때는 발화자를 공격하라'라는 격언처럼 보인다. 토론을 이기기 위한 참으로 치사한 방법 중 하나다.


샘 오취리가 과거에 잘못을 한 것과는 별개로, 샘 오취리가 지적한 것은 분명히 타당한 주장이다. 분명히 한국사회는 인종문제에 대해서 무지했다. 분명히 반성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았고, 오히려 발화자를 공격해 그 논지를 흐리게 만들었다. 오히려 샘 오취리가 자신의 SNS에 사과글을 올렸다. 심지어 아직도 샘 오취리의 다른 게시글까지 가서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동양인의 비하 제스처에는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분노하는 우리가 왜 흑인을 비하하는 제스처 (적어도 전 세계에서 그렇게 받아들여지는)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가. 왜 한국 사회를 다시 돌아보려는 노력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부당하다고 느꼈던 일이 있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은 그 부당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해외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 한국에 대해 '한국은 너무 인종차별 심하지 않아?'라는 말을 가끔 듣곤 했다. 그때 나는 자신 있게 '아니야!'라고 외치지 못했다. 이제는 속 마음으로조차 그 질문에 '아니야'라고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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