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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Mar 15. 2021

1년 반만에 변리사가 된 공대생

공대생의 법학 공부

시작하며  

  

공대를 졸업한 이후의 진로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에게 바로 떠오르는 것은 반도체 등의 제조 회사에서 3교대로 근무하는 직원이나, 기업의 연구원과 같이 전통적인 엔지니어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공대 졸업생들이 진출해있는 분야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정말 다양하다. 나도 전통적인 엔지니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는 ‘지식재산권’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변리사이다. 나는 대학교 재학 중 변리사시험에 합격하여 졸업을 앞두고 있고, 지식재산 전문가이자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지식재산 논문 투고, 출판 등)을 하고 있다. 변리사 시험 준비 및 그 이후 지식재산분야에서의 활동을 통해 느낀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변리사가 무엇인지, 변리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법 공부를 하면서 느낀 공학과 법학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변리사는 어떤 직업인가?  


  이공계 진학 이후의 진로를 탐색하다 보면, ‘변리사’는 빠짐없이 언급되는 직업 중 하나이다. 특허에 관련된 일을 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변리사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간략하게 알아보자. 변리사는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을 다루는 일을 한다. 재산이라 하면 흔히 땅과 같은 부동산이나, 자동차와 같은 동산을 생각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재산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는 ‘지식’ 또한 땅과 자동차 못지않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특허, 상표, 디자인같이 지식이 발현되어 가치를 지닌 것들을 새로운 종류의 재산인 ‘지식재산’으로 규정한다.


현대 정보화 시대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미국에 있는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할 수도 있고, 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의 이런 특성 때문에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타인의 모방이나 탈취에 취약하다.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이러한 제3자의 불법적인 탈취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발명자를 보호하고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지켜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보안 업체 직원이나 경찰관들이 백화점의 값비싼 물건들을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변리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업무 특성상 발명자와 접하는 경우가 많고, 발명의 기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므로 변리사는 이공계열, 특히 공대생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변리사는 어떻게 발명을 보호해주는 것일까? 발명이란 추상적인 개념으로 여기에 ‘특허권’이라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발명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특정 발명에 대한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당 발명의 특이 사항을 명료한 언어로 문서화하는 작업이 동반되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발명의 상세한 구성요소를 언어로 표현하여 특허청에 등록 받는 절차가 필요하며, 이를 ‘특허 출원’이라고 한다. 변리사가 하는 대표적인 업무가 바로 이런 특허출원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등록 받은 특허를 침해로부터 보호하거나, 반대로 관련 분야 사업 진출을 위해 하자가 있는 타인의 특허권을 무효 시키는 등 다양한 권리 행사를 돕는다. 또한 특허뿐만이 아닌 상표나 디자인에 대해서도 유사한 업무를 수행한다.

공대생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진로 중에 변리사가 인기 있는 이유는 전문가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이 보장되며 본인이 원한다면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경우 보통 서울이 아닌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문직으로서 높은 연봉을 보장받고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큰 메리트로 작용하고 있다.


  변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변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변리사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변리사 시험은 행정고시 기술직과 함께 주로 이공계열 학생들이 응시하는 시험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리사 시험은 이공계 지식을 확인하기 위한 ‘자연과학’과, ‘민법’, ‘특허법’, ‘상표법’ 등 법 과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이공계 소양과 인문학적 소양 모두를 요구하기 때문에 시험 합격이 까다로운 편이다.


