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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Aug 13. 2021

작가가 되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 


누군가를 만나도 안건 작가로 소개되고 싶다. 스스로도 아주 자연스럽게 작가라고 소개하고 싶다. 처음에는 브런치 작가가 되면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브런치 구독자가 늘어나면, 혹은 책을 출판하면... 언젠가는 충분한 작가가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작가다. 책을 내서 1000권을 팔았고, 두 번째 책이 11월에 나오며 세 번째 책의 계약을 조만간 할 것 같다. 이미 작가지만 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받기도 소개하기도 민망하다. 언제쯤 되면 만족스러울 만큼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운이 좋게도 공부를 좋아했다. 그리고 연구도 비교적 좋아했다. 그러나 연구와 공부를 잘 못했어도 그렇게 좋아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공부와 연구를 좋아함에는 잘함이라는 요소가 굉장히 크게 공헌했다. 


반면, 나는 글을 잘 쓰나? 명확히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들어본 적도 없고, 상을 받아 본 적도 없다. 스스로 글을 잘 쓰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여겨 본 적 역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가 좋다. 나의 수많은 모습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나의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강연과 멘토링도 사랑한다. 그러나 강연과 멘토링은 시간적 제약이 크다. 내가 한 강연은 어쩔 수 없이 휘발이 되어 버리고, 나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24시간이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역량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깊게 영향을 주기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글은 내가 한번 써 놓으면 그 글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다. 2년 전에 쓴 글을 지금 내가 살고 있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이 읽고 내게 글에 참 공감한다고 이야기해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잘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글쓰기다. 


나는 잘 지낼 때와 잘 지내지 못할 때의 갭이 상당히 큰 사람이다. 잘 지낼 때는 일도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하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친구들과 만나도 유쾌하며 긍정적이다. 그러나 잘 지내지 못할 때는 일단 잠을 못 잔다. 잠을 못 자면 식욕도 없고, 몸에 에너지가 없으니 운동할 기운도 없다. 머리가 너무 아파 일과 공부도 못한다. 그리고 지금이 그렇다. 3일째 잠을 잘 못 잤다. 


이상하게도 나는 잠을 잘 못 자는 시기에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른다. 잘 지낼 때에는 특별히 쓰고 싶은 글이 없어 주기적으로 쓰기로 약속한 글도 마치 숙제처럼 하는 반면, 잠을 못 자는 오늘 같은 시기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하고 싶은 말이 솟아난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고 좋은 반응을 얻는 글 역시 힘든 시기에 썼던 글이다. 힘든 시기에 조금 더 나만의 사유를 하게 되고, 그럴 때일수록 글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역시 이동진 작가가 말했듯, 행복한 글쓰기란 따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존재일까? 


불행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글을 잘 쓰고 싶다. 잠을 잘 자는 날에도 글 쓰고 싶은 욕구를 많이 느끼면 좋겠다. 내가 쓴 글이 내게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어렵다. 공학에는 대부분 답이 있고, 풀린 문제와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좋은 연구와 좋지 않은 연구의 구분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아쉽게도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글쓰기에 대한 많은 피드백을 받은 경험도 없다. 그리고 그런 본격적인 글쓰기 수업을 들으려 생각할 때면 너는 오히려 영어 글쓰기와 코딩을 공부해야 한다고 내 안의 다른 내가 소리친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작가가 될 용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잘한다고 약간의 보장도 되어 있지 않은 분야에 뛰어들 자신 역시 없다. 잘하지 않는 것을 견딜 배포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 찔끔찔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몰래 꿈꾸며 글 하나씩 올리곤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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