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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Aug 07. 2020

나도 작가다

홀로 골방에 앉아 고뇌에 찬 표정으로 빈 흰색 화면의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게 바라본다. 그리고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들고 뮤즈가 찾아와 순식간에 수 페이지의 글을 써 내려간다.  


이것이 흔히 작가로서 떠오르는 이미지다.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범접할 수 없는 누군가. 이런 이미지 덕분에 우리는 작가와 멀어지고, 작가는 정말로 선택받은 사람들만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작가란 무엇일까? 


브런치에서는 일종의 심사를 통과하면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고, 그 통과한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준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큰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는 그 '작가'라는 이름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용어로써 책을 하나라도 쓴 사람을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조금 더 공식적인 정의를 살펴보자. 


작가: 
우리는 흔히 책을 쓴 사람, 혹은 텍스트를 쓴 사람을 말한다. 즉 작품을 쓴 주체를 말하며 예술 전반에 걸쳐서 예술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을 뜻한다. (중략) 즉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아 하나의 복잡한 작품의 세계를, 예술의 질서를 창출해내는 존재가 바로 작가인 것이다. - 문학비평용어사전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 <저자란 무엇인가 (Qu'est-ce qu'un auteur?)(1969)> 에서 저자(작가)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지적 생산물의 생산자가 아니라, 한 문화 안에서 중요한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종합하자면, 통념적으로 작가란 무언가를 쓴 사람을 말하며 어떠한 문화권 안에서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작가의 정의 중 "쓴 사람"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자. 이는 과거형으로 정의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를 한 번이라도 쓴 사람, 책을 한 번이라도 쓴 사람은 평생 달콤한 작가라는 왕관을 쓸 수 있는 것인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한번 쓴 글이 지금까지도 남아서 현재의 문화권에서 담론을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작가'라는 호칭을 계속 붙여줄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 글을 썼지만, 지금은 잊히고 더 이상 전혀 담론을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기는 서로 민망하다. 그렇기에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을 작가로서 정의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돌아가셨기에 물리적으로 글을 쓸 수 없지만, 박완서 작가와 박경리 작가의 글들은 아직도 많이 읽히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담론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전히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정말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인가? 필자같이 책을 만들었어도 담론을 만들지 못하는 범인들은 평생 작가가 될 수 없는 것인가?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껏 글을 썼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글을 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쓰는 사람이 되어 끊임없이 글을 써내어가면 그 수많은 글 중 몇 개는 사회적 담론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언제든 사회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그들을 우리는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같은 범인들은 글을 엉덩이로 쓰는 것이다. 뮤즈는 우리에게 잘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뮤즈가 찾아올 때까지 서재에서 글을 쓰는 것이다. 



필자의 프로필이다. 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을 출판하고는 바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출간 작가'로서 정의했다. '나는 작가다'라고 세상에 외치고 있다. 이는 새삼스럽게 이게 바로 나올시다,라고 턱 쳐들고 전면으로 나서 잘난 척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일종의 선언이자 공표다. 앞으로 쓰는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글을 써낼 것이라는 스스로와의 약속이다. 


그래서 매일 쓴다. 하루에 하나씩 쓰고 있다. 제임스 클리어는 그의 저서 <아주 작은 습관의 힘, Atomic Habits(2019)>에서 습관과 정체성에 관계에 대해서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습관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과 중심의 습관을 형성한다. 그러나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체성 중심의 습관을 세워야 한다. 이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데서 시작한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P 47

우리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 그와 관련된 습관을 시작한다. 하지막 그 습관을 꾸준히 해나가는 건 오직 그것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될 때뿐이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P 50


글 쓰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보자. 정체성은 습관이 지속할 수 있는 연료 역할을 한다. 나아가 습관은 다시 정체성을 만들어나간다. 


행위를 반복해나갈수록 그 행위와 연관된 정체성은 강화된다. (...) 어떤 정체성에 대한 증거가 쌓여갈수록 그 정체성은 더욱 강화된다. (...) 한 번의 특별한 경험은 그 영향력이 서서히 사라지지만, 습관은 시간과 함께 그 영향력이 더욱 강화된다. 즉, 습관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큰 증거가 되는 것이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P 51~55


정체성은 일종의 믿음이다. 믿음에는 증거가 필요하다. 증거가 쌓이고 쌓여 하나의 공고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큰 이벤트보다는 작은 습관이 더 중요하다. 출간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매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매일 쓸 것이고,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기에 필자는 스스로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나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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