변리사를 선택한 계기 – 수학, 과학을 좋아하지만, 평생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공대 진학을 준비했던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에 가서 어떤 전공을 할까’보다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무엇을 할까’

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연구원이 되거나 회사에 취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던 것도 일찌감치 고등학생 때였다. 나는 수학, 물리 성적이 좋아 공대 진학을 선택했지만, 수학 공부를 할 때보다 법학, 철학과 같은 인문학적 독서를 할 때가 더 재밌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공대를 졸업하더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원했고, 변리사는 나의 이런 취향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직업이었다. 변리사와 같은 지식재산 분야의 법조인은 내가 전공으로 공부할 이공계 지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고 발명자의 진정한 권리를 보호해주는 등 사람과 직접 만나면서 하는 일이라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



  공대 진학을 희망하거나 공대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 중에 적지 않은 수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수학, 물리, 공학 공부가 재밌고 적성에도 잘 맞지만, 직업으로서 평생을 연구하며 살고 싶진 않다’거나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종류의 고민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공대 졸업생 모두가 연구를 하거나 회사에 취업하는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처럼 법조계에 진출한다거나, 혹은 공직에 진출하거나 창업을 하는 등 공대 전공을 살리면서 개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가 있다. 공대는 이래서 참 매력적인 전공이다. 원하는 대로 나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는 전공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다


  그렇게 변리사와 같은 지식재산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꿈을 꾸었던 나는 2019년도에 23살의 나이로 변리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최연소 합격자와 같은 23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변리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나는 어떻게 빠르게 진로를 결정했을까. 적성과 흥미는 시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지금 내가 세운 계획이 미래에 어떻게 변경될지는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보단, 무엇이든 먼저 직접 해보고 부딪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의무소방으로 군 복무를 하던 22살부터 변리사 공부

를 시작하였다.


  처음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을 때는 ‘수능 공부를 치열하게 해서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을 공부해야 변리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것 아닌가?’와 같이 합격에 대한 두려움에 시작을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은 직접 경험하면서 극복하고자 하였고, 군 복무 중 하루에 짬나는 2-3시간을 활용하여 시험 공부를 시작하였다. 막연한 두려움은 어느새 지워지고 태어나서 처음 접해보는 법학 공부에 금세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2019년, 전역과 동시에 변리사 시험 최종 합격까지 성공하자는 목표를 세웠고 하루에 주어진 티끌 같은 시간을 모아 이런 거창한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냈다.


저 두꺼운 법전을 다 외워야 한다니 – 공대생의 법 공부


  ‘고시공부는 머리싸움이 아니라 엉덩이 싸움’


이라는 말이 있다.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민사소송법, 민법, 특허법, 상표법, 디자인보호법 등 수많은 법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특히, 객관식인 1차 시험을 통과한 후 치르는 2차 시험에서는 법 과목의 모든 내용을 전부 외워 직접 서술해야 한다. 변리사 시험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 법전을 펼쳤을 때, 난생 처음 접해보는 어려운 법학 용어들과 더불어 엄청난 분량에 압도당했던 서늘한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모든 분량을 다 외워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나는 지금껏 수학 과학 공부만 해왔던 전형적인 공대생 아니던가. 암기는 질색해서 이과에 진학했던 내가 이 두꺼운 책들을 모두 암기해야 한다니. 정말 최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법 공부를 해보니 무조건 암기가 답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학 공부와 같이 해당 주제를 관통하는 몇 가지의 핵심적인 개념을 숙지하고 있다면, 이를 적절히 조합하여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오랜 시간 수학 과학 공부를 통해 다져진 논리적인 사고 흐름이 법학 공부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법학에서 주어진 문제 상황을 해석하고, 판례를 적용하며 정답을 내는 과정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공식을 암기하고, 상황에 적용하는 연습을 해야 하듯이, 법학에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암기하고 사례별로 적용해나가는 연습을 했더니 두꺼운 책 전부를 암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학적 사고를 통해 법학에 접근해보니, 정작 암기해야 하는 내용이 처음 생각했던 만큼 많지는 않았던 것이다. 비록 고시 공부는 머리싸움이 아닌 엉덩이 싸움이지만 머리를 써서 공부 시간을 최적화하였고, 평균 수험기간이 3년인 변리사 시험에 1년 6개월 만에 최종합격을 할 수 있었다. 




<공대에 가고 싶어졌습니다.>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 책을 계약했습니다. 훨씬 더 다듬어지고, 편집되고 중간 중간 중요한 팁들도 많이 들어가 훨씬 보기 좋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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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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