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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Dec 11. 2021

최선을 다하는 게 무조건 최선일까?

최선을 다하자.

이건 무려 우리 집 가훈이었다. 따로 공식적으로 정한 가훈은 아니었지만, 왜 그런 것 있지 않는가, 초등학생 때 축제로 집에 가훈을 써오라는 숙제. 그때 부모님께 물어봤었다. 따로 부모님도 가훈이라는 것을 특별히 정해놓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초등학생 아이가 물어보니 뭐라도 만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때 말씀해 주셨던 것이 "최선을 다하자."였다. 그리고 우리 초등학교는 가훈을 제법 좋아하는 학교였던 것 같다. 매년 학년이 바뀔 때 3월에 매번 가훈을 쓰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번 내 머릿속에 입력이 된 가훈 "최선을 다하자"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항상 별생각 없이 적어서 내곤 했다. 이 것이 중학교 때까지 반복이 되었던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이 "최선을 다하자"는 나의 뼛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무의식 속에 깊이 박힌 한마디가 되었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 부모님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사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직장을 다니면서 밤에 박사학위를 밟으셨다. 어렸을 때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가끔 아버지가 코피가 났던 기억이 난다.(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두신 후 무려 나이 40이 되어서 박사과정을 시작하셨다. 어머니의 지도교수가 어머니보다 나이가 어리셨다고 들었다. 두 분 다 나름대로의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지금까지 살아오셨고, 현재 두 분 모두 교수님이 되셔 행복하게 살아가고 계신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존경한다. 그런 부모님을 보며 자라왔고, 무려 가훈까지 "최선을 다하자"라고 생각하며 자라 왔으니, 당연히 최선을 다하면서 자라왔다. 중학교 때부터 최선을 다했다. 승부욕도 마침 강한 편이었고, 내가 열심히 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원하던 대학에 왔다. 당연히 좋았다. 


조금씩 최선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복학하고 나서였다. 그때 당시의 누구나 처럼 군대 가기 전에는 대학에서 신나게 놀았다. 공부라는 것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노는 게 더 쿨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놀았다. 그리고 복학을 했다. 


실컷 놀고, 군대에서 생각도 많이 하고 나니 다시 한번 공부라는 것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공부가 쿨하지 않을 이유는 없더라. 공부도 잘하면 멋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뭘 했을까? 


당연히 다시 최선을 다했다. 내가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듯이. 그러나 이때부터 조금씩 나의 "최선"이 달라졌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내가 최선을 다하면 즐거웠다. 할 때 최선을 다해서 빡 하고, 놀 때 다시 빡 놀았다. 재미있고 행복했다. 복학하고 최선을 다해서 빡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무려 공부를 대학에 오고 4년을 놓았다. 공부에 방해되는 많은 습관들을 익히고, 공부에 도움 되는 버릇은 잊기 충분한 시간이다. 최선을 다해 공부하기라는 것의 효율이 분명히 예전보다는 조금 떨어졌다. 그렇다면 또 무엇을 선택했을까? 


당장에 효율을 올릴 수는 없으니 내가 처음으로 택한 것은 시간을 늘리는 것이었다. 효율은 올라가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공부하는 시간은 내가 지금 당장 늘릴 수 있었다. 그때 매일 아침 8시쯤 도서관에 가서 밤 11시까지 매일 공부했다. 당연히 중간중간 수업도 들었고, 밥도 먹었으며 학교에 있는 헬스장도 갔다. 그러나  주말 오전에 하는 대외활동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밥 먹고 자고 헬스장 가는 시간 외에는 쉬는 시간이 아예 없었다. 그때부터 불면증이 조금씩 생겼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가 뜨거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또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결과가 안 좋으면 대체 어떻게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쯤이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김영하 작가가 알쓸신잡이라는 프로에 나와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큰일 난다."라는 말을 했다. 

당시에는 이게 뭔 교양 있고 참신한 X 소리인가... 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당시에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다. 돈을 너무 많이 버셨거나 명예가 너무 넘쳐서 좀 질리시나? 싶기도 했다. 나는 평생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는데 그러면 큰일이 난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당시 복학하고 불면이 조금씩 있을 때는 불면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어쨌든 그래도 아주 높은 성적을 받아 냈다. 복학하고 두 학기 모두 거의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점에 근사한 점수를 받았다. 당연히 좋았다. 


그러나 이 불면은 그 이후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갑자기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머신러닝을 공부할 때도 내 곁에 있었으며, 반드시 이번 학기에 졸업하겠다며 21학점을 들을 때도 나와 함께했고, 뜬금없이 1주일 만에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생각을 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나의 최선은, 나의 100%도 아니고 110%쯤 되었던 것 같다. 일시적으로는 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할 수 없는 정도의 수준으로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달려왔던 것 같다. 거의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일 - 내가 정의하기에 생산성 있는 일-을 하고 휴식 -내가 정의하기에 생산성이 있지 않은 일 -을 최소화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잠도 못 잤고, 이런저런 몸도 조금씩 아팠다. 그때마다 나는 이것만, 내 눈앞에 있는 일에만 일단 최선을 다해서 바짝 하고 이게 끝나면 좀 쉬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작년에는 무려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병원에서 계절학기를 들으면서 책을 퇴고했고, 그 이후에는 직장인으로서 일을 하고 퇴근하고 6시부터 밤에 다른 연구를 해서 논문을 썼다. 그리고 이번 학기에는 대학원에 들어가서 중간고사 때만 버티자고 했고, 중간고사가 끝나니 나의 두 번째 책 퇴고에 필요한 일이 있었으며, 기말고사가 있었고, 다시 마지막으로 책에 최종 교정을 보아야 했다. 



어제는 잠을 못 드는 것이 두려웠는지 아예 잠을 청하지도 않았고, "내가 정의하기에 생산성이 있지 않을 일"을 무려 새벽 6시까지 하며 괴로워했고, 2시간 자고 오늘 토요일 오전에 있는 랩 미팅에서 성공적으로 발표를 하고 지금은 집에 와 다음 주 월요일까지 마감인 팀플 발표를 준비(해야 하는데 사실은 글을 쓰고 있다.)하고 있다. 사실 누가 이렇게 하라고 시킨 적은 없다. 대학원 학점도 굳이 많이 들었고, 책도 내가 먼저 시작으며 논문 리뷰만 해오라고 했는데, 새로운 데이터에 적용해서 결과까지 뽑아갔다. 그렇게 살아왔고, 빠르게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의 달콤함, 남들이 해주는 칭찬의 짜릿함을 이미 너무 많이 느껴버렸다. 중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최선을 다하는 것에 지치나 보다. 최선을 다하면 안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오랫동안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을 만큼의 최선을 다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무리하면 안 된다. 인생은 장기전이다.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끝나도 이대로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최선을 다하자. 분명히 지금 학기가 끝나도 다음엔 논문이 찾아올 것이고, 그 논문이 끝나면 유학서류가 찾아올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을 만큼만 최선을 다해야겠다. 적당히 연구가 좀 늦어지면 천천히 하고, 방학 때는 굳이 계절학기까지 안 들어도 된다. 그냥 천천히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만 달려보고자 한다. 


물론 또 책이 나오고, 대학원에서 혹시라도 좋은 학점을 받거나, 제출했던 논문이 좋은 곳에서 억셉되면 또 이 모든 마음가짐을 잊고 다시 달릴 수 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두 시간밖에 자지 않아서 괜히 회의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생각과 다짐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정말 많은 것을 이룬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보니, 이런 감정과 느낌을 나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니더라.


 그래서 정말로 오랜만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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